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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을 지나서 왼쪽으로    
글쓴이 : 김혜림    20-01-14 02:25    조회 : 4,306
   터널을 지나서 왼쪽으로.hwp (48.0K) [0] DATE : 2020-01-14 02:25:38

터널을 지나서 왼쪽으로

                                                       김혜림

 

  길고 좁은 터널이었다. 반가웠던 봄비마저 을씨년스러웠다. 마주 오는 차와 부딪히지 않으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자 머리까지 아파왔다. 고분고분 말 잘 듣던 내비게이션은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갈 곳을 잃었고 집주인은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블랙리스트의 최고봉에 등정한 그녀 때문에 타부서의 원성이 우리 팀으로 일제히 쏠렸다. 60대 여인의 전화 한통에 작은 시골 보건소는 크게 들썩거렸다. 담당자가 급히 퇴사하였고 누군가는 가야만했기에 팀원들끼리 제비뽑기를 했다. 다른 것을 뽑았어야 했다. 십년간 방문간호서비스를 받으며 직원 열댓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맘대로 주물렀다는 전설이 이젠 나의 무서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부담에서 벗어난 팀원들은 격려의 박수와 함께 한마음으로 위로하였다.

 터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먹통이 된 내비게이션을 껐다. 차에서 내려 우산도 없이 늦은 오후가 끌고 오는 일몰을 바라보았다. 멀리 회색빛 하늘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시골로 내려오던 그날의 막막했던 하늘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비어있는 하늘과 무언가를 키워내었을 흙들이 비바람에 섞였다 흩어지는 상상을 잠시 했다. 어딘가에 서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이 그렇게 절묘하게 삶과 닮아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길이 사라진 길 위, 그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그녀와 그 터전이 슬픈 느낌으로 다가왔다.

 얼굴도 모르는 여인의 존재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동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녀는 도깨비같이 생긴 60대 여인이었다. 사무실 문을 발로 뻥 차더니 일단 쌍욕부터 퍼부었다고 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욕 세례를 영접한 그들은 말문이 막혀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결국 담당자를 곧 보내겠다는 말로 어르고 달래서 일단 돌려보냈다고 했다. 전화선을 타고 고막을 폭격하던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언어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나름의 고충이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자세를 낮추고 빠른 방문약속을 잡았다.

  터널 앞으로 아득한 벌판만 끝없이 이어졌다. 양쪽으로는 잡풀이 우거진 비포장 도로가 있었다. 비에 젖은 주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사막에서 길을 찾는 영화 속 인디언처럼 빠른 판단을 해야만 했기에 오감을 집중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개 짖는 소리가 났고 허기진 탓인지 밥 짓는 냄새도 코를 스쳤다. 이런 적막강산에 무서워서라도 개 한 마리는 키울 듯싶어 급히 물품을 챙기고 터널 왼쪽을 돌아 질퍽한 흙길로 들어섰다. 멀리 생뚱맞은 빨간 지붕의 판잣집이 논과 밭 중간에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길은 사라졌고 용도 모를 흙 밭을 지나 비에 젖은 미끄러운 철길을 겁도 없이 넘었다. 대문도 담도 없는 집 입구엔 부서진 개집들이 뒹굴고 있었다. 개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제 밥값을 하려는지 목이 터져라 짖어대었다. 음산한 기분 탓이었을까.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다. ‘민원은 일단 막아야한다’라는 상사의 부탁을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커지는 개소리에 여인은 부스스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히 내다보았다. 스산한 기운을 밀어내려 일단 웃으며 인사를 했다. 여자는 말없이 무거운 그림자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형광등 불빛아래 새침하고 차가운 인상이 드러났다. 젊은 시절 꽤나 미인이었을 법한 윤곽이 남아있었고 들은 것과는 다른 분위기에 조금은 놀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절대 쉽게 보여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외관과는 다르게 집안은 정돈이 된 분위기였다. 조심스럽게 내놓은 커피 잔은 뜬금없이 고급스러운 영국제 본 차이나였다. 유럽여행 때 엄마선물로 사드리고 싶어 몇 번을 망설였던 것을 시골 판잣집에서 마주한 기분은 묘했다. 달달한 커피 향에 차갑던 공기가 그나마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나의 조심스러운 서두를 싹둑 자르고 갑자기 입을 열기 시작한 여인은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두라면서 기선을 잡으려 했다. 예천의 어느 부농의 막내딸로 태어나 잘난 남편 만나 떵떵거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으며, 시청이며 군청 높은 자리에 지인들이 수두룩하다했다. 적당한 감탄사와 추임새로 공감을 하면서 불만사항을 넌지시 물었다. 예전 간호사들은 무조건 한 달에 두 번 지체 없이 방문했으며 물품들도 다른 대상자보다 더 특별히 챙겨주었는데 요즘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첫 방문부터 이 힘겨루기에서 절대 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일정은 다른 분들처럼 똑같을 것이며 드리는 물품도 공정하게 원칙대로 할 것이라고 했다. 순간 여인의 미간에 내천(川)자가 떠오르더니 흥분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방심한 탓일까. 여인의 입술이 실룩거리더니 금세 그 유명한‘식빵’을 시작으로 각양각색의 욕들이 튀어나왔다. 당장 소장에게 전화를 걸고 내 옷을 벗게 하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어깃장과 욕설에 순간 화가 났지만 침착하고자 애썼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좋게 끝내고 퇴근해서 아이들과 비오는 날의 부침개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그 생각으로 버티며 좀 더 인내해야만 했다. 여인의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태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에 더욱 화가 났는지 옆에 있던 바구니를 발로 차고 애꿎은 베개를 구석으로 던졌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갑자기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흐느낌이 너무 구슬퍼 하마터면 마음이 약해질 뻔했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그 작은 어깨를 털썩 안았다. 깜짝 놀라 밀쳐내는 그녀를 웃으면서 다시 안았다. 저항하며 버둥거리던 등이 나의 손길에 조금 잠잠해졌다.

