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샷추
김선희
딸과 외출을 하면 내 감정은 전소돼 버린다.
딸은 사진작가처럼 뜨겁게 사진을 찍는다. 음식 사진은 왜 그렇게 찍어 대는지 식당엘 가면 배가 고파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입 안 가득한 침을 연신 삼키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딸은 소위 말하는 인스타감성에 안달이 나 있다. 폼 나는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그 곳이 아무리 멀다 해도, 제아무리 비싼 음식이라 할지라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 둘이 걷다가 담고 싶은 배경을 만나면 천연덕스럽게 내게 휴대폰을 들이민다. 얼결에 휴대폰을 받아 들면 딸의 포즈와 표정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요구에 의해 연타로 몇 십장을 순식간에 갈겨버린다. 그렇게 장소 몇 군데만 거치면 사진은 기하급수적으로 몇 백 장, 몇 천 장으로 불어난다. 사진을 찍고 나면 고르고 보정을 하느라 휴대폰 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보정을 하느니 차라리 연예인 몸에 누나 얼굴을 합성을 하는 게 어떠냐며, 열 살 된 아들이 너스레를 떤다.
딸은 귀신에 홀린 듯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뒤집어 씌어 좋은 것을 눈과 마음에 담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워 잔소리를 흘리면서 두꺼운 세월이 지났음을 실감한다. 어쩌면 마음 한편의 나는 딸을 부러워하고 있는 줄 도 모른다. 그 나이를 원하는 만큼 찍고, 남길 수 있다는 게, 좋은 나이의 일상을 윤색하여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휴대폰 속 사진과 혼연일체가 된 딸의 모습을 몽환적으로 바라보며 나는 기억 하나를 게워냈다. 문득 쓴 물이 목구멍을 훑어 내렸다.
학교로 가는 버스가 막 정류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버스가 아득해 질 때 까지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공들여 치켜세운 앞머리가 망가질까봐, 스프레이와 도끼 빗이 들어있는 가방을 부표처럼 끌어안은 채, 엔간해서는 뛰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소풍날, 무리지어 다니던 친구들과 독사진을 원 없이 찍기로 약속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전 날 카메라를 빌리고 필름을 세통 사서 주머니에 두둑하게 넣었다. 모두들 아웃포커스로 뒷배경을 날린 멋진 독사진이 갈급했다. 누구하나 숫기 있는 친구가 없었지만 사력을 다해 신파배우들 못지않은 연기를 해댔다. 나무 등걸을 어루만지면서 먼 곳을 응시하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는 등의 눈꼴 시린 자세들을 취했다. 겸연쩍어 하던 친구들도 나중엔 느즈러지고 탄력이 붙어 맹렬하게 그 행위에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는 진땀 흘리며 찍은 사진을 단 한 장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찍어주고, 포즈를 취하는 일에 심취하다 보니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이미 찍은 필름을 다시 카메라에 넣어 그 위에 또 찍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형언 할 수 없는 아쉬움과 비통함에서 오래도록 헤어 나오지 못했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으러 강남에 가야한다며 부산하게 들락거리는 딸을 보니 잔소리가 목구멍에서 달그락 거렸다. 그걸 찍겠다고 인천에서 강남까지 가겠다니. 하긴 스마트폰으로 젊음을 원 없이 담고, 달콤한 아이스티에 커피샷을 추가한 아샷추를 그저 폼 난다고 마시는 MZ세대를 내가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으랴.
강남의 스튜디오는 작가마다 금액이 다르다고 했다. 딸의 사진을 찍어 준 작가가 상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작가라고. 금액을 얘기하는 딸 앞에서 나는 그저 아연한 표정 이었다. 그 값은 톡톡했다. 티가 나지 않는 멀끔한 보정은 희한하고 경이로웠다. 돌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망쳐버린 필름의 기억도 이렇게 예쁘게 보정해 준다면, 그 값이 아무리 비싸다 해도 돈을 지불하겠다고. 추억이란 이름이 무색하도록 아쉽기만 한 그 날의 기억이 보정되어 소풍날 찍은 사진들을 주야장천 꺼내어 보고 싶다고.
오늘은 성수동 예쁜 카페를 찾았다고 단장을 하는 딸을 뒤로 하고 아들과 단둘이 외출을 했다. 딸이 없으니 한갓지다. 미니멀한 간판의 예쁜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주문했다. 시럽이 윤기 있게 뿌려진 프렌치토스트위에 딸기와 블루베리 토핑의 조화가 그림 같았다. 먹기 아까울 정도였지만 우리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접시가 테이블에 부딪히자마자 나이프를 들었다.
옆 테이블에서 셔터 소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힐끗 보니 핫케잌과 소시지, 그리고 그 옆에 아샷추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것들은 먹는 음식이 아닌 양 벌써 몇 분 째 피사체가 되어주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초연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욱여넣었다. 그제야 음식이 몸을 타고 내려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았다. 프렌치토스트의 본래 모양을 맘껏 흩어 놓으며 아들이 비슬비슬 웃어보였다.
“앗싸! 누나 없으니까 사진 찍는 사람 없어서 완전 좋아.”
*작가의 변: 딸이 앉은자리에서 수백 장, 수천 장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망쳐버린 필름 때문에 사진을 한 장도 손에 쥐지 못했던 고등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샷추는 MZ세대를 대표하는 소재들 중에 가장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과 내용에 넣고 싶었습니다. 딸은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MZ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적절한 인물입니다. 딸이 하는 행동, 취향들은 당연히 요즘 MZ세대들이 즐기는 것들입니다. 극히 일부만 비추었지만 이 글을 통해 요즘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 더불어 내 세대와 비교하면서 회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