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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화를 찾아서    
글쓴이 : 최정옥    24-11-21 21:28    조회 : 2,208
   은화를 찾아서.hwp (86.5K) [1] DATE : 2024-11-21 21:28:27

은화를 찾아서

 

최정옥

우연히 영남알프스 8봉 인증에 대해서 들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하는 올해 5년 차 행사였다.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8개 산을 완등하면 완등 인증서와 선착순 3만 명에게 은화를 지급한다고 했다. 하루에 3개까지 인증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은 9봉이었고, 주민 불편과 안전 문제로 문복산과 재약산이 제외되면서 현재는 7봉 인증이다. 나는 재약산이 제외되기 전 1, 8봉 인증에 성공했다. 준비물을 산더미만큼 차에 실어두고 깜깜한 새벽에 출발했다. 가족에게 영남알프스에서 은화를 찾고, 기도하고 오겠다고 했다.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을 오르기 위해 울산에 있는 영남알프스 복합 웰컴센터로 갔다. 홍류폭포를 지나 공룡능선 칼바위를 탔다. 바람이 세고 험한 바위 구간이라 매우 위험했다. 힘들게 신불산(1,159m) 정상에 올랐다. 미리 생각해 둔 포즈로 첫 번째 인증을 했다. 정상석에 한 손을 대고 다른 손과 다리를 쫙 펼치는 포즈였다. 정상에 오른 감격을 표현했다. 매번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으면 어떤 포즈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한 가지로 통일하기로 미리 생각해 두었다. 좋은 생각이었다. 정상에 있는 돌탑에 돌멩이 하나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요기하고 영축산으로 출발했다. 포근한 날씨로 온통 질퍽이고 미끄러웠다. 신발이 엉망이 되고 바지까지 흙이 튀어 당황스러웠다. 가을에 오면 억새가 예쁜 곳이지만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떼느라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영축산(1,081m)을 인증하고 다시 신불산으로 돌아가야 간월산(1,069m)에 갈 수 있다. 공룡능선 칼바위가 힘들었던 탓에 하산은 편안한 임도林道를 선택했다. 대부분 그늘이었고 그늘진 곳은 온통 빙판이었다. 산에 눈이 없을 거로 생각하고 배낭 무게를 줄여보고자 아이젠을 차에 두고 왔다. 위험천만의 하산길이었다. 예상보다 시간은 지체되었고 힘든 산행은 해가 저물고야 끝났다.

근처 온천단지에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갔다. 일반실을 예약했지만, 손님이 없다며 일반실 요금으로 베란다가 있는 가족실을 주었다. 넓은 방과 욕실,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된다는 베란다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집에서 가져온 김치와 몇 조각의 삼겹살이 꿀맛이었다. 커다란 욕조에서 온천수로 목욕하고,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가족들과 통화를 하는데 편안하고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고헌산 천황산 재약산을 인증했다. 고헌산(1,033m) 왕복 5.5km,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보통 1시간 30분이면 된다는데, 계속되는 계단과 오르막으로 짧지만 만만하지 않았다. 돌탑이 유난히 많았다. 보이는 돌탑마다 돌멩이 하나씩 올렸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내 꿈을 위해 기도했다.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하산은 거의 날다시피 뛰었다. 바로 얼음골 케이블카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달렸다.

천황산(1,108m)과 재약산(1,189m)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거라 해도 그리 만만한 산행은 아니다. 진달래가 피는 계절에 오면 예쁠 것 같았다. 언젠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필 때 가족과 케이블카 타고 다시 오고 싶었다. 하늘은 파랗고 날씨가 따뜻했다. 덕분에 걸어야 하는 길은 온통 진흙 길이다. 정상에 오르려면 때로는 날아갈 듯한 칼바람도 견뎌야 했고, 예상치 못한 진흙 길도 걸어야 했다. 아무리 포근해도 겨울 산에 그늘진 곳은 숨은 빙판으로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질퍽이는 산길을 묵묵히 걸으며 고헌산 천황산 재약산 인증에 성공했다. 내려가는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쉬지 않고 걸었다. 걸으면서 준비한 과일과 베이글 빵을 먹었다. 돌탑에 돌멩이를 올리며 기도하고 사진 찍는 것이 내 산행의 쉬는 시간이었다.

