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젊은 날
일산반 - 차세란
티없이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분 좋게 나른한 오후의 한 때를 즐기기 위해 나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내려 소파 깊숙이 몸을 파 묻고 있었고 어디선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반려견 산초녀석은 반쯤 열어 놓은 베란다 창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에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날씨엔 달달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상한 전화가 많이 걸려 오던 때라 낯선 번호가 뜨면 짜증부터 올라왔다. 여론 조사인가? 보험사의 마케팅? 보이스 피싱? 이들은 도대체 내 번호를 어찌 알고 이렇게 전화를 해대는 것일까? 오랜만에 좋았던 분위기가 깨진데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에 잔뜩 짜증이 올라온 상태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여보세요!"
몇 초간의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점잖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혹시 차상희 선생님 따님이신지요?”
으잉?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았다. 車, 相字 熙字는 열 아홉해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함이다.
“네. 그렇습니다만 어디신지요?”
"아니시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저는 차상희 선생님 제자 이성용입니다. 용산고 OO기 졸업생인데, 이번에 제가 동문회 총무를 맡게 되었어요. 사모님께서 다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따님한테 연락을 드렸는데 사모님은 괜찮으신가요?”
“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머니는 쾌차하셔서 잘 지내고 계십니다. 이렇게 연락을 다 주시고, 감사해요.”
얼마 전에 엄마가 무릎에 골절상을 입으셨는데 그는 아마 그 사건을 말하는 것 같았다.
“천만다행 이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스승의 날에 사모님께 선물을 보내드리려는데요, 전화번호와 주소가 맞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그제서야 나는 스승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고, 동시에 아버지도 안 계신데 매년 받는 선물이 부담스럽다며 이제는 그만 받았으면 한다는 엄마의 말도 떠올랐다.
“아닙니다.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마음만으로도 저희는 감사해요.”
그러나 그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작은 선물입니다. 이렇게라도 저희 마음을 전해야죠. 괘념치 마시고 사모님 주소를 이 번호로 보내주십시오.”
“안 보내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저희에게 영원한 스승님이신데요. 저희가 감사하죠.”
울컥 솟아오른 감정에 어찌저찌 우물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5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스승을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겠다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아버지는 70년대 용산고에 몇 년간 재직하셨다. 당시 나는 여덟, 아홉의 어린아이였고, 아버지는 서른 후반의 젊은 교사이셨다. 어렸던 나는 그 당시 까까머리 학생들과 아버지와의 인연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 학생들의 고3 시절, 1년간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졸업 후에도 잊지 않고 오랫동안 우리 집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들이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동안 아버지는 하염없이 늙어 갔고, 종래는 병환을 얻어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가 투병 중일 때, 그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병원비에 보태라며 돈을 송금해 오기도 하고 짬을 내 병문안도 왔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황이 없었던 우리는 이런 제자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매년 스승의 날 어머니께 선물을 보내왔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깔끔하신 외모에, 따뜻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셨으며, 유머가 넘쳐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평판이 좋으셨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의 임종 전의 초점 잃은 텅 빈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오늘 전화는 그런 나에게 젊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앞의 생』에 주인공 모모가 늙고 병든 로자 아줌마의 인생을 영화로 볼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 모모는 할 수 있다면 현재에서 필름을 뒤로 돌려 젊고 건강한 로자 아줌마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 로자 아줌마에게 건강과 젊음을 선물하고 싶은 모모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그 대목이 매우 인상 깊었다.
나도 모모처럼 아버지의 필름을 한참 뒤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열정 넘치는 선생님과 질풍노도의 청춘들이 한바탕 왁자지껄 소동을 벌이는 흑백 영화 한 편이 스르륵 눈앞에 펼쳐졌다.
며칠 후, 푸짐한 과일 바구니가 백화점에서 친정으로 배달되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며 지나간 옛날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버지가 생전에 즐기시던 사과 한 쪽을 차마 다 드시질 못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시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우리는 남은 과일을 주섬주섬 치우고 친정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꽃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가버린 것을 안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부재 이후 잊고 있었던 그리움이 불쑥 솟아났다.
몇 장 남지 않은 아버지의 사진은 이제 색이 바래 실루엣만 남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모습은 더이상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 속에 당신의 숨결이 남아 있음을 나는 느낀다.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때로 추억이 되고, 상처가 된다. 아버지의 흔적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남았다.
빛나는 햇살, 부드라운 바람, 우주의 별 먼지.... 그리고 사람들 속에 아버지가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