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Bravo! My life    
글쓴이 : 김수진디지털대반    23-05-18 03:57    조회 : 1,928
   Bravomylife2.hwp (75.0K) [1] DATE : 2023-05-18 04:04:13

                            Bravo! My life

                                                                                                                                김수진

 

 

 어둑어둑하던 새벽녘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작은 호수에 되비친 빛이 점점 깊이 내려앉으면서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설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만여 명 넘게 참가하는 큰 대회였기에 협찬사 천막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무리를 지어 마라톤 현수막이 걸려있는 주변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주최 측에서 나눠준 단체 티셔츠를 입고, 현수막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인증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나는 전날 받아온 번호표를 가슴 아래에 꼼꼼히 붙이고 행여 뛰다가 번호표가 떨어질까 염려가 되어, 양팔을 앞뒤로 흔들며 제자리 뛰기를 했다.

 "엄마 진짜 할 수 있겠어? 진짜 마라톤 신청했어?” 아들은 믿기지 않은 듯 걱정스럽게 몇 번을 물었었다. 난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제일 못하던 과목이 체육이었고 내 나이 또래 엄마들이 대부분 그렇듯 마라톤은 쉽게 도전할 운동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달리기를 도전해 볼 테니, 앞으로 너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라고 사춘기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한 달 반 정도의 준비 기간을 혼자 뛰고 또 뛰었다, 호흡법도 제대로 모르니 숨이 턱 막힌다는 것이 이거구나! 실감했고, 어지럼증으로 주저앉기도 했다. 완주 거리인 13.1마일은 달려보지도 못한 채 마라톤 대회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십여 년 전 원치 않는 이민을 왔다. 낯선 나라에서 시작한 장사로 고군분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째 아이는 난치병을 얻었다. 남편은 밤낮없이 가게를 지켜야 했기에 수시로 의식을 잃어가는 아이를 업고, 병원을 오가는 눈물겨움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밤새도록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나는 남편과의 아침 인사도 꽤 오래 나누지 못했다. 아침이란 건 하루를 잘 버텨야 한다는 무거운 숙제였다.

 어느덧 해가 불뚝 솟았다. 수만 명의 참가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출발 준비를 하며, 눈이 마주치는 누구든 격려를 해주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젊은 미국 여자는 내 종아리를 보며 너는 타고난 마라토너다. 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줬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지만 우리는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어젯밤부터 긴장감으로 배앓이 중이었는데 단번에 편해졌다아침은 이렇게 밝고 활기찬 거였구나. 찡한 웃음이 샜다.

 출발 부저음이 울렸다. 힘들면 천천히 걸으라고 엄마를 염려하는 아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고 카메라를 꺼냈다. 어느새 엄마만큼 커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찍으며 흐뭇했다. 이어폰 속 경쾌한 댄스곡의 리듬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들만 놓치지 말고 따라가자 생각했다. 거뜬히 완주할 것 같았다. 바닷바람이 청량했고 내리쬐는 햇살마저 상쾌했다하지만 금세 눈앞엔 하얗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들숨을 잊은 채 힘겹게 날숨만 토해내고 있었다. 13.1마일을 뛰어야 하는데 힘겹게 3마일 표지판을 통과했다. 이어폰 속 신나는 댄스곡은 이제 청소기처럼 윙윙거렸고, 운동화에 닿아서 덜렁거리는 새끼발톱은 욱신거렸다. 바닷바람은 끈끈했고, 얼굴에 꽂히는 햇살은 따가웠다.

 마라톤을 해본 선배의 조언에 따라 곳곳에 설치된 부스에서 물을 받아 목을 축였는데 그것이 과했던지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들르려고 멈추었다가 몇 명씩 늘어진 줄을 보고 아들과 거리가 너무 벌어질 것 같아서 그냥 뛰었다잠깐이었는데 그새 아들과 녀석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응원 나온 사람들이 길 양쪽에서 팻말을 들고 흔들며 환호해주었고 사탕을 쥐여주며 조금만 더 힘내라고 했다. 아이들을 놓치니 제대로 뛰고 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한참을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1마일 간격으로 표시된 팻말의 숫자 5마일을 겨우 지났다. 무거운 숨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목각 인형처럼 무릎이 제멋대로 꺾였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지만 되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미 의지와 체력은 바닥이었기에 어떻게서든 중간에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런 내 앞으로 여유롭게 뛰는 두 사람이 보였다. 비틀거리며 발을 끄는 나와 달리 앞 무리는 뛰는 모습조차 안정적이었다. 둘은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이야기를 하는 듯 손짓을 해가며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저들은 쉬워 보였다. 즐기는 것처럼 보이니 배알이 틀렸다.

 ‘뭐가 저리 신나는거야. 제기랄.’

 얼굴이라도 볼 요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일단 따라붙었다가까이 다가가자, 땀 냄새로 후끈했고 앓는 소리도 들렸다. 거칠게 토해내는 날숨으로 주변까지 뜨거웠다. 옷은 땀에 젖어 축 늘어져 있었고, 소금기로 얼룩덜룩했다. 햇살을 받은 땀방울이 날리면서 허공에서 불꽃을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끌며 발을 맞추는 것 같았다. 여유롭게 보이던 그들 역시 사력을 다해 뛰는 중이었다그런데 나는 그들의 뒷모습만 보고 부러워하고 자책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나만 힘들다고, 신이 내 편만 되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내 어깨에 놓인 짐만 무겁다고 아파했다. 다들 각자의 무게만큼 희로애락이 있을진대 나는 왜 그리 힘든 것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시련을 가족이 있어 함께 해결하고 이겨내며 살아내고 있고, 그리고 그 속에 분명 감사할 일도 많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허벅지에 힘껏 힘을 주자 이어폰에서 다시 노래가 들렸다.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해를 등지는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앞서가던 아까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인사라도 건넬 요령으로 눈을 마주치려 흘끗 쳐다봤다. 내 나이보다 서너 살은 많은 듯한 여자와 학생인 듯 보이는 여자는 누가 봐도 모녀 사이였다. 활짝 웃으며 가볍게 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둘은 마주 봤다. 딸은 엄마에게 바지런히 손짓했다. 수화였다모녀의 주변으로 별빛처럼 햇살이 터졌다. 천사가 내려온 것이 분명했다.

 “Almost done!”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입어 사력을 다해 뛰었고, 첫 마라톤을 무사히 끝냈다. 모자와 티셔츠는 땀이 났다 말랐다를 반복하며 하얀 소금기로 가득했지만, 훈장이라도 받은 듯 뿌듯했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포토존 천막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눠준 물 한 병을 단번에 들이켰다. 고개를 뒤로 젖혀 마지막 물방울까지 털어 마시며 마주한 하늘빛에 눈물이 났다. 물이 시원해서 그랬나 보다.

 맞은편에서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아들이 뛰어왔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완주한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쏟아 냈다. 저 멀리 모녀의 모습도 보였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껴안으며 완주의 기쁨을 나누는 듯했다. 그 옆에서 오롯이 엄마만 쳐다보고 있는 딸의 모습에 뭉클해졌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고, 여러 가지 상황들로 지칠 때도 있지만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슬프고 화나는 것만 기억하느라 지나쳤던 감사함도 잘 담으면서 살고 있다. 작은아이는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고난과 역경은 경로 이탈이 아니라 이정표였다. 


 자동차 스피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흐른다. 볼륨을 한껏 높여본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김수진디지털대반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1008
3 된장 항아리만 보면 생각나는... 김수진디지털… 07-18 1510
2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김수진디지털… 07-03 2271
1 Bravo! My life 김수진디지털… 05-18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