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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영이의 이야기    
글쓴이 : 김선봉    20-09-30 17:39    조회 : 6,168
   미영이의 이야기(수정)-2020.09.19.hwp (184.0K) [0] DATE : 2020-09-30 17:39:07

미영이의 이야기 김선봉

으으!”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육중한 15톤 덤프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미영이는 기겁을 했다. 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놀라 소리도 제대로 안 나왔다. 할 수 있는 건 흐느끼는 것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모든 신경과 감각이 마비되어 얼어붙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 그 자체였다.

소리쳐 비명이라도 질러보고 싶었으나 말이 안 나왔다. 몸을 움직여 발버둥 치고 싶었으나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작은 승용차를 운전하는 미영이를 노리고 작정한 듯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무서웠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이제껏 이러한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다. 속으로 이 모든 상황이 꿈이길 간절하게 빌었다.

미영아! 일어나 봐. 너 또 악몽 꾸는구나.”

유진씨는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흔들어 깨웠다. 그래도 잘 깨지 않자 한참을 흔들었다. 미영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너 또 꿈꿨구나? 그러게 낮에는 낮잠 자지 말랬잖아. 낮잠 자면 악몽 꾼다고.” 유진씨가 미영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며 말했다. 미영이는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비로소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하긴. 종일 누워만 있으면 깜빡깜빡 잠들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안 자려고 노력해야지.” 유진씨가 말했다.

미영이는 올해 나이가 42세다. 24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침대에서만 생활한 지도 벌째 18년이나 됐다. 꽃 같은 청춘을 침대에서 보낸 것이다.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될지 누가 알았겠나. 유진씨는 그녀를 돕기 위한 유료봉사자인 활동 보조인이다. 그녀 곁에서 손발이 된지 8년이 됐다. 유진씨는 56세로 그녀를 동생처럼 대한다.

 

, 내가 폐암 말기라니 믿을 수 없다. 고작 3개월밖에 못 산다니.’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낙심하는 중이다. 진단 후 4개의 사업장에 출근도 그만뒀다. 자동차대리점과 스포츠용품대리점, 찜질방,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사장이었다. 그래서 부족함 없이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왔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곧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그는 운영하던 사업장들부터 정리해야 했다. 영업장 자진폐업 신청을 하고 마땅한 사람에게 넘기거나 해서 정리를 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큰딸은 같은 학교의 선생과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그러나 막내딸은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24세에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혼이라 걱정은 더 컸다. 막내딸이기에 그의 사랑은 지극했다. 그녀가 김미영이다.

모든 일은 뒷 처리가 가능했으나 막내딸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처음엔 멀쩡하게 키운 딸 아이가 순식간에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나친 운명의 장난에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겐 3개월밖에 시간이 없었다.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본인이 죽기 전에 막내딸의 미래도 빨리 결정해야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미영의 아버지는 남다른 성실성과 사업 감각으로 큰 부자가 됐다. 젊은 시절 능력 있는 남자라 배필을 고를 때도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한 건 당연했다. 능력은 곧 선택권의 확장을 상징하니까.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유능한 남자들은 예쁜 여성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일부의 남성들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이는 아름다움은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자녀의 일은 능력 밖의 영역이었다. 막내딸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물론 5년 후 기적적으로 의식은 깨어났다.

미영이는 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했다. 누워서 씻고 식사하며 용변처리도 했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 근육뿐이었다. 말도 못 하기에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곁에서 8년 동안 도와준 활동 보조인 유진씨와는 의사소통이 조금 가능했다. 그것도 좋고 싫음의 단순한 표현 정도였다. 눈 깜빡임을 평소보다 빨리하면 긍정의 신호다. 눈 깜빡이는 속도가 긍정과 비례했다.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번지면 좋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평소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변화를 읽어야 했다. 서로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해가 지며 어둑어둑한 초저녁, 미영이 아버지가 딸의 방안으로 들어섰다. “미영아.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가냐.” 속삭이는 그의 입은 떨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응어리가 올라오자 감정도 복받쳤다. 혼자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설령 그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폐암 말기란 소식을 가족들은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비밀로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에게 충격을 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미영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침대에 누워 천정만 보며 눈만 깜빡깜빡 거린다. 아버지는 앙상한 손을 만지며 말했다. “그 먼 곳으로 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아빠가 없어도 우리 딸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순간 목이 메이자 잠시 침묵한다. 잠시 후 내 딸로 와줘서 고마웠다.” 그녀를 보며 아버지가 눈시울을 붉혔다. 이것이 아버지와 미영이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다음 날 아침 호흡곤란으로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입원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 미영이는 봄볕이 따뜻한 날 아침에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선산에 묻히려 했으나 문중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이때 이 상황을 그녀의 큰아버지가 나서서 한 마디로 해결하고 선산에 묻힐 수 있었다.

살아있을 때, 제 동생이 미영이만은 자신이 거두겠다며 자기 옆에 묻어달란 유언을 남겼습니다.”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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