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발바닥은 빼주세요    
글쓴이 : 박해원    24-03-20 21:15    조회 : 1,519
   발바닥은 빼주세요.hwp (64.0K) [0] DATE : 2024-03-20 21:15:49

발바닥은 빼 주세요

박해원

 

엄마가 그랬다. 몸에 뭔 때가 그리 많은지, 사지 멀쩡한 젊은것들이 알몸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남사스럽다나. 그리고 엄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엄마의 눈에 대고 말했다. 가만히 누워서 때를 벗겨내는 느낌이 어떨까 자못 궁금하다고 대답했다. 엄만 구십 평생 사지가 멀쩡하지 않을 때도 혼자 때를 밀었고 남사스럽지 않게 딸의 손을 빌려 등을 밀었다.

너무 늦었다. 내 몸이 점점 엄마 나이가 되어갈 무렵에야 비로소 엄마 마음을 알아차렸다. 우리 엄마에게도 때밀이 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받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후회가 됐다.

 

설령 공짜라고 할지라도 내 몸이 백 퍼센트 방치된 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엄마의 주장대로 남사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유난히 간지럼을 많이 타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기들처럼 내 몸에 시선만 마주쳐도 간지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상상만 해도 간지러워 몸이 오글거린다.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오십이 훌쩍 넘은 여자의 몸은 굳은살이 박였고, 다사다난한 세상을 살다 보니 마음도 용감하게 변했다. 딸의 결혼 날짜가 다가오니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지만 마음은 분주했다.

사지 멀쩡한 젊은 딸의 등쌀로 등 떠밀려 때밀이 배드에 눕게 됐다. 딸이 시집을 가는데 친정엄마가 얼굴과 몸 관리를 해야 한다는 딸의 일방적인 주장에 거절할 만한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때밀이 요금이, 등만 밀면 만원 전체 밀면 만 칠천 원 머리까지 감겨주면 2만 원 오일마사지 3만 원이란다. 등만 밀어주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셀프서비스로 하고 싶었다. 딸은 엄마의 의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돈 내는 사람이 이라나. ‘은 때밀이 여자에게 6만 원을 건네며 두 사람 오일마사지로 주문했다. 유독 간지럼에 예민한 나는 여전히 긴장했다. 나는 때밀이 배드에 눕기 전에 아줌마와 협상했다. 아프지 않게, 절대 간지럽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등만 밀어달라는 말이 목까지 넘어왔다. 이유가 옹색해서 말을 삼켰다.

내게 가장 취약한 발바닥, 발바닥에 때가 있나 싶다. 적당히 까칠한 때 타올이 발바닥을 스칠 때의 간지러운 촉감은 욕이라도 퍼붓고 싶을 만큼 참을 수 없었다. 품격 없이 대놓고 웃을 수도 없었다. 미간에 힘주어 눈을 감아봤다. 단단한 사탕을 한방에 깰 만큼 이를 세게 악물어 보았다. 급기야 참을 수 있는 만큼 강도 있게 혀를 깨물어 보았다. 여러 가지 시도를 다 해봤지만 한번 간지럽기 시작한 발바닥은 웃음이 멈춰지지를 않았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성인군자라도 아픈 건 아프고 슬픈 건 슬프다.”라고 했다. ‘성인군자라도 간지러운 건 간지럽겠지.’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뺐다. 아줌마는 전문가 스럽게 발을 쭉 잡아당겼다. 나는 이미 웃음이 터진 상태가 돼버려서 수습이 어려웠다. 아줌마는 사정없이 발바닥을 밀었다. 나의 이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난 태연한 척 간지럽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시원하지 않으냐며 하던 짓을 계속했다. 얄밉다.

창피했다. 울 엄마가 말한 알몸의 남사스러움이 아니었다. 사지 멀쩡한 젊은 딸도 여유 있게 때밀이 서비스 받고 있는데 오십 넘은 여자의 경박함 같은 것이 느껴져서였다. 엄마의 이런 모습에 딸이 창피해하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 쓸데없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간지러웠다. 참다못해 목에 걸어두었던 말을 뱉었다.

아줌마, 발바닥은 빼 주세요.” 아줌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때 타올을 든 손을 발바닥에서 거두었다.

한번 터진 간지러운 감정은 수습되지 않았다. 발바닥뿐만이 아니었다. 때밀이 손이 목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것 같아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목을 양어깨 사이로 최대한 깊이 밀어 넣었다. 이제는 목도 빼달라고 해야 하나? ‘웃지 말자, 웃지 말자!’ 백번을 다짐하고 다시 누웠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아줌마는 때밀이 직업 가진 이후 이렇게 웃는 손님은 처음 봤단다.

옆에 누워있는 딸은 엄마의 고통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엄마 좀 참지.” 딸도 웃음이 터진 모양새였다. 함께 웃었다. 딸을 밀어주는 아줌마도 웃음이 터졌다. 웃음도 전염이 되나 보다. 네 명의 여자가 일행이 되어 웃기 시작했다. 빈소에서 실컷 울고 나서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더니 딸 옆에 있던 아줌마도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웃고 나서 왜 웃느냐고 물었다.

몇 년 전에 가족들 단체로 중국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중국 여행의 필수 코스인 발 마사지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시원하다는데 나만 유독 간지러워서 그때도 발바닥은 빼 주세요.’ 했던 때가 기억났다.

나중에는 때밀이 아줌마의 핀잔 때문이었을까 웃음이 조금은 진정이 됐지만 완전히 꺼진 불은 아니었다. 웃음은 내 의지와는 별개였다.

 

 

 

 


 
   

박해원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7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0989
7 신들린 여자 박해원 06-16 1811
6 인생에 가장 난이도 있는 문제 박해원 05-24 1456
5 발바닥은 빼주세요 박해원 03-20 1520
4 절대 훔친돈이 아니에요 박해원 02-28 2227
3 휴식이 낳은 계란 박해원 01-20 1589
2 뺨 맞던 아이들 박해원 12-27 1011
1 황 여사의 기행문 (6) 박해원 03-13 5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