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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두렁에서 던진 담배꽁초    
글쓴이 : 윤소민    24-07-18 14:29    조회 : 6,253

논두렁에서 던진 담배꽁초

 

무역센터반 윤 소 민

 

나의 교직 첫 발령지는 논과 바다가 있는 섬마을이다. 인터넷을 통해 쉽게 좋은 글이나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그때 선배 교사의 말과 에피소드는 작은 것이라도 마음에 큰 여운을 남겼다.

내가 신규였을 때 40대였던 K 선생님은 어느 날 논두렁을 걷다가 피우던 담배꽁초를 논으로 던졌다. 그 즉시 실수인 것을 알아차리고 아차!’ 싶었다고 한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었고 잘못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신발을 벗고 논으로 들어가 꽁초를 건져왔다.

학생들이 보고 있을 때 하지 못할 행동은 보지 않을 때도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스스로 반성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선택을 하셨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던 나는 신념을 실천하고, 잘못을 즉시 바로잡는 용기를 가진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나도 K 선생님처럼 내가 논두렁에서 던진 담배꽁초를 줍기 위해 맨발로 논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무척 지치고 짜증스러운 날이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제법 여유가 있어 운 좋게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좀 쉬려는데 갑자기 열차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하는 소리와 함께 휠체어 한 대가 달려오더니 내 자리를 조금 지나 멈췄다.

~ 저러다가 누구 다치겠네.’

멈춘 휠체어에서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여성분이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면서 자신에게서 제일 가까운 자리부터 종이를 나눠주기 시작한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가방이나 무릎 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코팅 종이를 올려놓았다. 뭐라고 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니 본인이 어렵게 수술을 마쳤는데 살아갈 여력이 없으니 도와달라는 호소이다.

내가 받을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놓지 마세요.”

그 사람은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내 무릎에 올려놓고 더 걷기가 버거웠는지 아니면 내 말에 화가 났는지 내 다음 사람에게는 종이를 던지듯이 놓고 자기 휠체어로 돌아갔다.

그 사람의 휠체어 속도, 동의를 구하지 않는 종이 배포, 던지듯이 주는 무례함,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나 많은 세균이 묻었을까 싶은 찝찝한 코팅 종이 탓에 내 눌려있던 짜증이 폭발하였다. 그래서 나는 몸에 닿아있어 불쾌한 그 종이를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렸다.

잠시 뒤, 휠체어 주인은 천천히 다시 나눠준 순서대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내 자리 가까이 왔을 때 왼쪽에 앉아있던 청년이 구부리기 불편한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떨어뜨린 종이를 주워주었다. 그 청년은 내가 상담하고 있는 지안이 또래로 보였다.

갑자기 나는 지안이가 생각나고 지안이가 내게 말한 좋은 어른이라는 존경 어린 칭찬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별칭과 지금 나의 행동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를 생각하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 열차 칸에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불편할 텐데 이해하고 참아주었다.

나는 학교에서 입만 열면 친구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교사이고, 인간적인 사랑과 공감으로 내담자를 대하겠다고 다짐하는 상담자이다. 그런 내가 정작 사회적 약자에게 누구나 함직한 배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스스로가 위선 덩어리로 느껴졌다.

그 지하철에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겠지. 그 사람이 휠체어를 천천히 운전해서 내가 흠칫 놀라지 않았고,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를 풍기지 않고, 누가 봐도 깨끗한 종이를 나눠주며 동의를 구하는 예의 있는 표정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테지...

나는 바람직한 교사, 고매한 학자, 따뜻한 상담자가 되고 싶고, 나이가 들수록 성숙하여 늙어도 낡지는 않는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기도 해서 어느 정도는 가까워졌다고 자만했다. 그런데 실상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조건, 기본이라고 여기는 수준을 갖춘 경우에만 호의와 선의를 베푸는 얕은 사람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보고 있을 때 더욱 좋은 어른으로 보이려는 가식도 있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논을 향해 꽁초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휙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안이 말처럼 내가 좋은 어른이거나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면 꽁초를 버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논으로 들어가 내가 버린 꽁초를 건져오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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