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아이
김용무
시골 버스를 따라 군용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한적한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고 어린 아이가 내렸다. 그 아이는 버스 앞쪽으로 돌아서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그때 뒤따르던 군용트럭이 버스를 추월하더니 순식간에 아이와 부딪쳤다.
젊은 시절, 말년 병장시절 이야기인데 불현듯 가끔씩 생각나는 내겐 특별한 기억이다.
군의관도 퇴근하고 조용한 의무실로 전화가 왔다. 당직 사관이다. 운전병은 헌병대로 들어갔고 아이는 시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김병장은 사병 하나 데리고 즉시 병원으로 가서 아이의 상황을 보고 적절히 처리하고 수송부에서 관을 가지고 갈 때까지 대기하라”
근무대장 명령이었다. 통화가 끝나자 당직사병이 들어와 돈이 든 봉투를 건네준다.
김일병을 데리고 시장에서 아이의 속옷과 옷을 한 벌 사서 병원으로 갔더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영안실 문을 드르륵 열고 뚜벅 뚜벅 걸어가니 바퀴 달린 탁자 위에 온통 비닐로 싸여있는 아이가 보였다. 천천히 가위로 비닐을 벗기고 처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잘 생긴 남자 아이는 천사의 얼굴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까만 머리에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 그냥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흔 정도 보이는 남자분이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영안실로 들어왔다. 아이의 당숙이라고 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픈 표정으로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잠깐만요”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직 수송부에서 만들어 보낸다는 관은 도착하지 않았다. 아이의 당숙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고 김일병이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 당숙은 준비해온 한지로 천천히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몸도 싸고 천사 같은 아이얼굴도 곱게곱게 잘 싸놓았다. 다들 울음을 삼키며 눈물만 흘리고 닦기를 반복 했다. 김일병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수송부에서 관이 도착했고. 선임하사도 같이 왔다. 수송관이 나를 보더니
“아 김병장 수고 많아요. 의무실에서 나와 주다니 고마워요.”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큰일이다. 가져온 관의 길이가 아이 키보다 짧다. 순간 아이 당숙의 표정이 어이없는 분노로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얼마 후 곧바로 아무 말없이 눈물을 닦았다. 할 수 없이 발쪽의 관면을 망치로 털어버리고 아이를 담으니 두발이 관 밖으로 나온 상태가 되었다.
“아 아... .”
군용 앰뷸런스에 아이를 싣고 나와 수송관, 김일병, 아이, 당숙까지 타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나머지 군인들은 군용 트럭을 타고 뒤따라온다. 시내를 벗어나 시골가로 한참을 달리다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에 도착했다. 아이 당숙은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는지 아이를 조심스레 지게에 얹더니 눈물만 뚝뚝 흘리며 흐느적거리며 앞서 걸어갔다. 관 밖으로 나온 아이의 발이 지게 반동에 상하로 움직이며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초여름이었다. 푸른 보리밭 둑을 따라 걸어갔다. 난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먼저 아이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달빛이 은은한 보리밭. 바람이 한번 씩 불어주니 보리 이삭들이 바람결을 따라 앞뒤 좌우로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였다.
순간 라자리노에 나오는 한 장면이 스쳤다. 라자리노의 연인 그리셀다의 주검을 그녀의 아버지가 펼쳐 안고 심하게 바람 부는 갈대밭을 비통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쓰러질 듯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의 예쁜 얼굴이 생각나면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아기 천사들이 부르는 고운 노래가 들렸다. 나는 두 귀를 세우고 노래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주먹만한 별들이 아이를 마중 나온 듯 반짝였다.
보리밭이 끝나면서 옆으로 큰 장작불이 보였다. 언제 왔는지 수송부 군인들이 열심히 땅을 파더니 관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였다. 관을 곱게 내려 구덩이 앞에 놓고 군인들이 관 앞으로 정렬했다. 아이 가족은 오로지 당숙뿐.
그때 알프스 소녀하이디와 할아버지가 지는 노을을 보면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할아버지 저녁 노을은 왜 저렇게 아름다워요.”
“노을은 해님의 마지막 인사란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마지막 인사인거지.”
수송관의 차분하면서도 힘찬 소리가 들린다.
“전체 차렷! 영현에 대한 경례! ”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가야 안녕 안녕 이제 가거라 고통과 슬픔이 없는 너의 나라로... 안녕, 아가야!’
관이 들어가고 흙을 덮고 우리는 부대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군의관, 수송관, 나도 같이 간단한 의약품을 준비해서 아이 집을 찾았다. 부대 옆 조그마한 동네다. 젊은 아이 아빠는 아침부터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처마에 앉아서 낯선 이방인들을 멀뚱히 보고 있다. 수송관이 최대한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젊은 아빠는 그냥 고개를 돌렸다. 안방엘 들어가니 아이 엄마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천정만 쳐다보고 누워있었다. 군의관은 간단한 진료조차도 못했고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초여름 아침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