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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여사의 기행문    
글쓴이 : 박해원    18-03-13 08:21    조회 : 5,809
   황여사의 기행문.hwp (24.5K) [1] DATE : 2018-03-13 08:21:23

황 여사의 기행문 / 박해원

                                                               

86세가 된 엄마는 이번에도 가족해외여행 명단에서 제외됐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두꺼비 손을 흔들지만 나는 엄마의 뼈다귀 손가락 사이로 세어 나오는 쓸쓸한 눈빛을 보았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7남매를 훌륭하게 잘 키워온 엄마는 30년 전부터 늘 몸이 아팠고 머리에는 수건을 동여매고 살아 왔다. 그래서 그랬을까? 해외여행 때마다 엄마도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집에 있는 것이 엄마의 안녕을 지키는 일이란 것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해외여행이 망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 이라는 건 가족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 양반이 살았으면 나도 따라 나섰을 낀데...,”    

하지만 이미 연로한데다가, 다리까지 불편해서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꿈꾸기가 쉽지 않은 나이인 것은 엄마도 인정하실 것이다.

  엄만 또 어김없이 내게 물어 올 것이다.‘중국 구경은 잘 했냐? 어떻더냐? 좋더냐? 음식은 맛나더냐? 날씨는 괜찮았냐? 거기 사람들은 어떠냐....’

  내가 철이 든 이후 이런 거듭된 물음 속에는 엄마의 소원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이렇게 30년을 더 살줄 알았더라면 10년 전에라도, 20년 전에라도 아니, 5년 전에라도 해외구경 한 번 시켜드릴 걸....

 

  엄마의 해외여행을 주제로 가족회의를 열었다. 우려했던 대로 모든 가족들은 말도 못 꺼내게 했고, 특히 올케들은 해외까지 가서 큰 일 당하면 어찌 감당하려느냐고 쌍수를 들어 반대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엄마를 해외구경 시켜드리기로 둘째 언니와 추진했다. 우선 엄마에게 해외여행에 대한 의사를 타진해봤다. 놀랍게도 엄마는 죽기 전에 꼭 외국 구경 한 번 해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 그게 엄마의 평생소원이었다니...   

나는 곧장 여권부터 신청했고 여행사도 알아보았다. 여권사진을 보니 너무 많이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은 분명 벅찬 감동의 미소가 숨어있었다. 어쩌면 내 가슴이 더 설레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예측했었지만 여행사에서도 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해외여행이 어렵다고 한다. 중국 측 가이드들 중에 아무도 우리 일행을 맡아 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케들 말대로 혹시라도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하는 걱정과 엄마의 벅찬 기대감이 내 머릿속에서 교차되었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여행사로부터 어렵게 허락을 받아내고는 곧 바로 엄마에게 알렸다. 중국 여행이 가능하게 됐다고 하니 엄마는 중국여행에 관해 궁금하다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사셨다. 어린 아이처럼 중국여행에 대해 수 없이 묻고 또 묻는다. 어쩌면 못 갈지도 모른 다는 염려로, 한편 여행을 떠난다는 설레임 등으로 엄만 이삼일 전부터는 거의 뜬눈으로 온 밤을 하얗게 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이라며 발목까지 내려온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리더니 고쟁이 속을 휙휙 훑으며 손때가 묻은 황갈색천 주머니 하나를 꺼낸다. 주머니 아귀를 단단히 홀쳐 묶은 끈이 유독 엄마의 손때가 느껴진다. 가지고 있는 현금이 이것뿐이라며 여행 경비에 보태란다.

  아~ 맙소사.! 노란색의 고액권, 노란 고무줄로 한 다발씩 묶어놓은 것이 딱 봐도 백만 원 단위이다. 족히 500만원은 넘을 듯 보인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고쟁이 속을 탈출한 쌈짓돈들은 그동안 엄마의 분신처럼 엄마의 힘이 되어 주었을 테고, 엄마의 의지할 동무였을 테고, 어쩌면 전 재산 일지도 모른다. 엄만 해외여행이라는 기회와 그것들을 과감하게 바꿔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보다. 세상에~! 얼마만큼 간절한 소원 이었기에 이렇게 엄마의 전부와 바꿔 버리다니....

  엄마의 수없는 과거들이 속속들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던 모습. 지나가는 나그네든 거지든 먹을 것을 아낌없이 제공했던 엄마. 오고 갈데없이 동네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떠돌던 미친 여자를 2년 동안이나 거두어 주었던 우리 엄마~! 며느리들이 신발, 옷을 사주면 며느리들 몰래 딸들에게 가져다주고 딸들이 선물사주면 딸들 몰래 며느리들 가져다준 우리 엄마. 7 남매의 소원을 다 들어주었던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의 소원은 고작 해외여행 한 번이었다. 꼴랑 중국여행 한 번 이었는데 그 손톱만큼 작은 소원하나 들어줄 수 없었던 우리 7 남매....

  나는 한동안 엄마의 돈주머니를 바라보며 손톱만큼 작은 소원 하나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꼭꼭 묻어두었던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도 났고, 화도 났고, 부끄럽기도 했고, 가슴이 먹먹해 진다. 엄만 해외여행 가는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 줄 알았나보다. 엄마에게는 중국여행에 드는 경비가 70만원밖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가는 날이다.

