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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용감한 새댁으로    
글쓴이 : 최정옥    24-09-14 18:59    조회 : 4,766
   다시 용감한 새댁으로.hwp (84.5K) [1] DATE : 2024-09-14 18:59:32

다시 용감한 새댁으로

최정옥

 20대 중반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다. 강남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월세가 저렴한 성남시 수진동에 신혼집을 차렸다. 성남시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옥탑방이었다. 인상 좋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새댁이라 부를 때 기분이 좋았다. 새댁이 되면서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같은 교회를 다니고, 같은 임산부였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색다른 요리를 해줬다. “이런 건 어떻게 알고 했어?” 물어보면 인터넷에 나온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수많은 요리 레시피를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은 부유하게 신혼을 시작한 친구 집 얘기였다.

 어느 날 남편 회사 직원 20여 명을 초대해서 처음으로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메뉴를 고민하는 내게 구역장님이 아귀찜을 하라고 했다. 자세하게 요리법을 말해주었다. 아귀를 팔던 생선가게 아저씨로부터 아귀요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구역예배 때 같이 기도하던 집사님들과 각종 요리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친정에서 명절이나 손님 오시면 하던 요리까지 총출동한 한상차림을 계획했다. 그 시절 남편의 한 달 월급을 집들이 장보기로 다 소비하였다. 그리고 본적도 없는 아귀찜을 요리했다.

 둘이 먹는 음식을 요리하는 것도 서툴던 새댁이었다. 20인분의 아귀찜을 하느라 옥상에서 커다란 들통에 손질한 아귀를 끓는 물에 데쳤다. 준비한 미나리며 콩나물 등 각종 양념을 넣고 볶으면서 조림했다. 열심히 준비한 레시피대로 요리했는데 허여멀건, 아귀가 풍성한 아귀찜이 되었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요리가 제대로 된 건지 판단이 잘되지 않았다. 집들이가 끝난 후 친구로부터 회식 때 먹어본 아귀찜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외식하면서 처음으로 먹어본 아귀찜은 온통 콩나물찜이었다. 생각해 보면 구역장님 얘기만 듣고,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아귀찜 요리를 해서 집들이를 하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후에도 친구나 구역 식구들, 언니들 모이는 자리마다 요리에 관해 얘기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시장에 가도 뭘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장 보는 것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학창 시절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백일장에서 종종 수상을 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몇 번의 습작을 시도하면서 실력이 형편없음을 스스로 느끼게 됐다. 그리고 막연하게 포기한 줄 알았다. 거의 30년을 육아를 위한 아동도서 정도 읽고, 한 편의 글을 쓰지 못한 채 살았다.

 새댁이 되면서 요리가 하고 싶어졌는데, 육아가 끝나고 나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강의를 들으면서 매번 놀란다. 요리를 배울 때처럼,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 비법들이 학교 강의안에 다 들어있었다. ‘소재는 이렇게 찾고, 주제는 이렇게 정하고, 전개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서술하는 거구나!’ 써놓은 글을 강의 하나 듣고 나면 다시 퇴고한다. 고쳐야 할 게 너무 많다. 늦어도 한참 늦은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글을 쓰고 싶은 소망과 열정만 있을 뿐 언제 책을 읽었는지 기억하기 힘들다. 결혼해서 새댁이 되고 요리를 시작했던 것처럼, 나는 요즘 글쓰기 공부를 하고 습작하면서 글쓰기 새댁이 된 거 같은 느낌이다.

 하루 종일 남편을 기다리며 요리하고, 잦은 손님 접대 요리를 하면서 두근두근 설렜던 마음이 있었다. 매일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면서 다시 두근두근 설렌다. 신혼 때 요리가 하고 싶어서 장보기부터 좌충우돌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뒤늦게 작가가 되고 싶어서 매일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책을 보는 요즘의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도 나오고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생각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른다. 사실 시가 뭐고 시조가 뭐고 수필이 뭔지도 모르겠다. 시 같기도 하고 시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산문시 같기도 하다. 멘토님께 지도받고 학우들과 소통한다. 한 달에 한 편만 지도받는 시 평, 수필 평, 이번 달은 어떤 글로 지도를 받아야 할까 심사숙고해서 선택한다. 한 번의 기회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맛있는 요리가 하고 싶었다. 멋진 요리, 편안한 요리를 하고 싶었다. 뚝딱뚝딱 요리해서 근사하게 식탁을 차리고 싶었다. 새댁일 때부터 30년 차 주부가 된 지금도.

 좋은 글, 감동이 있는 글, 속이 후련한 글을 쓰고 싶다. 30년 결혼 생활에서 아팠던 상처와 행복했던 기억을 모두 글에 담아내고 싶다. 남은 생에 대한 기대와 준비, 꿈도 쓰고 싶다. 오늘을 살고 있는 지금을 쓰고 싶고, 아련한 어릴 적 모습도 담고 싶다. 아름다운 글,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아마도 그래서 글을 쓰고 싶은가보다. 보여주고 싶은가보다. 이해시키고 싶은가보다. 어느 날 신혼이던 우리에게 주인집 아주머니가 담가 주신 막김치 한 통은 잊을 수가 없다. 엄청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30년 지난 지금도 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담가 주신 맛깔난 막김치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서툰 솜씨로 퇴근하고 오는 남편을 위해 요리하던 새댁이었듯이, 초보 글쟁이가 되어 매일 글을 읽고, 쓰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강의를 듣는다.

 

 임신한 새댁이 20명 넘는 사람을 먹이기 위해 요리를 했었다. 그 누구의 직접적인 도움이 없었다. 시장도 혼자 다녀와야했다. 용감인 건지 무식인 건지. 빌려온 밥상을 좁은 단칸방에 다 펼칠 수도 없어서 옥상까지 밥상을 펼쳐야 했다. 빌려온 그릇과 수저도 밥상위에 올렸다. 그렇게 무사히 집들이를 마쳤다.

 나는 다시 용감한 새댁이 되고자 한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읽고 쓰고 공부하며 살아갈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현실이 감사하고 신이 난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나 많고, 잘 쓰고 싶어서 배워야 할 것도 많다. 나는 지금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

 잘 대접하고 싶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처음으로 준비한 어설픈 아귀찜처럼 지금 내 글은 너무 어설프고 솜씨라고는 전혀 없다. 매일 글쓰기를 공부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나는 30년쯤 지나면 좀 더 세련된 글을 쓰는 작가가 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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