“우리 어머님, 많이 속상하셨구나. 이제 좀 시원하셔요?” 여인의 목소리는 힘을잃었고 수줍어하기까지 했다.

“아유, 몰러. 그래두 파스는 4장은 줘야 돼. 딴 년들은 다 그렇게 해 주드만.” 이 싸움에서 절대 물러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안돼요, 그럼 다른 분이 못 받게 되세요. 제 대상자만 3백 명이 넘어요.”

여인의 눈빛이 호전적으로 돌변했다.

“그럼, 우리 집은 매달 와. 딴 년들은 다 그렇게 했어.”

그녀 또한 이 싸움에서 뭔가 한 가지라도 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안돼요, 암환자 분들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방문 일정이 다 꼬여버려요."

여인은 서러운 듯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두 저두 다 안 되믄 내가 소장한테 전화해서 너 짜르라고 할 수 밖에.”

핸드폰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여인을 보며 방문가방을 챙겨서 일어섰다.

“할 수 없네요. 이렇게 짤리나 저렇게 짤리나 어차피 짤릴거 편하신 대로 하세요. 원칙대로 안하면 다른 분들도 어머님처럼 민원을 넣으시거든요. 안녕히 계세요."

집을 나와 서둘러 차로 향했다. 맨발로 따라 나온 여인은 드디어 백기를 들었다.

“아이고, 살다 살다 이렇게 고집 센 년은 처음이네. 알았어, 알았다구.”

  그렇게 시작된 빨간 지붕 집 방문은 꼬박 삼년을 이어나갔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과거를 풀어낸 여인은 지독히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소문처럼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가난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은 영혼이었고 저물어가는 삶이었다. 그 집을 가려면 매번 어둡고 이름 모를 그 터널을 지나가야만 했다. 음습하고 고독한 그녀의 삶이 터널에도 축축하게 배어있었다. 그곳을 오갈 때마다 가난하고 외로웠고, 더욱 외로워질 한 사람의 삶이 그려지곤 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내 삶에 다가오는 것은 하나의 인생과 그의 세계가 함께 오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나의 세계와 닿은 그것의 작은 끝자락이 거친 것이든, 부드러운 것이든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올 여름부터 대상자를 다시 정리하면서 그녀는 신입 직원에게 배정되었다. 그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미로 같은 집 찾기를 그림으로 그려 자료와 함께 건네주었다. 터널을 지나서 왼쪽으로 걸어 들어가 만날 한사람의 인생이 다른 이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따라 내 삶으로 찾아 올 누군가를 나도 언젠가는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때가 되면 길 입구에 심어놓은 튼실한 나무 한그루가 손님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따스한 차 한 잔 내리는 주름 잡힌 나의 손길이 차 사발에 고운 미소로 번지기를 조용히 꿈꿔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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