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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진 깜빡이    
글쓴이 : 김선희    24-03-17 07:39    조회 : 1,466
   직진 깜빡이-1-1.hwp (16.0K) [0] DATE : 2024-03-17 07:39:41

직진 깜빡이

 

 

                                                                           

                                                                               김선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등이 굼실굼실 가려웠다손을 어렵게 뒤로 뻗어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어 긁는데 감질나고 시원치 않아 이내 그 행위를 포기했다그런데 이번에는 가려움이 등을 타고 내려와 엉덩이가 굼실대기 시작했다주위를 살피고 바지 속으로 손을 넣으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에 얼비친 내 모습이 추접스러워 차마 하지 못했다하는 수 없이 어금니를 악물며 바지 바깥으로 엉덩이를 힘껏 꼬집었다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그머니 엉덩이에서 손을 내리려는데 운동복바지 뒷주머니에 지퍼가 만져졌다처음 입었을 땐 눈부신 검은색이었던 바지이바지가 수십 번수백 번 세탁기 속에 들락거려서 제 빛을 잃었다이제는 본연의 색을 잃고 짙은 쥐색이 된 바지처음부터 내 몸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편하게 감기는 바지를 나는 참 좋아했다그런데도 여태껏 지퍼가 달린 뒷주머니를 발견하지 못했다니억울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요긴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손가락이 부은 아침에 반지를 잠시 빼놓고 싶었을 때나 동전이 많아 지갑이 툭 불거져 나온 게 거슬릴 때 얼마나 충실히 사용할 수 있었을까, 3년여 넘게 줄기차게 이 바지를 입으면서도 단 한 번도 주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는 무심함에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 성격은 무심한 편이다성격이 무심하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그 이상의 걸맞은 표현도 없는 것 같다지금 당장 필요한 것 외엔 관심이 없고 호기심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어딘가를 찾아갈 때 주위를 살피지 않는다오직 목적한 곳만 생각하며 달린다그 이유로 길치가 된 것 일수도 있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도로를 잡아먹을 듯한 소리를 꽁무니에 매달며 달리는 차가 멋져 보여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했고 그전까지는 차에 대해 무심했다그래서 무지했다.

수없이 보조석과 뒷좌석에 앉아봤으면서도 운전하는 방법,  차의 기능도로의 이정표하다못해 거리의 풍경조차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 허점은 운전연수를 받던 날 여실히 드러났다.

친한 선배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하고 운전연수를 받았다선배는 가장 기본적인 왼쪽 오른쪽 깜빡이 작동법에 살짝 스치듯 설명해 주었다마치 이 정도는 얘기 안 해도 알지라는 표정으로그런데 뜻밖의 내 질문에 선배의 큰 눈이 금방아라도 툭 불거져 나올 듯했다.

 “직진깜빡이는 어딨어요?

 “뭐직진깜빡이그런 게 어딨니?

 “내가 직진한다는 것도 지시해줘야 하는 거 아니예요그래야 뒤차가 편하지요나는 우회전 좌회전 안 하고 직진할거야라고 방향지시를 해줘야죠.

 “직진을 굳이 알릴필요는 없어좌회전이나 우회전 깜빡이 안 켰으면 그냥 직진인거야.

 둘이 키득키득 웃고 넘어갔지만 달아오른 얼굴이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면허증을 손에 쥐고 처음 운전을 하던 날연수를 해줬던 선배를 태우고 근거리로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끼어들어우측 깜빡이좌회전.

 쉴 새 없이 옆에서 떠들어대는 선배도양손을 벌벌 떨며 핸들을 잡고 있는 나도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이었다지나가는 차 안에 운전자들의 표정은 마치 잔잔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평온해 보였다나 혼자만 3D전쟁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이아니 직접 전쟁에 뛰어든 장수처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 갑자기 선배가 유턴을 외치며 상체를 운전석으로 기울여 핸들을 끝까지 돌렸고 내 머릿속은 암전이 돼버렸다.

 “유턴이요여기서요여기서 해도 돼요?

 “왜 안 돼너 운전면허 어떻게 땄어저기 유턴하라고 돼 있잖아.

 표지판을 보니 말발굽처럼 꼬부라진마치 한글로 크게 쓰인 것처럼 잘 읽히는 유턴표시가 눈앞에 떡하니 있었다하지만 난 그걸 예전엔 본 적이 없었다수천 번 수만 번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려봤지만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에도 그 문제는 안 나와서….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의지와는 상관없는 얘기 가 툭 튀어나와 버렸다.

 

 20분 거리를 2시간은 온 것 같았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그제야 옆에 앉은 선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입안에 공기를 잔뜩 넣었다가 내뿜는 모습에 얼른 눈을 피해버렸다.

 “파킹에 놓고 사이드 올려.

 나는 묻고 싶었던 말을 꾹 참고 차에서 내렸다.

 ‘근데 사이드는 왜 올려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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