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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도    
글쓴이 : 안점준    24-09-21 20:18    조회 : 3,825

이수도

 

안점준

 

지난여름 마산과 가까운 거제 이수도로 12일 여행을 갔다. 섬에 가는 배 시간이 촉박하여 펜션 주인에게 전화해 늦어도 배를 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차 안에서 우리 모두 정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한마음이 되었다. 앞에 차가 밀리면 또 시간을 보고 선착장에 도착해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빠르게 배를 탔다. 나는 엄마의 가슴처럼 풍요로운 바다에 앉았다. 배에 탄 사람들을 둘러보니 내 연배의 사람들이 70%가 넘는 것 같다. 동창회, 친구들과 베이비 붐 세대들의 은퇴로 카페나 공원에 많이 머문다고 한다. 이곳 여행지도 같았다. 젊은 아이들과 함께 온 팀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배에서 내리니 펜션 주인들이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 나온 차 종류를 보니 펜션의 크기에 걸맞은 차종들이다.

  식사비용은 모두 같아서 사진과 그림에서 본 듯한 지중해의 건물처럼 멋진 펜션을 예약했다. 4명의 하룻밤 숙박비가 36만 원, 식사비는 13식에 9만 원. 이수도를 선택한 이유는 남이 차려주는 밥상이 젤 맛있다는 주부들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간식만 준비하면 된다. 나는 가정식처럼 식사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단체로 식사 준비하는 식당이 있어 숙박과 식사를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육지에서 보는 대형 식당과 다른 것은 같은 시간, 같은 메뉴로 차려진 음식을 수십 명이 먹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회사 식당 같은 분위기와 다른 점은 친절하게 식탁을 살피면서 부족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부족한 음식을 추가해 주는 것이다. 식사는 섬에서 생산되는 해산물 위주로 차려진 식탁에서 3김씨들은(남편, 아들, 딸이 김 씨라서 나는 3김씨라고 부른다) 환호하며 식사했다. 서울이 고향인 나는 비릿한 생선과 조개류를 먹지 않는데 아빠 식성을 닮은 아이들과 남편은 맛있다는 노래를 쉬지 않았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신속하게 음식이 담긴 그릇을 왕복하며 맛있게 먹었다. 내 밥값 3만 원이 아까운 듯했으나 가족이 맛있게 먹어서 만족했다.

  점심 식사 후 쉬었다가 낮 빛이 뜨거워 저녁 먹고 섬에 만들어진 둘레길을 걸었다. 잡초로 무성한 묵은 밭을 보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이수도는 관광지로 소문나면서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는 탓인지 묵은 전답이 곳곳에 있었다. 볼 때마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소망은 과일나무 몇 그루와 야채 손수 심을 수 있는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이다. 집과 가깝다면 당장이라도 잡초를 뽑아내고 다듬어 사과, 단감, 캠벨 포도나무, 상추를 심고 싶다. 우리가 정한 숙소에서 본 바다의 풍광은 아름답다. 지중해와 비교도 안 된다. 매미성1)으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은 아무리 뛰어난 천재 화가라도 모방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이었다. 멋진 성에서 예쁜 공주님이 나올 듯하다. 이수도 들어가기 전이나 나와서 시간이 된다면 꼭 들르기를 추천한다.

  이수도 동쪽 바다 저편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 또한 멋진 야경을 만들었다. 출렁다리를 건널 때 다리가 끊어지면 나는 수십 미터 바다로 추락하는 건가? 다리 아래를 내려 보지도 못하고 건넜다. 저녁 섬 둘레길은 희미한 가로등 몇 개만이 서 있어 바위에 부딪힌 흰 파도는 어릴 때 그리는 도깨비 같다. 걷다 보니 서너 팀이 지나가고 어둠 속에서 휴대폰 플래쉬를 의지해 걷고 있는데 아들이 그만 가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름길이 아닌 섬 둘레길을 가족 모두가 땀 범벅이 되어 걸었다. 나는 목적지를 정하면 포기하지 않는, 피곤한 성격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어둠 속에서, 한 팀이 플래시를 켜고 다가와 출렁다리가 여기서 많이 가야 하느냐고 물어서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덩치도 큰데 겁이 많아 그 사람들에게 어둡다고 내일 아침에 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한참을 가야 하는데 왜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냐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항의했다. 어차피 가려고 나온 길, 멀리서 여행 왔을 때 가고 싶을 때 가 봐야 하는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불빛을 비추던 식당을 지나오니 폐교가 캠핑장으로 변해 단체 숙박할 수 있는 곳으로 되어있었다. 이곳에 외지 사람들이 자본금을 가지고 노후 준비로 멋진 펜션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어린아이라고는 부둣가 휴게실 편의점 가족뿐인 것 같다. 요즘 나이 든 사람이 말한다. 배 타러 나오는 차에서 펜션 주인 여자가 아들 가방에 달린 리본을 보고 아는 척을 하며 물었다. ㅇㅇ 회사에 다니냐고. 자기 것도 보여주며 남편이 차 키에 달아 주었다고 한다.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잘 살아야 한다. 처음 온 이 섬에서 아는 사람 만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우리는 남을 쉽게 판단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간다. 내가 한 말, 행동으로 나도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은 체 말이다. 조금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본다.

 

  마산 오는 길에 지인이 추천했던 통영에 있는 동백 커피 카페에 갔다. 입장료 만 원이다. 입장료를 내면 차 한 잔과 넓은 식물원을 구경할 수 있다. 동남아에서도 볼 수 없었던 커피나무. 내 키보다 훨씬 큰 나무들이 커피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것도 아닌데, 키 큰 바나나 나무에 바나나가 계단을 이루듯이 열려 있었다. 바나나 꽃이 너무 신기하게 생겼다. 파인애플과 알 수 없는 열대 식물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이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로또 열대 번은 되어야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우스가 웅장했다. 올봄 화원에서 커피나무 두 그루 사서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는데 이렇게 크려면 몇 년이나 걸릴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조금 있으면 추워질 텐데, 내가 하우스 난방비 걱정을 하고 있는 건 또 뭘까.

여행, 그 시간은 원초적인 인간 본연이 가진 순수와의 만남이다. 오롯이 자연 속으로 내 마음을 내어 주는 것.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 아주 작은 섬 이수도를 읽었다.

 

 

1)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 백순삼 씨가 자연 재해로 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홀로 쌓아 올린 벽이다. 바닷가 근처에 네모반듯한 돌을 쌓고 시멘트로 메우길 반복한 것이 이제는 유럽의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성이 됐다. 그 규모나 디자인이 설계도 한 장 없이 지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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