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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 항아리만 보면 생각나는...    
글쓴이 : 김수진디지털대반    23-07-18 18:31    조회 : 1,834
   된장항아리합평3.hwp (91.5K) [2] DATE : 2023-07-18 18:31:16

된장 항아리만 보면 생각나는...

 

김수진

 

 보고 싶은 우리 엄니

 식사는 하셨어요? 전 된장찌개를 만들었어요. 엄니가 하시던 대로 된장 세 숟가락 가득 퍼서 감자와 애호박에 조물조물 무쳐 놓았다가 진하게 우려낸 육수를 붓고 한소끔 더 끓였어요. 얼크리한 맛 좋아하는 아범을 위해 청양고추도 넣었고요. 말려둔 표고버섯도 추가했답니다. 이제 야들한 차돌박이 넣고 살짝만 끓이면 끝이에요. 오랜만에 감자를 올려서 냄비 밥도 했어요. 뜸이 들었겠다 싶어서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감자가 쩍하고 갈라지는 거예요. 포슬포슬 잘 익은 것 같아요. 된장찌개를 올리고 감자밥으로 밥상을 차리니 엄니 아부지가 금방이라도 애기야~” 하고 집에 들어설 것 같아요. 엄니 떠나 신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왕왕 과거 어디쯤 머물곤 해요.

 

 처음 어머님 댁에 갔던 날이 생각나요. 아들놈들 특성상 별다른 설명도 없이 친구와 같이 간다고 했었다죠.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된장 냄새가 덮쳐서 쓰러질 뻔했어요. 남자친구 집 방문에 신경이 쓰여 끼니를 거르고 간 터라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미쳐 김이 빠져나가지 않은 갓 지은 뜨거운 밥에 된장찌개를 얹어서 정신없이 먹었나 봐요. 엄니가 복스럽게 먹는다고 반찬을 제 쪽으로 밀어주셨죠. 저 그때 울컥했었어요. 장사하느라 바빴던 친정엄마가 밥과 국을 전날 밤에 해놓고 나가면 마른반찬들을 꺼내어 밥상을 차리는 담당은 저였거든요. 따뜻한 밥상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어요. 아들 여자친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보다 생각하며 입꼬리 씰룩씰룩 했었는데 결혼하고 알았죠. 엄닌 내 집에 온 누구든 따뜻한 밥 한 끼는 꼭 먹여 보내야 한다는 신념이 있으셨던 분이었어요.

 

 결혼 후 저도 자연스럽게 엄니 음식을 따라 하고 있었어요. 영월이 고향인 엄니의 산나물 반찬이 얼마나 입에 달던지요. 그중 된장 음식들은 일품이었어요. 엄니가 신줏단지 모시듯 정성을 다하는 항아리를 보니 아부지가 된장찌개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항아리가 숨을 쉬어야 한다며 매일 먼지를 닦고, 볕 좋은 날에는 뚜껑을 열어 하늘의 기운을 담았고, 벌레 오면 못 쓴다며 항아리 입구에 면 보를 덮어 소금 한 줌을 덮개 가운데 올려두기도 하셨잖아요. 왜 그렇게까지 된장 항아리에 신경을 쓰는지 제가 물었죠. 엄니의 어머니가 강원도 산골에 살 때 6.25 전쟁이 났는데 난리 통에도 된장 항아리를 지켜 자식들의 곡기를 채워 주었고, 전쟁 당시 15살이던 엄니가 뒤뜰 구석에 파놓은 작은 땅 구멍에 몸을 숨기고 눈물로 허기를 삼키던 피비린내 나던 그 밤에도 감자 한 알과 된장 한 숟가락으로 까무룩 잠을 청할 수 있었고,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얘기가 아직도 생생해요.

 엄니도 겨울이면 된장 만들 준비를 하셨죠. 바람이 잘 통하는 작은 방에 매달아 놓은 메주 냄새가 퀴퀴해서 처음 몇 년은 메주 말릴 때 엄니 집 가는 것도 겁나더라고요. 그때 된장 만드는 방법을 잘 배워 둘 걸 한참이 지난 후에야 후회를 했어요. 어리석게도 엄니의 된장은 언제든 얻을 수 있는 화수분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네요.

 엄니 가까이 살며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들이 제법 제 솜씨로 익어가고 있을 무렵 미국에 가야 했어요. 엄니는 모르실 거예요. 제가 얼마나 이민 가길 싫어했다고요. 아범이 정말 미웠어요.

 

 오자마자 둘째를 낳고, 이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쉽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건강만큼은 잃지 말자는 생각에 가족들의 먹거리에 정성을 다했어요.

 그런데 고작 4살이던 둘째가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쓰러졌어요. 자식이 난치병에 걸린다는 것도, 가족력 없이 뇌에 그런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해본 적 없는 남의 일이었어요. 절망하고 희망하고 다시 좌절하던 일주일간의 병원 생활 끝은 난치성 간질이란 병명과 6개월 시한부 판정이었어요. 퇴원하면서 여러 가지 복용 약에 대한 부작용 설명을 들었어요. 약의 특성상 백 퍼센트 식욕부진과 그로 인한 성장 지연은 어쩔 수 없다 했어요. 하지만 저에겐 그런 것 따윈 문제도 되지 않았어요. 6개월이 아니라 6년이 아니라 60년 이상은 살려야 했어요. 엄마니까요.

