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손
김선희
남편은 고적한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충남 당진시 신송리. 남편은 말에 주린 사람처럼 시골에서 자라온 얘기를 중언부언하곤 했다. 주로 열악했던 환경을 감내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의 회상들을 끄집어낸다.
남편은 본인이 학교 다닐 때 공부에 흥이 없었던 이유가 환경 탓이었다고 변명을 해대고는 한다. 당시 어머님은 밭일을 다니느라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야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남편은 하교 후에 텅 빈 집에서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고, 종종 닭들이 무람없이 들이닥쳐 똥을 잔뜩 싸질러놔서 그걸 치우고 있노라면 짜증이 꼭지까지 타고 올라왔다고, 공부는커녕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 자체가 힘에 겨웠다고.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는 남편의 어린 시절 하교 후 풍경, 어둑어둑하고 적요한 시골집이 흑백필름처럼 떠있다. 뽀얀 먼지가 쌓인 마루, 그 앞에 제멋대로 뒹구는 괴죄죄한 신발들, 너른 마당을 쉼 없이 걷고, 뛰고, 푸드덕 거리는 닭들. 그러자 갑자기 닭똥냄새가 콧구멍 언저리에 맴을 돌아 머리를 흔들어 눈앞에 영상을 지워버렸다. 이내 남편의 말에 저절로 맞장구가 쳐졌다,
"그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어머님은 남의 집 품을 팔아 삼남매를 키웠다. 힘든 일 많이 하신 분이란 얘긴 가끔씩 형님들과 남편에게서 들었지만 가슴속에 절절히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땀 흘리며 고투하느라 평탄치 않은 삶을 건너 오셨으리라 스치듯, 지나가듯 했던 생각이 전부였다.
얼마 전 남편과 맥주를 기울이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어김없이, 힘들었던 어린 시절 얘기였다. 경쟁이라도 하듯 주거니 받거니 어려웠던 시절의 얘기를 꺼내다 마지막은 남편의 얘기로 막을 내릴 참이었다.
"너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든 일 많이 하셨는지 모를 거다."
나는 어머님의 거칠고 솥뚜껑 같은 손이 떠올라 말꼬리를 붙잡았다.
"여보, 그래서 어머님 손이 그렇게 거친 거야?"
남편은 대답 대신 침을 꼴깍 삼켰다. 한참 골몰하던 남편은 재촉하는 내 눈빛을 감지하고 그제야 다시 얘기를 시작하겠다는 눈빛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게 말이야……밭에 농약을 뿌리려면 물과 희석을 해야 하거든. 근데 일을 빨리 끝내야 하니까 맘이 급해서 그걸 손으로 섞으셨단다. 아니, 나뭇가지라도 주워서 저으시던가 하시지."
"정말? 손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괜찮으셨대?"
남편은 마치 어제 겪었던 일처럼 씨근대며 질문에 답변도 없이 담뱃갑을 들고 나가버렸다.
어머님 손이 아프진 않았는지, 제때 치료는 했는지 궁금했지만 남편이 아파하는 것 같아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그 후 내 눈에는 어머님의 손만 들어왔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은 어느 날, 어머님과 꽃구경을 가기위해 스카프를 매만져 드리는데 시선이 어머님의 손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꼭 묻고 싶었던 얘기를 꺼내기 위해 입술을 들썩였다.
"어머님, 농약은 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거죠? “
에두른 질문이었는데 어머님은 속뜻을 짐작하지 못하는 듯 했다.
"어머! 얘는, 큰일 나려고 어디 그걸 손으로 만져. 안되지."
어머님은 옛날 그 일을 모두 잊으신 듯했다. 예전에 신송리에서 농약을 물에 희석할 때 손으로 섞지 않았느냐고, 치료는 하셨느냐는 질문들이 속사포처럼 떠올랐지만 묻지 않았다. 따끈따끈한 날씨가, 달큰한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아픈 기억을 꺼내는 건 예의가 아니야. 오늘은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은 그런 날이니까.
나가려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아까워서 못쓰고 있던 에르메스 핸드크림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저 없이 그것을 호주머니에 볼록하게 넣고 서있는데 문밖에서 어머님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안 나가냐? 날 새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