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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꿀 비 교실 사람들    
글쓴이 : 이필자    23-07-18 21:26    조회 : 1,456
   그리운 꿀비 교실 사람들.hwp (578.0K) [2] DATE : 2023-07-18 21:34:09

        그리운 꿀 비 교실 사람들                                                이 필자

  며칠 전 복지관 가는 길에 우연히 민수 씨를 만났다. 휠체어를 탄 모습에 조금은 놀랬지만, 곧 진정시키고 반갑게 인사했다. 민수 씨는 오래전, 사상도서관 독서회 회원들이 맡아서 운영한 모라 장애인 복지관 한글 교실(꿀 비)에서 공부한 학생이었다.

 2004년 10월 모라 장애인 복지관 개관식에 사상도서관 독서회를 대표해 참석했다. 예상 밖의 장애 상태는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우리 독서회는 곡식이 꿀처럼 받아먹을 비라는 뜻의 꿀 비 한글 교실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드디어 꿀 비 교실 입학식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복지관으로 향했다. 농작물이 자라는 데 때맞추어 내리는 비처럼 우리가 그들의 삶에 꿀 비가 되자고 했다. 눈앞에 전개된 현장은 참으로 진지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3명 학생의 모습은 그들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글보다 사랑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차분한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옳게 걷지 못하고, 말도 못 하고, 오른손도, 눈도, 귀도 온통 불편함뿐이다. 우린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픈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경청했다. 누구 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한 손은 연필을 잡고, 다른 손은 그들의 손을 잡고 시작했다. 가. 나. 다. 라를 끝없이 반복하고, 줄 긋고 매일 같은 진도를 되풀이했다. 가족. 사회. 제도권에서 소외된 이들의 서러운 이야기를 듣다가 시간이 끝난 적도 더러 있었다.

 말없이 늘 뒷자리에만 앉아 있는 정희 씨, 글씨쓰기보다 그림을 더 좋아하는 그는 온통 검은색만 칠했다. 기막힌 사연은 아직도 내게 분노와 눈물을 머금게 한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6살 딸과 엄마와 같이 삼대가 꿀 비 교실에 온다. 정희 씨 그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밝은색으로 변했다. 제법 자신감도 생겼고, 지난 이야기도 잘한다.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엔 우린 부족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자씩 열심히 가르쳤다. 한 글자씩 조금은 눈에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름 쓰는 날! 학생 모두는 들떠 있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내 이름자를 써보고 죽으니 말이다.”

우린 함께 기뻐하고, 손뼉을 쳤다.

 잘생긴 민수 씨, 그토록 많은 말들을 가슴에 묻어둔 채, 불혹의 세상을 살고 있다. 세 살 적 교통사고로 아버진 세상 떠나고, 엄마는 만신창이 민수를 두고 사라졌다. 팔순 조모랑 살고 있다. 혼자 걷기 힘들어 할머니 손잡고 늘 일 등으로 왔다. 사고 후유증으로 침이 계속 흐른다. 침을 막자고 손수건을 목에 두르다가 요즘은 입에 물고 오는 날이 더 많다.

 어느 날, 그는 우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앉아 있기 불편해서 그런 줄 알고, 맨바닥에 자리라도 깔아 주려고 했다. 그는 손을 내밀면서 자기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고, 민수를 때리라고 한다. 당신에겐 아무 죄가 없다고,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지만, 같이 침체하면 안 된다고 추슬러서 일으켜 주었다. 민수 씨는 속마음을 전하지 못한다고 늘 가슴을 친다. 실은 처음엔 민수 씨 모습 보고 약간은 주춤했다. 흐르는 저 침을 잘 닦아 줄 수 있을까 하면서…. 이젠 먼저 본 사람이 바로 닦아 준다. 한 회원은 처음 민수 씨를 보고 밖에 나가서 한참을 울고 왔다.

 숫자를 공부하는 날이다. 정말로 심하게 가르쳤다. 덕분에 ‘호랑이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제 은행 가서 내 손으로 돈을 찾았어요.

이젠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돈만 많으면….”

한 분이 통장을 보여 주면서 자랑했다. 모두 손뼉 치면서 크게 웃었다.

 곱고 말없이 늘 남아서 열심히 하는 박 할머니. 그분은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금방 잊어버리는 분이다. 전 시간에 내준 숙제 용지가 다 구겨지고 유리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울면서 얘기하였다. 남편한테 공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그까짓 공부해서 뭣 할 건데, 이젠 가지 말고 때려치워라.”

하면서 그 종이를 다 찢었다고 한다. 남편이 잠든 뒤 혼자서 찢어진 종잇조각을 붙이면서 실컷 울었다고 한다. 그 말을 하면서도 또 울었다. 같이 눈물 흘렸다. 보란 듯이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자고 했다.

 오른쪽 손발이 불편한 주정연 할머니는 먼저 간 아들 대신 거둔 손자, 군대서 온 반가운 편지도 읽을 수 없다. 옆집 아저씨한테 가서 번번이 읽어 달라고 했다. 답장을 부탁할 땐, 더 서글펐다고 한다. 학교에 보내지 않은 부모님을 원망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 온 편지는 당신이 들고 가서 큰소리로 읽었다고 눈물 흘리면서 자랑한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세를 부르고 말았다.

 그 해, 스승의 날 받은 편지는 우리에게 평생 소중한 보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쓰는 편지라고 자랑한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중에 아직도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하는 한 통의 편지가 있다. 글씨도 제일 잘 쓰고 글도 잘 쓰는데 늘 끝에다가 ‘아무개’라고 했다. 이름도 못 쓰고, 존재감 없이 살아온 삶의 표현이 아닌가 싶어서….

 일 년을 공부하고 각자의 수료증을 읽는 학생들의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다. 행복했다. 우리의 바람은 이분들이 여생을 당당하게, 가슴속 말도 글로 표현하고 살았으면 한다.

 아쉽게도 우리들의 꿀 비 교실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재단 측의 비리로 모든 운영진이 바뀌면서 꿀 비 교실도 3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우리 목표가 완성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꿀 비 교실 3년은 진정한 행복을 알게 했다. 어제와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의 삶도 선물했다. 주 1회 가면서, 때론 쉬고 싶었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 지칠 때도 많았다. 아프지 않고는 결석도 하지 않는 그들 앞에 그것도 사치였다.

 정희 씨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때까지 누구도 함께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를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래도 정희 씨 웃는 모습을 보고 마칠 수 있어서 좋았다. 박 할머니가 아직도 내 마음에 작은 응어리로 남아 있다. 열심히 한 만큼의 성과도 없고, 남편한테 홀대나 당하지 않는지 말이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난생 처음으로 이름을 적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은 내가 살면서 우울할 때, 나의 감사의 도구가 된다. 그러면서도 ‘아무개’라고만 표기하는 그분도 이름을 자신 있게 밝히고 살았으면 한다. 이젠 혼자 은행 가서 돈도 찾을 수 있으니, 은행가는 날이 많아졌으면 한다. 꿀 비 교실은 내가 살면서 옆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에게도 나만큼 행복한 꿀 비 교실이었으면 좋겠다.

“함매 갔다”고 하는 힘들게 말하는 민수 씨, 휠체어는 탔지만, 오늘은 수건을 입에 물지 않았다. 도망간 엄마 한 번이라도 만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편안해 보여서 좋다. 봉사자와 산책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꿀 비 교실 사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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