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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글쓴이 : 최주철    21-02-24 07:51    조회 : 6,079

새벽에 한쪽 귀를 물고 놓지 않던 베개를 떼어 내고 사무실 시멘트벽을 더듬었다. 스위치를 올렸다. 사무실 안쪽부터 물샐틈없이 가득 차 있던 어둠은 화들짝 놀랐다. 소리 없이 책상 밑으로 사라졌다. 어둠은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책상 아래에 머문다. 삐뚤게 놓인 의자 방석을 바로 놓고 묵직한 엉덩이를 의자에 얹었다. 뽀글거리며 울던 커피포트가 펄펄 끓는 물을 종이컵에 부었다. 톳 색깔 향이 뱀같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커피는 책상에서 하얀 삶을 뿜어내며 조용한 아침을 맞는다. 귓바퀴가 시리도록 고요하다. 침묵은 무겁기만 하다.

 

책상은 앉아서 또는 서서 하는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상판만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서랍이 생겼다. 책상은 동양보다 먼저 서양에서 사용이 되었다. 뚜껑이 달린 상자를 올려두고, 그 위에 책이나 학습 도구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17세기 책상 상부는 정리 선반에 경사진 뚜껑을 달아 그것을 열면 서판이 되는 형식이었다. 서판에 뷔르라는 천을 붙였기 때문에 이 형식의 책상을 뷔르라고 했다. 18세기에 경사판이 수직으로 발전하였다. 하부는 서랍이 설치되었다. 상부는 대형의 개폐 뚜껑이 달린 선반이 있었다. 이 정리 선반 대신 서가나 책장을 갖춘 형식의 책상을 세크레터리라 하였다. 당시에 유행한 책상의 형식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작은 좌식 책상에서 오늘날 서양 책상과 같은 양식에 이르고 있다.

 

아이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책상 만드는 순서를 보았다. 책상 만드는 과정을 테일러(Frederick W Taylor)의 피드백 시스템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투입은(나무, 기술, 인력, 비용), 과정(설계도면, 가공, 결합), 산출(만들어진 책상), 피드백(보완)의 설명이었다. 녹색 칠이 반짝이던 학창 시절 책상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책상을 만들어 주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 말려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윗녘 목공 작업대에서 활톱으로 잘랐다. 대패질로 깔끔히 다듬었다. 가로프레임과 책상다리, 서랍장까지 만들었다. 피드백 시스템은 아버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책상에서 형이 공부했고 누나 둘을 거쳤다.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갔다. 책상 가운데를 땅의 끝보다 깊은 선으로 갈랐다. 경계선을 공책이나 지우개가 넘으면 고사리 손날로 잘랐다. 점심시간에 책상은 달그락거리며 나누던 도시락을 따뜻하게 받쳐주었다. 숙제 못 한 날이면 여 선생님은 책상 위에 무릎을 꿇렸다. 가녀린 손놀림은 세차게 무릎을 내리쳤다. 부모님의 일손 도운 대가를 회초리 소리로 받았다. 책상은 짜릿한 전율을 즐기곤 했다. 청소 시간에 책상은 머리에 의자를 쓰고 뒤로 밀렸다. 책상은 친구들과 말타기, 귀 잡고 돌기, 더 멀리 미끄럼 놀이하느라 시끄러워도 미소로 응원해 주었다. 교실 마루를 문지르고 유리창을 다 닦다 보면 한 장씩 깨뜨렸다. 모자를 벗고 돌아온 책상에서 반성문을 썼다. 나머지 공부를 했다. 책상을 보면서 입을 삐쭉거렸다. 글자 받침이 틀리면 반성문을 몇 번씩 다시 썼다. 집에 늦게 돌아와 어머니께 투정을 부렸다.

