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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식이 낳은 계란    
글쓴이 : 박해원    24-01-20 12:00    조회 : 1,588
   휴식이 낳은 계란.hwp (92.5K) [0] DATE : 2024-01-20 12:01:21

휴식이 낳은 계란

박 해 원

 

일천구십오 날, 한날 한점도 빼지 않은 3, 쉼을 꿈꾸며 쉼 없이 달려왔다. 꿈에 부푼 창업은 나의 발목을 꽁꽁 묶어놓기에 충분했다. 버티기 위해 독한 약을 두 배로 복용하고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열었다.

입덧한 여자처럼 헛구역질이 나고 오한이 든다. 심한 두통과 불덩이처럼 뜨거운 육신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오그라든다. 군불 지핀 뜨거운 방바닥에 사지육신을 널브러뜨리고 지지고 나면 좀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신과 생각은 멀쩡한데 영혼까지 빠져나가 버린 시체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연체동물처럼 그대로 바닥에 축 늘어져 일어날 수가 없다. 마침 함께 있던 친구가 나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죽어가는 것 같다며 황급히 응급실로 이송한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 맥박이 평소와는 다르게 숨 가쁘게 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체온 39.5도가 넘으면 뇌 기능 마비가 온다는데 나의 체온은 40.5, 혈압 77/40.

신우신염, 저혈압 쇼크로 심한 두통과 호흡이 곤란하다. 심혈관이 정지되어 가고 있음을 감지한다. 응급상황이다. 짧은 시간 안에 악성 바이러스 염증이 몸 안에 감염이 되면서 신체의 장기가 손상되고 그 염증이 혈액으로 퍼지면 짧은 시간 이내에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급성 패혈증이다.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위급한 상황이니 중환자실로 이동한다. 의료진들이 부산하게 응급조치한다.

3일째 되는 날 일반 병동으로 옮긴 후에도 침대 옆에는 TV 드라마에서 봤던 환자 감시장비 모니터링 컴퓨터가 따라붙었다. 낯설지 않은 모니터에 몇 가닥의 그래프가 강물처럼 굽이치며 흘렀다. 저 모니터의 그래프가 직선으로 흐를 때 의사들은 흰 천을 얼굴 위로 덮으며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하겠지. 간호사들은 10분이 멀다 하게 들락거리며 환자 감시장비 모니터의 그래프를 점검했다. 주삿바늘로 인한 혈관이 터져서 양손과 양팔 여러 곳이 시퍼레졌다. 꼬박 3일이 지나도록 심한 오한이 오고 고열이 내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일일 수분 섭취 및 배설량 기록지라고 씌어 있는 A4용지를 가져왔다. 해당하는 빈칸에 정확하게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호리병처럼 생긴 병 하나와 유아 변기통처럼 생긴 넓적한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를 건넸다. 호리병은 소변 용기, 플라스틱은 대변 용기이다. 대소변을 본 후에 세밀하게 기록하란다. 그뿐만 아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 숨을 쉬는 공기만 빼고 시간과 분까지 빠짐없이 기록해야 했다. 급성 패혈증 증세와 고열이 계속되어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고 신장에도 악성 염증이 심각하다는 이유였다.

호리병에는 양을 측정하는 숫자와 눈금이 있어서 소변량을 기록할 수 있다. 대변 용기에 소변을 받은 다음에 그것을 다시 눈금이 있는 호리병에 부어서 소변량을 기록지에 적었다. 이깟 소변이 뭐라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첫 소변량 50mL. 웃을 수 없는 웃긴 상황이다. 두 번째 소변 받기, 호리병에 붓기. 두 번째 소변량 90mL, 매번 소변을 받아서 호리병에 붓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정상적인 소변량이 얼마나 되죠?” “500mL 전후요!” “! 500mL라고요? 현재 나의 소변량으론 어림없네요. 언제쯤에나 정상적인 소변을 볼 수 있나요?” “저도 모르지요.”라고 하며 사라져 버렸다. 슬쩍 꾀가 났다. 간호사가 절대 알 턱이 없지. 내가 얼마만큼 소변을 보았는지 감으로 느낀 후 기록지에 내 맘대로 적어 버렸다. 이런 나의 불량 기록물을 보고 간호사도 자신의 기록철에 베껴 쓰면서 물었다. “설사는 하지 않았어요?” “왜요.? 꼭 설사해야 하는 거예요?”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기 때문에 대부분 설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아하! 그렇군요. 저는 변비가 너무나 심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대변을 못 봐요. 평생 그래 왔는걸요.” “! 정말요?” 대변을 보고 나면 두어 시간은 몸조리해야 할 만큼 대변보는 것이 일상 중 하나의 고통이다. 그래서 설사를 하지 않는다는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간호사는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변을 보게 되면 잘 관찰해서 기록해 달라고 했다. 설사하게 되면 변의 양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간호사는 잠시 생각의 쉼표를 찍고는 그냥 설사라고 기록하세요.” 했다.

