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짜장면
조해영
내게는 짜장면에 대한 짭조름하고도 달짝지근한 추억이 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 동안 ‘짜장면’하면 떠올랐던 맛이 있었는데 ‘짭조름한 맛’ 비유를 하자면 모 라면 회사의 짜장 라면 같은 맛이랄까? 이 짭조름한 맛은 오랫동안 잔상 속에 남아 짜장면에 대한 즉각적인 미각을 떠오르게 했다. 왜 그런 건지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짬뽕과 짜장면 중 고민하듯 나 역시 그러했지만 선택은 거의 짬뽕이었다. 어떤 날 달짝지근한 짜장면을 먹을 때면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니네 하며 먹었음에도 다음에 또 짜장면에 대한 기억은 짭조름으로 회귀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맞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짜장면이 생각났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으로 짜장면 먹던 날.
어린 시절 우리 집이 정겹게 떠오른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오후다. 일 보러 나갔던 아버지가 대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짜장면 시켰다’ 하며 들어오신다.나와 언니, 엄마는 이게 웬 말인가 싶어 일제히 아버지를 쳐다본다.
“지금 오다 시키고 왔으니까 곧 올 거야”
동네에 비어 있던 가게가 있었는데 그 곳을 수리해 짜장면집을 열었다고 했다. 이제껏 난 짜장면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시절 짜장면은 졸업식때나 먹는 특별한 음식으로 알고 있었다. 더욱이 내가 살던 동네는 시내와 좀 떨어진 곳이라 짜장면은 버스를 타고 나가야 먹는건줄만 알았는데 집으로 배달이 온다니 신기했다. 우리 식구는 다같이 둘러앉아 짜장면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처음으로 맛보게 될 짜장면을 생각하니 설레고 즐겁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짜장면이 오지 않는다. 곧 올줄 알았던 짜장면이 오지 않자 아버지가 한 마디 하신다.
“아, 이 사람 도로 자는 거 아니야”
엄마가 무슨 말이냐는 듯 물었고 나와 언니는 궁금한 듯 아버지 얼굴을 쳐다본다.
“가게 안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안 보여 재차 불렀더니, 자다 일어났는지 얼굴이 게슴츠레하더라고. 짜장면 되냐고 했더니 된다고 해서 시키고 왔더니만 허허”
난 아버지의 어이없어하는 웃음을 이해하기보다 짜장면을 못 먹나 하는 생각에 실망감이 밀려와 묻는다.
“그럼, 우리 짜장면 못 먹는 거야?”
엄마는 내가 실망하는 표정을 짓자 아버지께 다시 다녀오라는 말을 하셨고 아버지는 알았다며 서둘러 일어나신다. 아버지가 짜장면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나가신 후 나와 언니, 엄마는 아버지가 오기만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금방 오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자 난 문지방에 기대어서 시선은 대문을 향한 채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짜장면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하며 걱정스런 마음뿐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짜장면 곧 올 거다”
“와” 나는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오래 걸렸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빨랐는지 숨을 고르며 앉으시며 아버지가 말을 꺼내신다.
"가니까 그때까지도 자고 있더라구, 짜장면 반죽하는 거 보고 면발 가르는 거까지 보고 왔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고 중요한건 이번에는 꼭 짜장면이 도착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드디어 짜장면이 도착했다. 하얀색 가운을 입고 철가방을 든 짜장면 배달부가 도착했다. 누구보다 반갑게 맞은 건 나였다. 우리 가족의 시선이 모두 아저씨께 쏠려 있다. 둥그렇고 커다란 짜장면 그릇들을 내려놓는 모습을 숨 죽이고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하고 가자마자 우리 식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나는 엄마를 힐끔힐끔 보며 젓가락으로 굵은 면발을 이리저리 비벼본다. 드디어 짜장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짜장면 맛이 이런 맛이구나’ 처음 먹어보는 짜장면 맛은 참 맛있었다. 짜장면을 드시던 엄마가 ‘뿔었네’,‘좀 짜다’등 짜장면에 대한 평을 한다. 엄마의 평에도 ‘난 맛있는데’하며 호로록, 호로록 그 많은걸 다 먹었다. 하마터면 못 먹을 줄 알았던 짜장면이라 더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한가로운 오후 우리 식구는 빙 둘러앉아 이른 저녁을 그 어느 때 보다도 맛있게 먹었다. 몸과 마음에는 즐거운 포만감을 느끼면서. 그 후 그 집 짜장면을 다시 먹지 못했는데 이유는 가게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첫 짜장면의 황홀감을 대체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짬뽕이었다.그로부터 몇 년 후 합창대회에 나갔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중화반점에 갔다. 나는 당연히 짜장면을 먹나보다 했는데 선생님이 짜장면과 짬뽕 중에 고르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짜장면을 고르자 선생님은 여기 짬뽕 맛있으니 선생님도 먹을거라며 나를 비롯해 몇 명에게 짬뽕을 권했다. 그렇게 먹게 된 해물이 들어간 매콤한 짬뽕은 신세계여서 그 맛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쭉 짬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교시절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중화반점에 가면 항상 짬뽕을 먹었다. 그 이후에도 짜장면은 짬뽕에게 밀려 먹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먹은 맛있었던 짜장면의 맛 ‘짭조름한 맛’은 오랜 기간 기억 속에 담아둔채로.
그날의 그 장면이 떠오르고 짜장면 맛에 대한 즉각적인 미각의 미스테리가 풀리면서 짜장면이 더 애정이 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식성의 변화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근래 들어 짜장면이 먹고 싶을때가 있다. 고집하던 짬뽕 대신 깔끔한 맛의 짜장면 먹는 회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짜장면 집마다 각기 다른 맛이 있다는 걸 알고 한 젓가락 먹었을 때 ‘그 맛이 아니네’ 하던 재미는 없지만 짜장면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어 좋다. 짭쪼름하고 달짝지근한 추억. 아버지가 짜장면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그려지고 나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운 아버지가 보고 싶을때면 따뜻하고 잔잔한 눈물이 고여 입가에 닿아 그때 그 짜장면처럼 짭조름한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