 

 퇴원 후 괜찮다고 엄니와 자주 통화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아이 상태가 더 나빠졌었거든요. 수시로 호흡이 멎으며 쓰러지는 둘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좋아했던 요플레와 아이스크림도 거부하는 아이를 보며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어요. 입맛에 맞는 뭐라도 찾아야 하니 부지런히 먹거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또래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들로 식탁을 채워도 버려지는 음식이 태반이었어요. 그러다가 한날은 진하게 황태 육수를 내어 심심하게 된장국을 끓였어요. 감자와 호박을 잘게 다지고, 순두부도 넣었어요. 아이가 한 숟가락이라도 먹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엄니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밥도 안쳤어요.

 거센 쓰나미가 몰아치듯 발작으로 한바탕 사투를 벌이고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녀석을 일으켜서 제 다리 사이에 앉히고 별 기대 없이 한 숟가락 떠먹였어요.

 엄니 기억나시죠? 수인이가 된장국 먹었다고 자랑했잖아요. 새끼 새처럼 어찌나 오물오물 잘 받아먹던지요. 먹는 동안엔 컨디션도 좋았어요. 보름 만에 밥 한 그릇 다 비우고 고요하게 낮잠 자는 아이의 얼굴에 희망이 보였어요. 그 뒤로도 아이는 신기하게 된장 음식만 찾았어요. 엄니가 된장 남았냐 물으셨죠. 몇 년이 지난 된장이었는데 딱딱해지지도 않았고 짜지도 않았고 색깔도 그대로였어요. 엄니의 된장이 둘째를 살리고 있었어요.

 

 삼시 세끼 된장을 먹다 보니 된장 통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어요. 첨가물이 많이 든 된장을 사 먹이긴 싫어서 엄니처럼 된장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메주 판매처를 수소문해서 찾았고 항아리도 구했어요. 메주를 매달아 말리는데 집안에 퍼지는 꾸리한 냄새가 정겹기까지 했어요. 인터넷을 찾아보고 엄니에게 물어보며 꼼꼼히 적어뒀는데도 어찌나 헷갈리던지요. 소금물의 농도를 맞추는 것이 첫 번째 난관이었어요. 소금물에 계란을 넣어서 동전 크기만큼 보이게 떠오르면 염도가 맞는 것이라는데 소금을 계속 넣어도 같은 상태로 떠있으니 난감하더라고요. 소금 추가하면서 계속 맛을 봤던지라 절인 배춧잎처럼 혀가 늘어질 지경이 되었어요.

 항아리에 차곡차곡 메주를 담고 소금물을 부었어요. 숯을 구할 수 없어서 마른 고추와 대추를 띄우고 틈만 나면 들여다봤어요. 50일 후 장 가르기를 했어요. 예년보다 날이 따뜻해서 간장을 많이 빼진 못했지만, 건져낸 메주에 그 간장을 부으며 치대고 또 치댔어요. 그렇게 저의 첫 된장이 만들어졌어요. 세상에나! 성공적이었어요. 그날 엄니한테 사진 보내고, 일기까지 썼어요. 꽤 근사한 엄마가 된 것 같아 뿌듯하더라고요. ‘우리 애기 대단하다.’엄니가 기뻐해 주셔서 더 우쭐했었어요.

 

 그 된장으로 조림을 하고,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였어요. 엄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 가족과 내 집에 온 누구든 따뜻한 밥 한 끼 먹이려고 기쁘게 밥을 짓고 있어요. 이역만리 타국에서 기적적으로 아이가 완치된 것도 나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았어요. 항아리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엄니의 마음이, 가족들의 건강과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베푸는 밥 한 그릇에도 온전히 담긴다는 것을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알겠어요.

 지난 일 년 사이 둘째가 부쩍 자랐어요. 아직도 엄지손가락 꼽는 음식이 된장찌개인 아이는 어느덧 제 키를 넘었고요. 어렸을 적 오랫동안 치료받은 떼라피센타에 봉사를 다니고 있어요. 귀하게 받은 사랑 감사히 나누고 있답니다. 기특하죠? 엄니한테 꼭 자랑하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하늘에 꽉 차 있던 회색 구름이 걷히고 뒷마당에 햇살 꽃이 피었어요. 캘리포니아도 이상 기후로 7월이 되도록 내내 흐리기만 했거든요. 처마 밑 응지에 있는 항아리를 볕에 내놔야겠어요.

 남아 있던 구름을 산들바람이 밀어내고 있어요. 여름이 오려나 봐요. 태양이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는데도 간간이 햇살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네요.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으로 항아리를 옮겼어요. 쭈그리고 앉아서 면 보로 반질반질하게 항아리를 닦고 뚜껑을 열었어요. 구수한 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가요.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아 고개를 들었더니 구름 사이 저편 어디쯤 엄니가 보이는 듯해요. 엄니도 그곳에서 된장 항아리 닦고 계시는 거죠?

 

 오늘도 어제처럼 엄니가 생각났어요. 올해 기일엔 엄니가 좋아하던 음식들 차려놓고 엄니 초대해야겠어요. 오실 거죠? 교회 다니는 형님한텐 비밀이에요. 또 편지 할께요.

20237, 엄니가 여전히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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