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선물
안점준
해마다 2월이면 졸업과 함께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꿈 많던 여고 시절, 눈물 흘리며 보았던 1976년 개봉한 진추하 『사랑의 스잔나』. OST곡 「졸업의 눈물」은 졸업에 대한 두려움과 감사했던 선생님 친구들을 기억나게 했다.
「졸업의 눈물(Graduation tears)」
"이제 때 묻은 책들과 작별할 시간이에요/ 그리고 나를 이끌어 준 사람들과도…
내게 기쁨과 행복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었는데 친구여, 우리 함께 나누었던 즐거움을 어찌 잊으랴, 이 거친 세상을 친구 없이 어떻게 지낼까?/ 난 혼자가 되겠지요, 학창 시절 축복 받았기에 걱정하진 않아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감사드려요."
-영화 『사랑의 스잔나』 OST「졸업의 눈물」 중에서
4년 동안 독서 모임 하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은 꿈? 아니 욕심이 생겼다. 고민하던 중 용기를 내어 2023년 사이버대 문창과 3학년에 편입했다. 그동안 나는 회사에서 경남 지역 지점만 관리하는 국장이었다. 입학 후 한 달 지난 4월부터 부산까지 관리하라는 인사 명령을 받았다. 정년이 연장되면서 회사가 준 입학 선물이었다. 처음에는 사이버대의 수업 방식을 숙지하지 못한 채, 회사 업무와 학교 수업으로 전쟁 같은 한 학기 보냈다. 자기 계발과 성장은 여러 가지 고통과 보람을 수반했다. 경남과 부산 장거리 지점 방문, 늦은 밤과 새벽까지 강의를 듣는 것을 보고 가족은 무리하지 말라고 휴학을 권면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가족은 만학도가 된 나에게 그 나이에 공부하는 것으로 대단하다며 격려했다. 하지만 B 학점 이하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성적 목표를 세웠다. 1시간 이상 지점 방문 거리는 운전하면서 강의를 들었다. 서울 회의 갈 때 버즈를 사서 올라갈 때, 내려올 때 KTX 안에서 강의를 들었다. 새로운 학습은 보물찾기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2024년 회사 정년은 만 60세인데 3년이나 정년이 연장되며 관리 지역이 늘어난 부담감을 일에 대한 열정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지난 1년 동안 업무와 학업 둘 중 하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24시간을 48시간으로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 어려운 가운데 잘 견뎌냈다. 3학년 경험으로 4학년은 두려움 없이 시작했다. 시험 중에 제일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있었다. 시험 시작과 함께 주제를 주고 3.000 자 이상 50분 안에 작성하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했는데 결혼 전 직장에서 문서 작성과 사양서(Specifiction) 만들었던 타자 실력을 소환하여 잘 마무리했다. 우리 몸에 체득된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실감한 시간이었다.
내 이전 전공은 문학과 거리가 먼 공학이었다. 문창과 3학년 편입 후, 2년 동안의 학습 시간은 천둥과 번개처럼 지나갔다. 전공 공부하면서 초등학교 동기 동창,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아이로 기억에 남은 고 기형도 시인을 만났다. 서울에 있는 시흥 초등학교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남녀 반이 따로 있었다. 그 후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지 않은 관계로 아이들과 소식은 여자 친구에게 가끔 듣는 정도였다. 만학도가 되어 만난 기형도 『빈집』 『엄마 걱정』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게 했다.
12월 말 일이면 잠시도 긴장 늦출 수 없는 한해 마감이 있다. 지점 별 목표를 일자 별로 점검하고 독려하는 2024년 12월을 보냈다. 10개 지점 관리와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렇게 힘들게 보낸 시간의 부작용으로 25년 1월은 퇴근하면 그동안 못 잤던 잠을 빠르게 상환하듯이 저녁 8시 안 되어서 깊은 잠에 빠졌다. 가족만 알고 있던 힘들었던 2년! 긴 터널을 지나왔다. 이제 마음먹고 열심히 글을 써야지 다짐하며 보냈는데 2월 졸업이라는 시간이 나를 불러냈다. 이번 문창과 등록금은 부모님이 아닌 딸, 아들, 남편이 그동안 가족을 위해 수고했다며 후원한 가족 장학금으로 졸업했다. 2025년 “여고 시절”을 불렀던 그 세월 지나 올해 내 나이 앞뒤가 같은 66이다.
우리 회사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MBC 창작 동화 공모전이 있다. 내가 키운 토끼 온유, 참새 바소 사진과 동영상을 모아 그림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60년 넘은 길을 걸어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삶의 승리가 담긴 희망의 이야기를 수필로 쓰고 싶다. 내가 은퇴하는 날 30년 넘게 근무했던 우리 회사 회장님과 나의 동료, 200명이 넘는 우리 공부방, 학원 선생님들에게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수채화 같은 수필집을 선물하고 싶다. 지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내 열정은 감사하게도 선천적인 축복인 무한 도전을 잉태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진화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매우 공감하기에 새로운 꿈을 향해 나간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교수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출생, 2005년 11월 11일(향년 95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현역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가 93세 때 신문 기자로부터 “당신은 평생 7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고, 교수로만 40년을 일했는데 언제가 전성기였나?”라는 질문에 “나의 전성기는 열심히 저술 활동을 하던 60대 후반이었다”라고 대답했다. 2025년 문예 창작과 졸업은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학습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며 목표를 향해 비상飛翔 할 수 있는, 나에게 크고 소중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