전날 머물렀던 숙소가 일반실 요금에 가족실을 쓸 수 있고, 베란다를 쓸 수 있어서 좋았던지라 연박을 요청해 놓았다. 20킬로미터 내외로 이동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매일 짐을 싸고 새로운 숙소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처음 숙소에서 연박을 하기로 한 건 잘한 거 같았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가고, 기도했다. 추억을 정리하면서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파스는 덕지덕지 붙이고 있지만 신나고 재밌었다. 매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집에서는 식구들이 늦게 자는 분위기라, 피곤하지만 12시 전에는 잠을 잘 수가 없다. 혼자 있으니 내가 자고 싶은 10시에 잠을 자는 것조차 행복했다.

 

가지산 입구 석남터널로 갔다. 아직 어두운 시간이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주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만 부지런한 게 아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흐린 날이지만 구름 사이로 빨갛게 뜨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끝도 없이 오르막길과 계단을 걸어야 했다. 가지산(1,241m) 정상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거센 바람 때문에 휘청거렸다. 추운 날씨였다. 체온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살기 위해 더 빨리 걸어야 했다.

운문산으로 넘어갔다. 낙동정맥의 수려한 산세와 몽환적인 운무로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면서, 영남 알프스의 이름처럼 최고의 풍광을 보여주었다. 힘든 여정에 대한 보상이었고, 8봉 완등의 선물이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이토록 상쾌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다 담을 수 없다.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앞에서 아무리 말로 떠들어도 그 감동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운문산은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이면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사람들이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랫제에서 운문산까지 1.5km,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다리를 질질 끌며 운문산(1,188m) 정상에 올랐다. 운문산 정상석에서 두 팔을 펼치고 다리를 쫙 벌려서 마지막 인증사진을 찍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 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영남알프스 8봉 인증이 모두 끝나고 보니, 가지산 인증이 가장 힘들었다. 아랫재까지 하산길, 질퍽이고 미끄러워서 위험천만이었다. 바짝 긴장한 채로 조심조심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고, 돌탑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산했다. 조촐하게 들깨 수제비와 도토리묵을 먹으며 영남알프스 완등 마감 식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쏟아졌다. 하나님은 더럽혀진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약속하는 무지개를 띄웠다고 했던가. 식당을 나왔을 때 쏟아지는 빗줄기는 나에겐 분명 무지개였다. 나의 수고와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23일 동안 철저하게 계획하고 실천했다. 무거운 고독과 외로움, 간절한 소원을 가득 담아 산을 올랐다. 힘들게 산을 오르다 보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힘들수록 좋았다. 힘들수록 더 많은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과 계단, 온몸이 땅으로 꺼질듯하고 가쁜 호흡으로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묵묵히 참고 견디며 정상에 오르면 산은 나의 무거운 짐을 받아주었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보내는 생명 같은 큰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 한바탕 쏟아지는 겨울비 속을 운전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쉼터였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기분이 좋았고 뿌듯했다. 나는 자꾸만 웃고 있었다.

얼어 죽을 것 같은 칼바람에 휘청거리고, 누적된 피로 때문에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었다. 빙판길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고 끝없이 진흙탕을 걸었다. 순간순간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드디어 은화도 찾았다. 나는 힘들지만, 높은 산을 한 발 한 발 오르듯 정성스럽게 살고 싶다. 어디엔가 있을 또 다른 은화를 찾아서 다시 높은 산을 오를 계획을 세운다.


문경자   24-12-26 15:58
    
최정옥 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어디엔가 있을 또 다른 은화를 찾아서
다시 높은 산을 오를 계획을 세운다.
꼭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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