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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망이를 위하여    
글쓴이 : 김정희 투    19-03-30 12:52    조회 : 4,721

우리 아파트 뒷길은 성남 탄천으로 이어진다. 아주 운치 있는 산책로이다. 길 양옆으로 단풍나무, 벚나무, 떡갈나무, 느티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사계절의 멋진 풍광을 온 몸으로 느낀다.

산책로 주변에는 길냥이 일곱 마리가 주민들의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길냥이를 혐오하지 않고 다들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참 다행이다.

우리 아파트와 제일 가까운 산책로에는 엄마와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 매일 챙겨주는 아줌마가 있어 우리는 산책하면서 눈인사만 주고받는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지혜롭고 도도한 녀석들이다.

 

어느 날 저녁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데 주위를 배회하는 낮선 길냥이가 눈에 띄었다. 처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극도의 경계심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허기진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몸은 새까맣고 두 눈은 샛노란 게 눈에 쏙 들어왔다. 산책을 가다말고 근처 가게에 들러 닭가슴살 캔을 사서 나뭇잎 위에 올려 주었더니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은 것 같아 걱정 되었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길냥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늦가을에 만난 길냥이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나는 이름을 까망이로 부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산책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나무 사이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서 야옹하고 부르면 바로 뛰쳐나와서 반갑다고 내 발등을 비비곤 한다. 식성은 좋아서 주는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마트에 가서 고양이 건사료와 연어, 참치, 닭고기 캔을 사왔다. 남편이 보더니 그렇게 되면 강아지 에게 조금은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며 넌지시 웃는다.

며칠 지나 까망이를 자세히 관찰했더니 구내염이 진행된 것 같았다. 침을 조금 흘리고 먹는 속도가 느려지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짠했다. 길고양이 특성상 구내염과 장염은 항상 동반된 질병인 것 같다. 집에 있는 항생제중 제일 순하고 내성이 작은 아목씨실린500mg 한 캡슐을 3등분하여 일곱 포를 만들어 한포를 닭가슴살 캔에 꿀 과 함께 섞어 주었지만 금방 쓴 맛을 알아채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곧 채념한 듯 천천히 밥그릇을 다 비웠다. 까망이의 인내심이 대견스러워 한참을 쓰다듬어 주었다. 까망이도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발등을 비비며 드러눕기도하며 감사의 퍼포먼스를 펼쳐 주었다.

하루에 한 번씩 일주일간 투여했는데 상당한 차도를 보인 것 같았다. 침 흘림도 없어지고 먹는 속도도 빨라졌다. 잘 협조해준 까망이가 더욱더 사랑스러웠다. 구내염 예방차원에서 습식 사료보다는 건식 사료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부엌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수시로 까망이의 유무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닌가? 어떤 때는 저녁식사 준비 하려는데 까망이가 눈에 띄었다. 배가 고픈 것일까? 식사 준비 하다말고 먹을 것을 챙겨 달려갔다. 날씨가 쌀랑해지면서 냉장고에 보관한 캔 사료는 차가울 것 같아 염분을 뺀 북어포 삶은 물에 북어포와 닭가슴살을 그릇에 담아 달려갔더니 하나도 안남기고 국물까지 다 먹었다. 보는 내내 내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간혹 외출하고 들어와 밥시간이 늦어질 때도 있다. 부랴부랴 음식을 들고 달려가면 야옹 소리를 내며 뛰쳐나온다.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준 까망이를 보면 마음이 서러웠다.

 

때맞춰 달려가서 반기며 쓰다듬어주고 배부르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서인지 많이 똘똘해지고 건강해 보이고 주위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줄어들었다. 밥만 먹고 훌쩍 사라진 까망이가 애처로워 예쁜 집을 하나 만들어 주고 싶어 길냥이 돌보는 아줌마에게 물어 봤더니 새로운 집이 생기면 영역 다툼의 표적이 되어 쫓겨난다고 했다. 집안에 푹신한 담요와 핫팩을 넣어 주려던 나의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다.

 

이렇게 까망이와의 만남은 한 달 동안 이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까망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며칠을 밥시간에 맞춰 기다렸으나 까망이는 오지 않았다. 혹시 사나운 길냥이들 눈을 피해 밤늦은 시간에 나타날까도 싶어 건사료를 밥 먹던 자리에 놔두었지만 사료는 그대로 있고 낮에 까치와 참새가 쪼아 먹고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그건 아니었다. 노심초사 저녁 밥시간이 되면 부엌 창문만 바라보게 되었다. 산책길에 이웃 아줌마들에게 수소문 해 봤더니 까망이가 조금 멀리 이동한 것 같다고 했다. 영역 다툼으로 까망이를 괴롭히는 왕초 고양이가 있어 쫓김을 당해 이쪽으로 올 수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이 으르렁 대며 싸우기도 하고 자리 다툼도 하며 사는 것이 길냥이일 텐데 이렇게 순하고 착하기만한 놈이 어떻게 야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추워지면 까망이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봄처럼 포근한 날이 며칠 계속되면 까망이가 나를 찾아올 것 같아 자꾸만 부엌 창문으로 눈이 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까망이가 옮겨간 장소에도 주민의 보살핌으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나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살아 움직이는 뭇 생명들이 눈에 들어와 가슴에 박힌다.

살아있으면 꼭 만난다는 이야기는 까망이와 나에게도 통하는 걸까?

꽃피는 슬프고도 찬란한 봄을 기다려 본다.


문영일   19-03-31 05:39
    
글방에  처음 나오신  분이라고  누가 그러겠습니까?
오랜 동안  약국을 경영하셨다고  하셨는데, 글만 쓰신  분 같군요
길고양이  곧, 까맹이  하나의  화소를 가지고  이렇게  서술하실 수 있으시다니..
측은지심의  심성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턔어나신 게  틀림없지요?
그 마음 하나로 김정희 투님은  벌써 작가이십니다.
건필하십시오.
박재연   19-04-02 08:54
    
벌써 세번째 작품이네요^^
까망이는. 어디로 갔을지. 저도 궁금해요.  어디든 잘 살고. 있겠지요?
작가의. 따뜻한 성품이. 잘. 느껴집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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