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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 완주 축복장을 받으면서    
글쓴이 : 이필자    23-12-29 19:09    조회 : 1,510

           성지순례 완주 축복장을 받으면서

 한국 천주교 성지 167곳을 완주하면 성지순례 사목위원회장 대주교 이름으로 축복장을 수여한다. 7월 13일 부산교구청 축복장 수여식에서 그토록 원하던 축복장을 받았다.


 원래 ‘성지’(Terra Santa, 聖地)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태어나 생활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 지역을 의미하였다.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순교자들과 성모 발현, 성인과 관련된 장소로 보편화되었다.

성지 구분은 성지. 순교 사적지, 순례지로 나눈다.

‘성지’는 103위 성인, 124위 복자, 조선왕조 박해, 6.25 때 순교한 곳, 무덤이 있는 곳이다.

‘순교 사적지’는 그들 관련 장소, 잡혀갔던 감영, 생가나 생활 터전, 성당 등을 말한다.

‘순례지’는 모든 성지, 순교 사적지를 포함한다. 선조들의 삶과 영성이 담긴 곳을 말한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북경에서 최초로 영세를 받고, 이 벽, 정약전 등과 신앙공동체를 창설했다. 선교사 없이 평신도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세계 유일한 교회다.

이러한 천주교 박해의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의 신분제와 천주교 평등사상과 신주와 조상 제사 문제다. 1791년 이 문제로 신해 박해를 시작으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마지막으로 1만에서 3만 정도의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그중 이름이 알려진 수는 2천여 명 정도다.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자의 삶을 기리기 위해 <한국 천주교회 성지순례> 책자를 만들었다. 성지 소개, 지도, 순례를 마치며, 순례 확인 스탬프를 찍는 난 등으로 되어있다.

 성지순례를 시작할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고, 중간에 아들 변호사 시험도 있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국 성지부터 먼저 보고 싶었다. 단 3년 안에 혼자서 대중교통으로 완주하기로 결심했다.


 2017년 11월 5일 밀양 김범우 순교 성지를 시작으로 2022년 11월6일 해미순교성지를 마지막으로 5년 만에 끝났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많은 은총을 받았고, 은인들을 만났다.


 2019년 8월에 율리아 자매와 익산 나바위 성지에 갔다. 이곳은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이다. 사적 제318호로 한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독특하게 혼합된 기와집과 빨간 벽돌이 조화를 이루는 성당이다. 순례 중 만난 성당 베드로 사무장은 충분한 설명과 맛집까지 소개해 주었다. 이곳에서 35km 거리에 천호 성지가 있다. 택시 타고 가면 다시 오지 않아도 될 만한 거리라서 갈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우선 식사부터 했다. 식당에서 나오는 데 낯선 차에서 경적이 울렸다. 조금 전 그 베드로 형제가 천호성지까지 동행해 준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여산 순교 성지와 천호성지 설명까지 다 해줬다. 세 곳 성지와 함께 베드로 형제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해 9월 전북 완주 되재 성당에 갔다. 서울 약현 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한강 이남의 첫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2004년 전라북도 기념물 119호로 지정되었다. 먼저 고산 성당에 갔더니 주일 낮 미사 마친 신자들을 태운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를 펴지 못해 걸음마저 느릿한 인자한 모습에 미소 띤 어떤 자매님한테 식당을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한 형제님이 한사코 당신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하면서 앞장섰다. 아까 그 자매님은 먼저 내려서 밥상을 다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부부인 그들이 차려놓은 진수성찬에 황송했다. 갈치조림 한 냄비는 제주의 어떤 갈치조림과도 비교할 수 없다. 피로와 식사까지 다 해결하고 마음의 빚을 안고 돌아섰다. 오늘도 막달레나 수호천사를 만났다.

 되재 성당, 나무로 된 종각 왼쪽에 예수님이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다. 계단 아래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가 천국이구나.’라는 생각, 순간 행복했다.

그 후, 가끔 전화하다가 떠났다는 소식 두려워 계속하지 못했다. 작년 성지순례 마치고 다시 생각나서 드린 전화, 막달레나 자매는 소천 했다. 그의 영혼을 위해 화살기도를 드렸다.


 미리내 성지 김대건 신부님 묘소 앞에선 하염없이 울었다. 사형장에서 망나니한테 내 목을 치기에 어떤 자세가 편하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떠난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따졌다.


 2021년 11월20일 인천교구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에 가서 난 처절하게 깨졌다.

인천 교구에서는 현양 동산을 조성하여 ‘침묵의 순례지’로 정했다. 성지순례란, 단순한 관광도, 여행도 아니다. 집착에서 비어 있는 영혼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신부님 말에 공감했다.

 우리는 성지순례를 하면서 건강. 자녀 직장, 가정 화목, 치유, 자녀 출산, 사업 번창 등 무조건 많은 은총을 달라고만 한다고 한다. 사실이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철저히 비우고 가라고 한 신부님의 강론에 미사 직전에 본 고백성사마저도 부끄러워졌다.

* 성지 담당 신부의 지극히 주관적인 성지 순례 꼴불견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에 있는 안내문)

* 주차표시 무시하고 주차한 뒤 성지를 거꾸로 돌다, 마침내 도장 찍는 곳 물어보는 분

* 도장만 찍고 금세 가는 분- 성지마다 한 시간씩 머물며 기도하기 * 떼 지어 다니며 기도하는 분

* 사진 찍기만 바쁜 분-사진은 인터넷에 훨씬 더 잘 나와 있어요.

* 말이 많거나, 목청이 크신 분-침묵보다 더 좋은 순례 방법은 없습니다.

* 쓰레기(흔적) 남기고 가는 분 * 슬리퍼, 반바지 등 복장 불량한 분


 어느 하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치부를 보면서 나를 강하게 질책했다. 늦었지만, 다음부터는 잘하자고 약속했다.

이젠 종교 선택을 요구하는 적색 순교는 없다. 신앙 대신에 물질문명의 가치들이, 생명의 가치보다는 죽음의 가치, 주위를 둘러싼 많은 유혹과 욕망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어쩌면 목숨을 강요하는 박해 시대보다 오늘날 백색 순교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3년이 5년이 되었지만, 축복장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5년이 길다고 투덜거렸다. 최장 23년 성지순례를 마치고 축복장을 받는다는 양산 성당 형제의 말에 결국은 모두 울고 말았다. 모야모야를 앓는 아들 라우엔시오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축복장보다 더 값진 체험을 했다고 한다. 작년에 장기를 모두 기증하고 하늘나라에 갔다면서. 다 같이 라우렌시오를 위해 잠시 기도했다.

 한 갓 종잇장에 불과한 축복장이지만, 그동안 순교자들의 삶을 엿보면서 행복했다. 신앙심도 다져주고, 삶의 방향도 제시한 축복장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자랑스럽기도 하다. 덕분에 아들도 잘되었고 집도 안정되었다. 나의 성지순례 완주에 도움을 준 모든 은인을 위해 기도하고 감사드린다. 어렵겠지만 남은 삶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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