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봉이 깜빡거린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아스팔트 교차로에 서서 질주하는 썬팅된 차 안을 매섭게 응시한다. 오늘도 나! 이 순경은 아리랑 골 정선을 찾는 모든 이들의 사고 예방에 여념이 없다. 봄볕에 달아오르는 두 볼과 까맣게 그을린 목덜미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을 손으로 훔쳐낸다. 무심히 실려 오는 박태기, 수수꽃다리, 조팝나무의 화려한 봄내음을 느끼며, 몇 평 안 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둘러본 산야는 어느덧 늦봄, 잃어버린 봄, 내가 없는 계절에도 꽃은 그렇게 피어나 이제야 나를 반긴다. 비행기재에 줄지어 서 있는 하얀 자작나무와 내 어깨 위 무궁화 잎사귀에도 어느덧 녹음은 짙어만 간다. 작은 시간 돌 틈 사이 손 벌려 웃음 짓는 꽃다지의 미소를 본다. 꿈 많고 설레는 처녀 가슴의 봄을 그렇게 보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턱에 차는 엔진음에도 모두 자고 있건만 난생처음 가는 정선행 버스 안에 깨어 있는 모녀, 난 잠시도 창문 너머 달려오는 골짜기 산골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뒷골목 여관에 임시거처를 정하고 돌아서는 어머님의 무거운 발걸음에 “걱정 마세요”라는 외침은 메아리로 돌아오고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던 초임 발령지에서의 첫날 밤,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내가 이 고장, 이 자연을 소중하게 사랑하는 정신 지킴이가 되어 가는 것에 놀란다.
지난 추석 때와 연말연시 설날의 분주했던 지구대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이 내가 지금껏 살아온 꿈 많은 소녀에서 봉사가 무엇이지, 경찰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 스승이었음을 안다. 최전방의 지구대 생활, 짧은 시간 억척스레 변한 나를 볼 때도 있지만 아리랑의 고장에서 맑게 자라나는 여린 새싹들에서 소중한 동심과 부엉이 우는 마음속 때 묻지 않은 고향이 되도록 오늘도 이 순경은 핸드백 대신 반딧봉을 들고 립스틱 대용 반짝이는 은빛 호루라기를 불며 여기서 있다.
순박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범법자들이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는 곳, 신문 지상과 각종 매스컴을 장식하는 흉악범죄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려지는 곳,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한 시발점인 지구대, 여기가 내 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사명감을 일으키게 하는 곳이다,
주민 차량 담당제로 경로당과 반상회를 찾아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일,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순찰업무, 금융기관과 금은방 절도 예방 순찰,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상담업무 등, 이런 것들을 내 살갗으로 호흡하며 관심으로 실천하는 터전, 1년 365일 어린 꽃잎의 순수와 땅을 지키는 순박한 내 군민들이 생활하는 이 땅에 맘 놓고 살아가도록 환하게 불을 밝히는 곳, 강력단속으로 민원인으로부터 항의를 받더라도 내일은 범인 검거로 고맙다며 부둥켜 끌어안을 수 있는 곳, 이른 새벽 쏟아지는 까만 별들을 가슴으로 받고 동트는 태양과 눈 맞춤을 하며 순찰차의 요란한 경광등으로 눈 부시는 이곳이 바로 우리 지킴이들이 상주하는 지구대. 바로 이곳이다.
나 자신은 미흡한 순경이지만 민원인들에게는 걸어 다니는 법전이 되어야 하고, 교통사고 현장에선 냉철한 판단력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야하며 주취자 앞에선 눈높이를 맞추고 폭력사건 현장에서 위풍당당한 가슴을 지녀야 하고 또한 변사현장에서 철두철미한 눈매로 단서를 찾고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를 보일 줄 아는 눈망울이 있어야 한다 꿈 많은 어린이들 에겐 미래의 꿈을 주도록 부드러움과 당당함이 스며 있어야 하고 피의자 앞에선 맹혹한 눈빛을 지녀야 한다. 이렇듯 모든 우리 경찰관들에겐 넓은 가슴이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그분들이 나의 모든 선배님들이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던 추운 겨울밤,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산 아래 첫 동네 움집을 찾아 후레쉬 불빛하나로 의지하여 헤매고 또 헤매며 찾아가 현장, 공포에 떨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안심하는 눈빛을 보았을 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빨갛게 시린 볼과 추위에 지친 모습이 아닌 가슴의 흉장과 모자 위 포효하는 참수리였다, 그 길을 내려오며 달빛에 반짝이는 오반리골 새 하얀 눈은 연말 비상근무로 약속을 어긴 스키장 슬로프보다 아름다웠다
우리 경찰에겐 따듯한 가슴이 있다. 민원인 아닌 우리 고객들의 최전방 지킴이에겐 그들을 범죄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사명감과 책임이 우리들 우리 경찰에겐 있다. 깜깜한 겨울밤 기상예보도 없이 눈이 퍼붓던 날, 삽자루 하나 들고 반점재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뒷굽이 다 닳은 신발로 빙판길을 일일이 문질러 가며 모래를 퍼 나르던 일, 서치라이트 빛을 빌려 밤새 어수룩한 삽질로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도 이마에 송송 맺힌 구슬땀과 바꿀 수 있을까?
이 봄이 가고 또다시 봄이 와도 난 이 자리에 서기로 했다.
나를 지켜보는 산이 있고 그 아래 선량한 군민들이 사는 한......
내일 아침에도 이 순경은 반딧봉과 은빛호루라기를 들고 가슴은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며 지구대를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