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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홍쿠버    
글쓴이 : 신미순    19-05-10 21:47    조회 : 4,876
   밴쿠버&홍쿠버.hwp (17.0K) [3] DATE : 2019-05-10 21:47:23

밴쿠버 & 홍쿠버

 

신 미 순

 

우리 큰애 영어를 가르쳐준 장 선생님이 이웃에 산다. 어느 날 우리 둘째가 뭐 하냐는 물음에 대학 3학년인데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장 선생님은 큰아들이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데 우리 둘째 정태하고 ,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니 보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마침 캐나다에서 아파트도 샀고 아들이 호텔리어라서 평일에 휴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옆에서 잘 돌봐줄 수 있다며, 다른 건 필요 없고 영어만 조금 할 줄 알면 된다고 한다.

 

남들이 다 보낸다는 조기유학은 못 보냈어도 지금 기회가 오나보다 했다. 그동안 부담스럽고 버거워서 꿈도 못 꾸었던 해외 유학의 길이 찬란하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다시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늦기 전에 아들을 보내고 싶어졌다.

 

정태는 7살에 초등학교 입학해서 재수 안하고 대학가고,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22살이었다. 사회 경험도 쌓을 겸 대학 3학년에 휴학계를 내게 했다. 또래 보다 2~3년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나는 지방 대학에 다니는 아들에게 전화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 형 영어 가르쳐준 장 선생님 큰아들이 밴쿠버에 있대, 너 오라는데 한번 가볼래. “네에, 근데 어떻게 가요우선은 실업비자로 가서 북창동순두부 집에서 6개월~1년 정도 알바로 일하다가 상황을 보고 나서 캐나다에 있는 대학에 편입해서 수료증이나, 졸업장 등을 취득 목표로 하자. 아니면 단기 여행비자로 들어가고 나서 그 다음은 캐나다에 가서 그 형하고 의논하자. 장 선생님 여동생 부부와 가족들도 밴쿠버에서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대.

 

시기가 늦었다고 안 간다는 아들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남자가 모험심도 있고 용기도 있어야지, 엄마의 지원이 있을 때 까짓것 큰 맘 먹고 다녀와라. 지금이 기회야, 더 나이 먹어봐 시간도 돈도 없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다녀와! 나는 엄포를 놨다가 구슬렸다가 내가 더 안달이 나서 보챘다.

 

하는 수 없이 정태는 그럼 그럴까! 하고 다녀오라고 애면글면하는 엄마가 오히려 더 애처로웠다고 했다. 겨울방학 되면 분당 집에 올라와서 장 선생님한테 영어부터 배우기 시작하자고 말했다. 반승낙을 얻어낸 나는 마음이 바쁘기 시작했다. 타국에 나가서 아프면 안 되니까, 건강검진부터 하자고 했다. 치과 치료와 미루어 오던 치질수술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챙겨 먹기 등을 리스트에 적었다.

 

나는 마치 아들이 이민이라도 가는 것처럼 최대한 완벽한 준비를 위해서 온힘을 쏟았다. 때마침 백화점 세일 기간이라 한쪽에 모아둔 우편물을 뒤적여서 쿠폰이 적용되는 매장 부터 둘러보았다. 백화점 2~3곳의 가격을 비교해 보고 양복도 2벌 사고, 와이셔츠, 넥타이, 여벌 옷 가지며, 유명 브랜드 코트도 세일에 추가 할인을 받았어도 50만원을 훌쩍 넘었지만 큰마음 먹고 장만해 주었다. 그도 그런 것이 큰애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일하면서 큰애한테만 신경을 좀 써왔고 둘째까지는 도저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대학 2학년까지 마친 정태에게 엄마로써 뭐라도 해주고 싶은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6일 동안 영어를 배우러 가는 날 아침이면 사과와 당근을 신선하게 강판에 갈아서 배 보자기로 짜 즙을 내서 먹이고 장 선생님 것까지 포장해서 보냈다. 그렇게 60일 정도 시간이 흘렀다.

 

와이파이의 보급으로 무선기기를 장치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 화상으로 연결하여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해외에 있는 아들과 통화도 할 수 있고 카카오 톡으로 글로벌 시대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 통신장비로 밴쿠버에 있는 형과 통화도 여러 번 시도해 보면서 기기 작동법까지 익혔다.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가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떠나는 날, 짐은 최소한으로 줄인 게, 이민 가방 큰 것 두 개이고 기내용 가방 하나에 보조가방 하나였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눈물의 이별을 하며 처음 생각과는 달리 안타까움에 걱정 반, 두려움 반, 가슴이 아려 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이게 뭔가 간다고 해도 앞장서서 말렸어야 했는데, 그깟 해외 유학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이력서 스펙의 한 부분인 양 못 보내서 안달을 떨더니만 꼴좋다. 순간 회한과 번민이 몰려왔다.

 

정태가 타고 갈 비행기 이륙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발길을 집으로 향했다. 밤이 지나고 이튿날 17시간이 지난 새벽 시간이었다. 도착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밴쿠버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정태가 불법 체류자로 분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단다.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허망했는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유인즉 친지방문도 아니고 유학 비자가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인데, 장 선생님 큰아들은 4년 동안 체류하여 1년만 채우면 캐나다 영주권을 받는 상황이어서 정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고 한다.

 

장 선생님 동생 집의 주소를 묻는 조사관의 질문에 정태는 선뜻 말하지 못한 게 이유였다. 당황도 하였고 정확히 몰라서 버벅거리니까 꼼짝없이 난감한 상태였다. 조사실에는 악기를 휴대한 여학생 모녀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였고, 요리사가 꿈인 형 또래 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캐나다 정부에서는 비일비재인 모양이었다.

 

무사귀환 한 정태를 잘 왔다고 깊은 포옹을 하며, 등을 토닥거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좀 더 정확히 알아보고 일처리를 했어야 되는데, 업무와 병행하다 보니 이런 실수를 다 하네. 살면서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을 단속 못한 내 불찰을 원망했다. 나는 허당에 철딱서니 없는 엄마가 되었다. 세상에 공들이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순간 스펙에 욕심을 부린 죗값이라고 생각했다.

 

천혜의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는 이민 인구를 정부 측에서도 적극 찬성하며 장려하여,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지만 유독 대학생들은 불법 체류자로 분리되어 단속이 심했다고 한다.

 

다행히 녀석은 일자리 창출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채용한 은행 청원경찰로 다니게 되었다. 일 년이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르바이트 2년 차엔 유명 골프 브랜드에서 대형 창고의 재고 조사와 박스 정리 정돈하는 업무를 익히며 힘든 일을 군말 없이 해냈다. 나름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도 되었다. 어느덧 무난히 대학을 졸업하고 그동안의 우여곡절이

전화위복이 되어,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7~8개를 취득했다. 지금은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근무 중이다. 씩씩하고 건강한 아들 정태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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