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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게    
글쓴이 : 최주철    21-02-24 08:07    조회 : 6,050

지게

 

최 주 철

 

몇 일 전 차량으로 네 시간 거리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따뜻한 양지에 앉아 있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포근했던 고향 집으로 습관처럼 갔다. 집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엉망이 되었다. 여기저기 바람에 날린 집기들과 농기구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툇마루를 지나자 그곳에서 두 팔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지게와 마주했다. 짚으로 엮은 속옷 차림으로 먼지가 가득 쌓인 허연 살을 내놓고 가슴은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었다. 지게의 까막새장은 긴 지겟작대기에 머리를 기댄 채 비스듬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겟작대기는 지게를 세울 때 버텨 놓는 끝을 뾰족하게 깎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내려올 때 지팡이로도 쓰고, 풀숲을 헤쳐 뱀이나 다른 동물들이 발에 밟히지 않도록 툭툭 치며 나갈 때도 쓰인다. 지게를 지고 일어설 때 지팡이로 쓰이기도 한다. 자식을 혼낼 때는 춤도 춘다. 돌다리를 건널 때도 사용된다. 지게가 서서 온전히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은 지겟작대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는 내 몸에 맞는 지게를 만들어 주었다. 일손이 부족한 시골에서 조금이라도 일손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지게는 주로 단단한 참나무나 소나무로 만들었다. 먼저 작은 같은 내 키에 딱 맞도록 깎아 만들기 위해 단단한 나무 새장 두 개를 준비했다. 가지가 손을 들어 앞으로나란히 할 때 손끝을 앞사람 머리에 맞추듯이 약간 위로 향하는 나무를 골라서 벌목했다. 두 개를 머리 위는 좁고, 다리 아래는 벌어지도록 세웠다. 사이에 새장을 끼우고 탕 개로 단단히 죄어서 사개를 맞추어 고정했다. 아버지는 위·아래 멜빵을 두툼한 새끼에 걸어 매었다. 그 새끼에 헌 옷을 꼬듯이 말아서 덧대어 주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 등이 닿는 부분에는 가을걷이 후 잘 마른 탄탄한 짚으로 짠 등태를 주로 사용했다. 새장과 새장 사이를 두 손으로 싹싹 비벼 꼰 새끼로 두껍게 감아서 등태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아버지 등같이 푹신하고 충분히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짚으로 잘 짠 등태로 편안하게 만들어서 내 어깨에 걸어 주었다.

 

앙증맞은 지게를 하늘 향해 세울 때는 지겟작대기를 새장에 걸어서 비스듬히 버티어 놓으면, 허리에 손 얹고 무게 잡던 내 멋진 모습이 되었다. 내 지게는 길이가 짧았다. 길면 산비탈을 오르고 내리는 데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버지의 배려다. 그렇게 내 몸에 딱 맞게 만들었다. 나는 옆에서 작업 과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만든 것으로 산과 들로 다녔다. 밭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는 늘 지게에 짐이 가득했다.

 

주로 산 너머 밤에는 달과 별을 담고, 낮에는 해를 지게에 담고 일을 했다. 부모님은 늘 그곳에서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어렵게 마련한 밭이 있었고 밭 언저리에 조부모님 묘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일을 정리하면서 지게 소쿠리가 넘치게 짐을 나누어 담았다. 밭은 손수레가 갈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지게가 유일한 운반 수단이었다. 먼저 잘 익은 낙엽을 소쿠리 밑에 넣었다. 그리고 칡넝쿨 줄기를 돌돌 말아 담았다. 고구마 줄기도 버리지 않고 지게 소쿠리에 얹었다. 굵은 고구마와 감자도 가득 담았다. 끝으로 새끼줄을 뒤에서 앞으로 넘겨 단단히 묶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게를 등태에 대고 머리 위로 넘겨온 지게꼬리를 부여잡고 아이고하며 비틀비틀 일어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뿌시래기 같던 나는 작은 궁둥이를 씰룩씰룩거리며, 작은 지게를 지고 뒤 따라갔다. 가끔은 히죽거리며 걸었다. 마냥 좋았다. 물먹은 검정 고무신 소리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무겁다고 뿍뿍거리는 소리를 냈다. 앞서가던 아버지의 해진 옷 사이로 야무진 근육이 동동 비치는 것을 보면서 걸었다. 그렇게 산 고갯길을 넘었다. 산길 모퉁이를 돌면 돌부리가 일어서고 돌풍에 지게가 휘청거렸다. 무거운 짐을 언덕에 기댄 채 잠시 쉬어 갈 때는 파란 하늘을 보았다. 구름은 하얀 수건으로 부자의 땀을 닦아 주었다. 아버지는 지게의 무게만큼 큰 사랑을 주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논과 밭에 거름과 물을 주고 곡식을 심어 가꾸듯이 했다. 아버지는 얼기설기 엮어진 인연의 줄기도 아프게 잘라 내 주었다. 자식을 위해 평온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일이다. 뚜두둑 하며 등뼈를 펴고 일어서서 빈 지게를 어깨에 걸치고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가시던 뒷모습을 보았다. 가끔은 하얀색 수건으로 이마를 훔치고 담배 한 모금 길게 뱉어내는 모습을 보았다. 숨쉬기도 힘들어하시던 모습이었다. 깊은 주름살이 세월에 실려 왔다고 생각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번개가 칠 때면 아버지는 지게로 못 가져온 산 너머 밭에 두고 온 자식을 걱정했다. 가뭄이 길어지면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버지는 밭에 곡식을 소중히 했다. 그러나 가족은 더 소중했다. 한 가정에 가장으로서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에 싣고 평생을 살았다. 내가 나의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아버지의 가족은 없다. 지게로 짐 나르듯이 육 남매 자식을 하나씩 짝지어 내다 팔았다. 빈 지게만 덩그러니 남았다. 부엌은 거실로 바뀌었다. 텅 빈 사랑방과 툇마루로 불어오는 찬 바람이 썰렁하게 느껴졌다. 두 분이 마지막까지 쓸쓸히 지냈던 고향 집이었다. 가끔 쉬어 가던 그루터기 자리에는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생명을 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툇마루 우측에 서 있는 지게는 주인을 잃고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등받이 가운데가 구멍이 나 있다. 반소매 겉옷이 삭아서 작은 바람에도 조금씩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삶이 윗녘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이제 아버지의 큰 지게는 내 등에 딱 맞다. 가족의 가장이라는 무게는 달라도 무게감은 같다. 구부정한 등과 하얀 머리 모양도 그렇다. 무엇이 등을 구부리게 했을까? 나는 대나무 숲 넘어 바다 같은 하늘을 보았다. ‘저곳에 가면 옛 풍경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작은 지게를 지던 나는 잘 익은 거름을 먹고, 지렁이랑 굼벵이 그리고 건강식 산나물만 먹고, 다부지고 옹골차게 자랐다. 열심히 살았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늘 반성했다. 국가에 헌신도 했다. 꽤 쓸 만한 삶이었다. 그것은 지게가 주는 무게 만큼에 부모님의 사랑 때문이다. 사람은 젊을 때 배우고 나이 들어 이해한다. 누구든지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삶을 살아갈수록 무게가 조금씩 늘어 간다. 하지만 빈 지게처럼 그 무게를 줄여 가야 한다. 지게를 제 자리에 놓았다. 윗녘에 지게의 삶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점점 늙어가는 지게를 보면서 귀 기울여 본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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