 

중학교 수업 시간은 길었다. 근엄했던 선생님의 책상에 있던 교과서가 궁금했다. 그곳에 선생님의 시험 출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말씀보다 어떻게 하면 책상 위에 책을 볼 수 있을까?’ 궁리했다. 시험 전날이면 꼭 시험에 나온다는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 교과서 요점 내용은 책상이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책상 사이에 책가방 성벽이 쌓이면 쪽지 시험 보는 날이다. 책상의 침묵이 속상했다. 기말시험 감독 선생님이 홀·짝수 분단을 바꾸라고 했다. 떨어지지 않던 궁둥이를 옮겨야만 했다. 천재 책상과 생이별이었다. 결국 예상 밖에 성적표를 받았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눈물 소리를 쏟았다. 책상의 녹색 페인트 냄새가 콧물까지 닦아주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삼삼오오 버스 회수권 따먹기를 했다. 홀짝 놀이였다. 손바닥이 책상을 내리치면 별빛 같은 눈동자가 책상 위 동전에 집중되었다. 좋아했던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책상에서 눌러 썼다. 볼펜이 패인 책상의 입에 빠질 때마다 꽃 편지지를 버렸다. 관심받고 싶었던 친구의 책상 밑에 씹던 껌을 붙였다. 교복 치마에 껌을 묻히고 흥분하던 모습을 훔쳐보았다. 여우 눈으로 보며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고민하는 눈치였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 시간과 교회 독서실 책상에서 자는 쪽잠은 달콤했다. 책상은 늘 한쪽 귀를 물어 주었다. 책상은 영어 시간에 수학책을 주었고, 수학 시간에 영어단어장을 주었다. 출출하면 위장에 컵라면을 배달시켰다. 책상은 흘린 국물을 말없이 닦아주었다.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난로 옆에 책상은 괴로웠다. 높은 온도가 머리로 찾아오면 선생님의 정신봉에 소신공양했다. 칠판 지우개 분필 가루가 책상 색을 바꾸어 주었다. 무기고 옆 교실 책상은 M1 소총을 손으로 받쳐주었다. 책상 친구가 분해 결합을 척척 했다. 책상은 예비 학도병을 양성하고 있었다. 초라한 학력고사 성적표와 대학교 원서를 가지고 고민하던 선생님은 야 너, ·객관적으로 판단해지...”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로 책상을 치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프게 맞은 책상처럼 기억하고 있다. 처마 끝 풍경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 때마다 달그랑 소리를 내주었다, 수호신처럼.

 

최근에 곱던 여자 친구는 아이 둘에 외손녀를 안고 있는 핸드폰 소개 사진을 나는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장기자랑을 책상 위에서 하던 악기 마법사 친구는 주점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 참 반가웠다. 변호사를 하던 친구는 책상에 서류 더미가 덥석 잡아먹었다. ‘친구는 책상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서류 속으로 갔을까?’ 궁금했다. 책상에서 일만 했던 친구였다. 책상에서 도장을 잘못 찍어 길거리로 내몰린 친구도 있다.

 

21세기 갈색 책상에는 컴퓨터가 있다. 자판기와 마우스가 소리치며 춤을 춘다. 컴퓨터는 서러웠던 과거를 지워 준다. 책상 대신 모든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책상은 계급이다. 책상 크기와 위치에 따라 직급이 올라간다.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달라진다. 작은 책상에 군림하고 억압도 한다. 갑자기 책상이 없어지거나 지방으로 이동하면 실망하거나 좌절한다.

 

책상에 커피 믹스의 향기가 힘을 잃고 있다. 나는 명패가 있는 책상에서 회전의자를 돌려보았다. 의자가 울음을 토한다. 책상의 울음은 한 소쿠리이다. 피와 땀을 흘렸던 침묵의 울음이다. 책상은 물이 되었다. 그릇 모양에 따라 변하고, 기온에 따라 얼기도 한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얼지 않는다. 소신공양하는 침묵의 책상과 나는 매일 아침에 산책을 한다. 창문 밖에서 차돌 같은 날씨에도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해가 아파트 틈새를 파고들면, 나의 머리는 책상처럼 기억하려고 한다. 상념의 골짜기 물은 학창 시절 성장통 소리처럼 굴렁굴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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