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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로 여학생    
글쓴이 : 이필자    23-05-16 18:48    조회 : 1,086
   내일로 여학생-합평.수정.2.hwp (30.5K) [1] DATE : 2023-05-16 18:48:07

내일로 여학생

                                      이 필자

 지나는 기차가 나를 세운다. 30대 중반을 훨씬 넘었을 그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여 년이 지났지만, 기차만 보면, 시부지기 생각난다.

 고향 문경에 사는 큰오빠 늦둥이 딸 정이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정 식구들이 반가웠지만, 부모님 빈자리가 견딜 수가 없어 빨리 내 공간으로 가고 싶었다. 동짓달 어둠은 빨리도 찾아온다. 대구 여동생 가족이랑 같이 차타고 오면서, 자고 가라는 동생한테 부산 가는 기차가 없으면 그런다고 했다. 친구처럼 어린 시절 함께한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의 시집살이 고달픔도 들어 줘야 하지만, 난 이미 내 생활이 더 소중한 언니가 되어 있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쉬고도 싶었다.

23시 10분 동대구 출발, 00시 15분 구포역 도착하는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창밖의 어둠까지 함께한 썰렁한 무궁화 열차. 여기저기 지쳐 쓰러진 사람들. 여행의 즐거움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젊은 날, 야간열차로 여행하면서 행복했던 그 추억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피곤함 때문일까? 그래도 이 시간에 집에 갈 수 있게 해준 기차가 고맙다. 텅텅 빈 좌석에 내 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 두 명. 표를 보여주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간다.

‘자리도 많은데, 왜 내 자리에’

 자고 싶다. 새벽에 출발해 종일 지친 하루. 모두가 잠든 이 밤, 어둠을 질주하는 차안에서도 잠들었다. 여학생들 움직임에 잠이 깼다. 검표원 등장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여학생들. 아~~ 저게 내일로구나.

전국 어디나 철도를 이용해서 여행할 수 있는 것. 단, 새마을 열차까지 가능하고, 대학생만 가능하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겐 그림의 떡이다. 지정석 없는 철도여행. 며칠 전 휴가 온 큰아들도 다녀왔다.


삼랑진 내리라는 방송에 눈을 떴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섬주섬 챙긴다. 구포역이다. 동짓달 그믐밤, 어렴풋이 보이는 구포역 육교를 조심스레 내려간다. 뒤따라오는 그 여학생이 무어라 말을 한다. 무슨 목욕탕인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여기서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본다. 그 동네 살지 않아 알 수 없다고 했더니, 검색한 자료를 보여준다. 많이 멀지는 않지만, 구포 둑 옆 외진 곳으로 한참 걸어가야 한다. 이 시간에 여학생 둘을 보내긴 내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목욕탕을 묻지만, 내가 아는 찜질방은 우리 집 반대 방향이다. 짧은 순간, 난 고민했다.

 ‘이 사람들을 어찌해야 하냐고?’


 그만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날 새면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난 순간 당황했다. 낯선 이를 집에 들여도 되는가 하면서. 학생들도 조금 망설이더니 그리하겠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막상 간다고 하니까, 약간은 불안해서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한 학생은 부산이 두 번째고, 다른 학생은 초행이라고 한다. 찜질방에서 자고 남포동에 제일 먼저 가기로 했다고.


 택시를 탔다. 택시비 오천 원에 만 원짜리를 지불하는 내게 오천 원을 준다. 여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렸지만, 기어이 낸다. 미안해서 그런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보일러는 꺼져 있어 춥지만, 우리 집이 제일 편안하다. 서둘러 보일러를 올려 씻으라고 하고, 따뜻한 유자차를 준비했다.

 한 학생이 씻는 동안 소파에 앉아 있는 학생이 누구에겐가 문자를 보낸다. 곧바로 걸려 온 전화에 뭔가 싸늘한 분위기다. 엄마라면서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한다. 엄마 좀 바꿔 달라고 했다. 내가 충분한 설명을 해드린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는다고 그런다. 그 집주인 어찌 믿냐고, 빨리 나가라고 한다면서. 여기 있으면서 조금 있다가 옮겼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다. 그러면 엄마가 영상통화 하자고 하신단다.

그동안 씻고 가벼운 표정으로 욕실을 나온 다른 여학생이 눈치 챈다. 사실을 말했더니 그 어머니가 안 되면 나가야 한다고 한다. 이 밤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만 여기서 자고 구경 잘하고 서울 가서 이야기할 때, 그리되었다고 했으면 되었을 텐데….

 

 아침에 떡국 한 그릇 끓여 먹여 남포동 가는 길 알려 주려고 했건만, 난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서두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반대편에 두고 온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다. 01시. 택시 타고 간다고 우기지만, 택시도 그 시간에 보내긴 불안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7분 거리. 스파캐슬까지 태워 주었다. 거긴 제법 크고, 깨끗하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아서 그나마 안심이 된다.

순식간에 밀려오는 피로, 유자차 잔도 그냥 두고 들어간다. 새벽녘 눈이 뜨였다.

곰 곰 생각해 보았다. 그녀들도 내 아들처럼 보였었는데…. 과연 내가 잘한 행동이었는지를….

내가 그 여학생 엄마라면 어찌했을까? 넙죽 고맙다고 인사했을까? 아들만 둘 키운 나로서는 딸의 엄마 입장을 이해 못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사실대로 이야기했으면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나도 가늠이 서질 않는다. 자식 낯선 곳으로 여행 보낸 엄마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조금은 불안한 그곳에 보낼 수 없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 앞에 망설여야 하는 오늘이 아쉽다. 기우일까? 노파심일까? 순간 사마리아 여인도 생각난다.

 살면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 고마움으로 바뀌고, 선의가 의심받는 현실에서 서글픔마저 느낀다. 난 다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남의 궂은일 그냥 못 보는 성질머리 다음에도 그런 일 생기면 장담할 수 없다. 얼마 뒤, 휴가 온 큰아들한테 이야기했다. 엄마다운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엄마는 제가 다시 하시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또 그러실 거잖아요?”

“글쎄다. 누구 탓을 할까? 하도 사나운 세상이라.”

 그녀들을 살면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물어보고 싶다. 부산 구경 잘했느냐고? 문제의 장본인 어머니, 아직도 그 마음 변하지 않았는지? 그 여학생 부산에 대한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잘 살기를 바란다. 멋진 여행도 한 번씩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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