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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여 잘 있거라    
글쓴이 : 김혜림    20-03-23 12:34    조회 : 2,908

무기여 잘 있거라

 

김 혜 림

 

 시기를 놓친 대청소를 위해 부모님 집에 들렀다. 겨울바람이 어수선한 마당을 쓸어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일단 청소기를 돌렸다. 속을 긁는 금속소리가 수상해서 먼지 통을 열어보았다. 해묵은 시간들 속에서 그게 불쑥 나올 줄은 몰랐다. 30년은 족히 넘은 작은 총알이었다. 단단하고 차가운 파편이 장롱다리 틈에 박혀 있다가 어떻게 밀려 나왔을까 신기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마음은 늘 부자여서 하고 싶은 건 꼭 실행에 옮기는 그리 반갑지 않은 행동가였다. 그 흔한 개집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불쌍한 쫑쫑이는 달 반을 집도 없이 마당 구석에서 지내야했고, 돈 만원이면 사는 것을 개고생 시킨다며 엄마는 애를 끓였다. 그래도 땅을 파고 기초공사를 제대로 한 창문 달린 개집은 처음이라며 동네사람들이 우르르 구경을 오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의 관심이 낚시를 지나더니 언제부터인가 총으로 넘어갔다. 공기총을 구입하자 각종 산탄과 총알, 도구들이 방바닥 여기저기 나뒹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 와보면 의식을 치르듯이 엄숙하고 섬세하게 총신을 손질하고 가늠쇠를 노려보는 아버지를 발견하곤 했다. 일을 하러 가시는 바쁜 아버지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린 눈에도 아버지의 치기는 불안해보였고, 엄마의 말 못할 고달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자고 막내였지만 집에서 차별을 받은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무소불위의 힘은 분명히 존재했다. 총을 손질하는 아버지에게 툭 내뱉는 엄마의 잔소리 한마디가 공기를 불안하게 흔들었다. 총은 어린 나에겐 호기로운 취미보다는 강력한 무기로 느껴졌다. 엄마에게 아버지가 발끈할라치면 주의를 돌리기 위해 아버지의 보물들에 관심을 표현했다. 떼를 지어 다니는 참새 같은 종류는 산탄으로 잡고, 몸집이 큰 것들은 한발씩 장전하는 총탄으로 잡는다며 9살 막내딸에게 신이 나 설명을 하곤 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각종 용어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철없는 아버지와 딸이 짝짜꿍이라며 엄마는 속도 모르고 한 묶음으로 미워하였다.

 아버지의 사냥터는 집에서 20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소백산 줄기에서 끄트머리에 살포시 걸쳐있는 그곳은 마흔이 훨씬 넘은 아버지의 전용 놀이터였다. 기분이 좋을 땐 계절이 남기고 간 꽃이나 열매들을 설명하면서 따서 건네주었다. 사냥놀이에 동원된 요원은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당에서 단기속성으로 훈련을 받더니 언제부턴가 쫑쫑이도 ‘사냥개’라는 미명아래 한 팀이 되었다. 1년이 지나도록 녀석이 땅에 떨어진 참새를 물고 온 것은 딱 한번뿐이었다. 번번이 실패 한 후 야단을 맞고 기가 죽은 녀석은 좀 우울해보였다. 녀석과 나는 두고 온 집 방향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공기총을 사용하기 위해선 가스통이 필수였다. 9살 나이에 그 무거운 것을 어깨에 메고 들로 산으로 어떻게 따라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야 엄마가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무작정 총 그림자를 뒤쫓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조력자가 필요했고 9살의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철없는 아버지에게 지쳐 엄마가 떠나리라는 무서운 상상이 매일 밤 찾아오는 불안한 시절이었다.

 공기총의 번거로운 손맛에 싫증이 나자 아버지는 엽총에 관심을 가졌다. 고가의 총을 구경하기 위해 제법 멀리까지 다녀오는 날이 잦아졌고 엄마의 근심은 깊어졌다. 끝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엽총을 장만한 아버지는 천하를 얻은 얼굴이었다. 오소리, 담비, 족제비, 부엉이가 집으로 들어오고 몸집이 큰 멧돼지도 찾아왔다. 모두 생명을 잃은 공허한 눈으로 마당에 던져졌다. 일부분은 동네잔치용으로 나머지는 박제가 되어 안방에 자랑스럽게 꾸며졌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버지는 어김없이 막내딸을 찾았다. 밖에서 놀다 들어온 쫑쫑이도 영락없이 붙잡혀 사냥터로 향했다. 봄이 찾아온 산과 들은 따스했다. 순풍이 불었고 꽃잎은 생기가 있었다. 자연의 평화를 깨기 싫은 그런 날이었다. 우리 일행이 마치 침입자 같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아버지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늦은 오후의 고요한 산이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공범이 되어버린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갑자기 돌아가자는 말에 화가 난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놀란 내가 하늘을 바라보자 아버지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바람을 타고 유유히 매가 날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장전을 마친 아버지의 총구는 매를 겨누고 있었다. 가끔 집 옥상 위를 선회하던 멋진 그 녀석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랬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탕’ 소리에 놀란 쫑쫑이는 어느새 줄행랑을 쳤다. 견고하고 정밀한 엽총소리는 공기총보다 훨씬 잔인한 느낌이 났다. 순간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밀쳤다. 매를 주워오라는 명령도 무시하고 나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마당에서 보았던 모든 사체의 피비린내가 한꺼번에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미친 듯이 뛰어가면서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늘 다니던 길에서 봐두었던 곳이었다. 풀이 참하게 솟은 산소 뒤쪽 경사에 숨어있다 깜박 잠이 들었다. 어둑어둑했고 길은 희미해졌다. 알고 있던 모든 무서운 이야기들이 떠올랐지만 집으로 들어갈 일이 더 걱정이었다. 다행히 반쯤 걸어 내려오다 쫑쫑이를 만난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기를 잃은 매의 노란 눈과 마주쳤다. 끝내 녀석은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집안은 부모님의 말다툼으로 시끌벅적했다. 살며시 이층으로 올라가려던 순간 안방에 있는 총이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안방 문을 열자 엄마에게 쏠렸던 아버지의 화는 나에게로 왔다. 몇 분간의 야단을 받아내면 모든 게 괜찮을 줄 알았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불구덩이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부부싸움은 커졌고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방을 나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격앙된 사이에 갑자기 ‘펑’하고 굉음이 난 동시에 총에서 무언가가 날아가 천장을 뚫었다. 너무 놀란 부모님들은 동시에 어린 딸의 안전을 살폈다. 공기총 속에 채 빠지지 않은 가스가 그렇게 위력이 큰지 아무도 몰랐다.

 그날 아버지는 정말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어쩌면 사냥에 싫증난 시기와 맞물린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후 총들은 다락방 깊숙이 잠들어있다 법에 따라 경찰서에 보관되기도 하면서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끝내 처분되었다. 총이 지나간 자리는 오토바이가 대신하였다. 몇 번의 사고 후에도 아버지는 오랫동안 오토바이를 즐겼다. 이제는 간단한 소일거리 후에 조용히 책을 보거나 TV 다시보기를 즐기시는 아버지를 보면 새삼스럽다. 옛사람들처럼 사냥을 통해서라도 가족들에게 뭔가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셨던 걸까. 그 시절의 아버지를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아버지에겐 총이 그저 취미였을지 몰라도 가족들에게 그것은 큰 위협이었다. 총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포와 근심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일상을 마음대로 끝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지킬 수 있기를, 시간이 주는 지혜와 마음의 울림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되기를 소망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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