86세나 되신 엄마를 모시고 어떻게 관광을 다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며칠간 잠을 설쳤고, 엄만 평생소원을 이루게 되어 며칠간 잠을 설쳤다.

  막상 떠나려는데, 지친 몸에 현기증도 나고 두통까지 생겼다. 단체 여행이라서 함께 여행하는 팀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양해를 구한다 치지만, 4박 5일 동안 엄마를 모시고 일행들과 발을 맞추어 다닐 일이 까마득했다.

  별 탈 없이 다녀와야 할 텐데.... 엄만 그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중국여행가게 되었노라고 우리 막내딸이 해외구경 시켜준다고 골백번도 더 자랑하고 다녔다. 엄만 어디서 그런 생기가 돌아왔는지 얼굴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화색이 돌고 꽃밭에 날아든 나비처럼 가볍게 걸어 다닌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면 엄만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외우고 있다. 길 잃어버리면 못 찾는다고 하니 바짝 붙어서 어린아이처럼 옷자락을 붙잡고 따라다닌다. 우리 일행은 20여 명이었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이드가 들고 다니는 우리 팀 깃발을 내가 들고 한손엔 엄마의 손을 잡고 맨 앞줄에서 가이드를 따라다녔다. 엄만 가는 곳 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머리에 담았다.

  자금성에서는 너무 많이 걸어야 하므로 엄마와 난 입구에서 일행들이 다녀올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화려하고 장엄한 궁궐들을 바라보며 엄만 대답할 새도 없이 한 번에 서너 가지 질문들을 끝없이 해댄다. 이 궁궐 에서는 누가 산다냐? 중국 사람들은 잘 사는가보다. 우리 한국 사람들 다 살아도 기와집이 남겠다며 화답한다. 만리장성에서도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으므로 일행 들을 기다리며 또다시 끝없는 엄마의 질문에 답해줄 밑천이 동이 날 지경이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다 구경 나온 것 같다면서 엄만 느닷없이 외국인에게 “아자씨는 어디서 오셨게라우?...”하며 또 용감하게 말을 건넨다. 난 외국인에게 ‘쏘리~ ’짧게 한마디 건네고는 엄마에게 주의를 주었다.

  진주와 옥을 팔고 있는 매장에 들어서자 엄만 진열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의 값을 물어보고 다닌다. 엄마에게 어울리는 푸른 옥가락지와 옥 팔지 하나를 손목에 끼워드렸다.

보기 싫게 다 늙은 흉한 손에 이렇게 좋은 옥가락지는 안 어울린다고 극구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분홍빛 뭉게구름처럼 물이 들어있는 광대뼈가 엄마가 느끼고 있는 감격과 기쁨에 심취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난생처음 이라며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가슴이 뭉클하다.

관광지에서 모자를 천원에 팔고 있다. 한 눈에 봐도 허접한 모자인데도 엄마는 신이 나서 20개나 샀다. 노인정에 가서 선물로 나눠준단다. 또 다른 관광지에서는 부채를 20개나 샀고, 또 다른 곳 에서는 액세서리를 샀고, 또 다른 곳에서는 청심원을 샀고, 또 다른 곳에서는 호랑이 연고를 산다. 난 속으로 “엄마 미안해요~!”를 반복하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얼얼한 느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했다.  

 

  마지막 날 여행을 마치고 일행들은 엄마와 내게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효도여행을 보게 되었다고 많은 교훈과 반성을 하게 되었다며 그들도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가야 되겠다고 한결같은 다짐을 했다. 우리를 인솔한 가이드는 선물을 준비했다며 엄마 손에 무언가 들려주면서 자기 생에 잊을 수 없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아름답고 따뜻한 할머니와의 동행이었다고 했다.

 

  이제 죽어도 소원이 없다며..., 

고맙다며..., 

감사하다며....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엄마는 나이가 너무많아서  부끄럽다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미안하다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자랑스럽게 중국기행문을 쓴다.


신선숙   18-03-16 22:37
    
중국여행을 여러번 하면서 생전에 한번 가보고 싶어하셨던 아버지께 많이 죄송해했지요.
그냥 흘려버렸던 불효를  후회해도 늦었더라고요.
맛갈스런 글을 재밋게 잘 읽었읍니다.
한국산문에 유망한 작가로 등단하시겠어요. 좋은글 많이쓰셔요.
명종숙   18-04-05 20:07
    
글을 읽고 제 마음까지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어머니가 평생 기억하실 이 소중한 추억을 엄마가 살아계실 때 실천해 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계속 따뜻한 글 많이 써주세요~
문영일   18-04-06 09:47
    
왕 여사의 기행문은 사진은 올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현장보다 더 생생하여 볼 것 많아 흥미진진합니다.
해서, 계속 쓰실 겁니다.
김단영   18-04-14 12:49
    
86세의 소녀할머니가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라는 노랫말이 떠오르네요.
제가 하지 못했던 효도를 박해원 선생님이 대신해주신 것처럼 정말 기분 좋게 읽었습니다.
감동을 주는 좋은 글, 많이 많이 써주세요^^
박영화   18-04-15 03:53
    
얼마나 좋으셨을까요. 정말 잘하셨어요.
친정엄마께서 다리가 많이 불편하세요.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구경 한 번 못시켜 드렸네요. 저는.
진작 모시고 다닐것을.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 하겠습니다. ^^
최로미   18-05-27 11:37
    
너무 훌륭한 일을 해내셨네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께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되셨을거예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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