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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비밀    
글쓴이 : 표경희    18-08-14 00:42    조회 : 4,942
   엄마의 비밀.hwp (30.5K) [0] DATE : 2018-08-14 00:42:07

엄마의 비밀

표 경 희

퇴근해서 현관에 들어서면 아들 녀석이 제 방문을 빼꼼히 열고 ‘엄마예요?’ 하는데 오늘은 감감하다. ‘왔어.’ 하는 남편에게 10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 귀가 전인 아들이 궁금하지도 않느냐고 타박을 했다. 전화를 거니 신호가 한 참 울린 뒤에 받는다. ‘금방 가요.’ 하는 응답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고 전화가 미처 끊기기도 전에 제 할 일에 몰두하는가 보다. 대학 2학년으로 요즈음 기말 시험 기간이다. 내일은 시험이 없고 모레 목요일은 두 과목만 치면 종강이란다.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에서 ‘타닥타닥’ 컴퓨터 자판 두드려대는 소리가 빠르게 들린다. 또 PC방에서 게임인가? 하는 생각에 동네 PC방을 다 뒤지고 다녔던 지난날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가슴 아린 속내를 다시 헤집기 싫어서 남편과 서로 바라보며 뒷말은 먹어 버렸다.

시험이 끝난 저녁 PC방 들렀다가 늦게 들어온 녀석에게 지난 화요일에도 통화 끝나기가 무섭게 PC 자판 두드리는 소리 들리던데, 그때도 게임했냐며 힐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건 학교 사이버 도서관에서 교수님이 올려놓은 과제 하느라고 바빴던 거였다고 차분하게 해명했다. 많이 컸다. 예전 같으면 왕-짜증과 함께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을 텐데.......

아들은 청소년 시절을 게임 중독으로 보냈다. 그 때는 야단도 치고 아무리 바로 잡아 보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나가면 널린 곳이 PC방이라 24시간 붙어 있거나 집에 묶어놓지 않는 다음에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와 겹쳤던 시기라서 대화는 물론 제 방 출입조차 거부했다. 그래도 기질이 순하고 내향적인 탓에 바깥에서 사고를 친 적은 없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지내는 학교생활이 녹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공부는 관심이 없고 PC게임에 몰두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스무 살 즈음이었다. 고집을 부려서 어린 나이에 군대에 갔다. 그때부터 소통의 시작이었고, 군 생활 동안 나눈 대화가 평생 했던 이야기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제대 후에 뒤늦게 들어간 대학이라선지, 동급생보다 나이도 많고 철이 조금 들어서인지, 지금껏 보아온 어느 때 보다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전자공학 전공이라서 공부를 안 하면 시험을 볼 수가 없나 보다. 간식이라도 주려고 제 방문을 열면 어김없이 PC 앞에 앉아 있다. 두뇌를 단기간 과도하게 너무 써서 모세혈관이 터진 것 같다고, 머리가 아파서 좀 쉬어야 한다고 인터넷 만화를 보면서 너스레를 떨고 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이제는 엄마 마음을 헤아려 다독일 줄도 안다. 공부는 좀 못해도 반듯하고 착하게 자란 녀석에게 진정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얼마 안 되었다.

발달심리학을 배우면서 영유아기의 애착 관계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 태도를 형성하고 이후의 인간관계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직장이 있던 나를 대신해서 아들이 한 돌까지는 고모가 돌봐주다가 농한기에는 시골에서 어머님이 키웠다. 그 후 두 돌까지는 아래층의 젊은 아주머니가 키웠는데 내가 출근하면 ‘엄마 엄마’ 하다가 퇴근해서 오면 ‘찬기 엄마’가 된다고 옆집 할머니가 우스개 소리하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맺혀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눈치놀음한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에 엄마와 만남을 고대했을 아이와는 정작 눈 맞추면서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집안일로 하루가 너무 피곤하고 힘에 부쳤다. 집안이 좀 지저분하거나 청소 하루쯤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후회가 크다. 직장이 멀었던 남편의 귀가는 항상 늦었고 육아 분담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농한기에는 시골에 있던 녀석을 보러 가면 한참 만인 엄마를 낯설어했다. 그때는 엄마가 얼마나 고팠는지 표현도 못 하는 아이보다 서운한 내 마음 추스르기가 더 바빴다. 출근하는 아침에 엄마 따라가겠다고 울면서 뛰어오는 아이가 넘어질까 봐 걱정스러워 더 큰 소리로 야단을 쳐서 돌려보내고 따라오지 못하도록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분리불안을 겪는 두 돌 즈음에는 엄마가 직장에서 일하고 다시 돌아오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아이가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따뜻하게 안아서 달래주고 갈 것을 하고 청년이 된 아들을 보며 뒤늦게 헤아렸다.

세 돌이 되면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있는 것이 오히려 정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침에 빵 한 조각 손에 쥐여 주며 빨리 먹으라고 닦달을 해서 어린이집 차에 태우고 출근을 했다.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을 가장 먼저 버스를 타고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등원하고, 집에 오는 길은 친구들을 모두 배웅하고 맨 마지막에 내렸다.

퇴근이 조금 늦은 어떤 날은 엄마를 기다리면서 선생님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나를 보고 뛰어오는 아이를 만나면, 기사 아저씨 먼저 보내드려야 해서요 하며 인사하고 뛰어가던 예쁜 선생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아이에게 때리는 걸 좀 가르치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하니 다른 아이들이 때리면 맞고 울기만 하니까 자꾸 때린단다. 그래도 때리는 걸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생각하면서 그냥 흘려들었다. 아이 기질이 아주 여리고 착한 것을 정작 신중하게 받아들여서 사회성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적합한 교육과 진로를 고민했어야 하는 시기를 놓쳤다. 아이 혼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어른이 된 후에야 마음 아파하며 후회하는 참 한심한 엄마다. 지능발달 학습이론에서 3세 이전 기억은 잘 못 한다는 영아기 기억상실 이론을 접하고는 다행이구나 하고 크게 안도했다. 나만 아는 아픈 기억들은 아들에게 모두 영원한 비밀이다.

퇴직한 남편이 고향의 산과 밭에 과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3년 차인 올해부터 복숭아가 많이 열리니까 일이 조금 버거운 눈치다. 얼마 전에는 비 오기 전에 사다 놓은 묘목을 심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며 아들 녀석을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아빠 혼자 했냐며 자기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활용하라고 했다 한다.

“아빠, 이제 종강했으니까 저 알바로 고용해요. 복숭아 농사일 도울게요.”

“아직은 필요 없다.”

“왜요? 아빠 혼자 힘들잖아요?”

“그럼, 일당 2만 원 됐냐?”

“좀 센데? 만원, 아니 그냥 제 양심껏 받을게요.”

두 남자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에 웅크리고 있던 어두운 기억들을 밝은 햇살이 밀어내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박영화   18-08-23 22:11
    
'기억상실이론' 저와 같은 엄마에게도 참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든든한 어른으로 성장했으니, 미안한 마음을 좀 덜어내시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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