입원 후 6일 만에 마침 대변의 조짐이 느껴졌다. 변비도 아니고 설사도 아닌 바나나 한 개 정도의 변이 나왔다. 날마다 이렇게 아름답고 쉬운 대변을 만나는 사람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땐 배설물 기록지에 뭐라고 기록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바나나 한 개.”라고 기록했다. 간호사가 체크를 하러 들어왔다. 기록지를 보더니 깔깔 웃었다. 혹시 대변량을 달아보는 저울이라도 있는 건가? 설마 그건 아닐 거야. 나 역시 바나나 한 개라고 적어놓고 좀 어색한 것 같아서 멋쩍게 웃었다. 마땅히 변의 양을 뭐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보이는 대로 느낌대로 적었는데, “그렇게 적으면 안 되는 거예요?”라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바나나는 크기가 너무나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계란을 기준으로 해서 몇 개라고 적으면 돼요.” 나는 순간적으로 계란이라는 말에 웃음이 튀어나왔지만 태연한 척 대답했다. “, ! 계란이요. 잘 알겠어요. 계란,” 하며 한 번 더 웃음을 참았다.

두 번째 배설물, 간호사가 가르쳐준 대로 계란 1개라고 적었다. 점검하러 들어온 간호사가 바뀌었다. 계란 1개라는 기록지를 본 간호사가 피식 웃었다. “간호사님 왜요? 뭐가 잘못 기록이 됐나요? 어제 간호사님이 계란 크기로 계산해서 적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요.” “잘못된 건 아니고요, 계란 그런 말은 안 쓰셔도 되고요. 숫자만 쓰시면 됩니다.” “! 그렇군요. 숫자만!” 6일째 되는 날부터는 몸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면서 환자 감시장비 컴퓨터 모니터는 철수됐다. 내 몸은 극심한 변비 상태로 회복되어 갔다. 그동안 먹은 것이 없어서 그런지 6일 만에 배설량 계란 1개뿐이었다. 간호사가 배설량 기록을 숫자만 기록하면 된다고 했던 말과 이어서 변을 이렇게 조금 보셨어요?”라고 물었다. “왜요? 계란 한 개면 잘못됐나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동안 대변량치고는 너무 조금이라서요.” 간호사는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며칠 전에 얘기했던 변비의 역사를 반복 설명해 주었다. 간호사는 정말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변을 보게 되면 잘 기록하세요.”라고. 어떤 환자는 계란 22개를 적어놓은 환자도 있었다고 했다. 계란 22개의 양은 도대체 얼마만큼 많이 받아야 가능할까? 계란 22, 그게 한사람이 저질러 놓은 똥의 사건이란 말인가? 저 휴대용 변기통에 두 통 이상은 가득 채워야 할 양이다. 계란 22, 똥을 눈다는 단어보다 출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정도 출산하려면 도대체 무엇을 얼마만큼 먹어야 하는 걸까? 그 몸이 온전했을까? 나는 오지랖 넓게 남의 계란량을 계산하다가 순간 교양 없다는 오해를 받을 만큼의 품격 없는 웃음을 폭발적으로 터트렸다. 나의 폭발적인 웃음이 전염됐는지 간호사도 깔깔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엄청난 똥, 계란 22, 평생 잊을 수 없는 똥량.

다음날, 채변 검사를 해야 하니 꼭 변을 받아오라고 했다. 난 그동안 먹은 것이 없어서 나올 것이 없었다. 젠장 계란이든 바나나든 뭐라도 나와야 채변을 받을 텐데 소식이 없다. 간호사는 채변 검사를 해야 한다며 계속 변의 소식을 물었다. 빚쟁이 독촉하듯 보챘다. 젠장, 남의 계란을 받아서 줄 수도 없고 내일 기말고사인데 시험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은 모범생의 부담감 같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쩔 수 없다. 한번 해보자. 한 시간 동안을 계란 낳기에 집중했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제발 계란까지는 아니더라도 포도알 한 개만 나오길 바랐다. 바둑알처럼 딴딴한 것이 딱 한 개 똑 떨어져 나왔다. 그걸 채변 통에 넣어서 간호사에게 자랑스럽게 가져갔다. ! 내가 낳은 계란 파편이다! 속으로 외치면서 채변 통을 건네주었다. 위대한 과제를 해냈다. 드디어 빚쟁이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배설량 기록지에 뭐라고 적어야 하지? 계란 파편이라고 쓸 수도 없고, 바둑알 1? 아니면 포도알 1? 뭐라고 적을지 고민이었다.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절대 계란의 크기라고 기록할 수 없었기에 포도알 1개라고 적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오더니, “포도알 1,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난 뭔가 주눅이 든 사람처럼 대답했다. “! 그거요? 오늘 배설량 기록이에요. 사실은 아주 딴딴한 바둑알 한 개인데 그냥 포도알로 적었어요.”“환자분! 장난으로 기록하시는 거 아니시죠?” “장난이라니요. 좀 이해가 안 되겠지만 포도알 1, 팩트입니다.” 간호사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나도 함께 웃었다.

11일간의 휴식이 있는 병원 생활. 새로운 경험과 쉼이었다. 주치의는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축하한다며 마지막 처방전을 썼다. “환자분!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 아시죠? 친구분께 감사하세요. 조금만 늦었어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순간을 맞이했을 겁니다.” 그 말속에는 미련하게 이 지경까지 끌고 왔다는 질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 선생님! 죽는 날까지 휴식은 건강의 근본임을 명심하고 살랍니다.”

그 이후 우리 가족들에게는 신종 유행어가 생겼다. 딸은 엄마, 나 오늘 계란, 시원하게 3. 오케이?” 아들이 말한다. “아이고~~계란이 급하다 급해!” 가족들이 둘러앉은 식탁 위에 계란 부침이 올라오면 가장 먼저 빈 접시였던 것이 이제는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해 정기 휴무일을 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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