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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글쓴이 : 윤소민    24-09-25 16:21    조회 : 980

그대,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소멸

사전적 의미론 사라져 없어짐이다.

소멸을 하나의 낱말로 무심히 읽을 때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라져 없어지는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르다. 꽃도 피고 나면 지고, 생명은 태어나면 죽고,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물이나 현상들이 보였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당연한 이치겠지. 그런데 내가 여전히 남아주기를 바라는데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고 있으면...그건 당연하지가 않다. 왜 이렇게 되었나, 막을 방도는 없나 애달프다.

엄마, 이번 추석 때 외할머니를 못 뵙게 되는데 미리 가면 안돼요? 외할어버지도 안 계셔서 쓸쓸하실 텐데...”

어릴 적 키워준 수고를 잊지 않고 외할머니를 챙기는 딸, 윤진이의 한마디에 열차 예매 앱을 열었다. 하지만 KTXSRT도 금요일 티켓은 모두 매진이라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금요일, 딸과 나는 캐리어에 23일의 짐을 꾸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디 한적한 시골로 가는 버스처럼 주말인데도 버스 안에는 우리를 포함해서 총 열한 명의 승객만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갔었는데 서울과 마산 사이에 이렇게 교류가 없어졌나...

우리 막내 딸, 소민이 왔나~!”

마산고속터미널에 내리자 친정 엄마가 터미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이름을 부르며 끌어안고 반겼다. ...우리 엄마는 다리도 튼튼하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엄마, 뭐 필요한 거 없어요? 바로 옆이 신세계백화점인데 같이 가볼까요?”

필요한 거 없다. 엄마는 돈이 제일 좋다이가. 알면서!”

당연히 알지. 하지만 나는 돈으로는 안 드린다. 딸이 네 명이나 있어도 가까이 사는 딸 하나가 없다며 한 번씩 외로운 푸념을 하는 엄마에게

딸이랑 쇼핑도 하고, 어머니는 좋으시겠어요.”

하는 매장 직원의 말을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돈이 제일 좋다던 엄마는 안 먹히겠다 싶었는지 차선책으로 텀블러도 넣어 다닐 수 있는 큰 사이즈의 가방이 필요하단다.

우리 셋은 엄마의 양산에 의지해 백화점에 도착했다. 금요일 오후인데 백화점 앞 거리에 사람이 너무 없었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생각하며 백화점 문을 열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사람이 너무 없다! 내가 즐겨 가는 서울의 백화점에 비하면 파리 날린다할 정도다. 가방 매장뿐 아니라 의류 매장에도 우리 외에는 쇼핑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차갑고 산뜻한 백화점 공기를 기대했는데 손님이 없으니 전기라도 아끼려는 건지 온도가 높아 실내 공기도 약간 텁텁했다.

주말인데 손님이 이렇게 없어요?”

물어보는 나에게 직원은 요즘 계속 이렇다면서 큰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제가 고향이 마산인데 이렇게 활기 없이 한산하니까...마음이 안 좋네요.”

뜬금없는 나의 말에 직원은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한지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갑자기 머릿속에 지방 소멸이라는 낱말이 팝업창처럼 떠올랐다.

어린 시절 마산, 창원, 진해 세 도시 중에서 마산이 제일 발달 된 도시였다. 창원은 온통 논밭인 시골이었고, 진해 사람들은 마산 부림시장이나 합성동에 한 번 놀러 나오려면 큰맘 먹어야 했다. 창녕, 의령, 함안 등 인근 군 지역의 동네 신동들은 비평준화 고등학교인 마산연합에 진학하기 위해 연합고사를 치르고 유학왔다. 그런 친구의 자취방에 초대받아 그 애를 따라 고불고불 골목길을 걸어갈 때, 딱히 좋은 줄 몰랐던 내 고장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방 얻어 거주하고 싶은 곳이라는 사실에 괜스레 뿌듯하기는 했다.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거제도에 살 때에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거제대교를 건너 2시간을 운전해서 마산 대우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거제에는 횟감말고는 살 만한 것이 없다면서 신혼살림 장만을 할 때도 마산에서 해결했다. 2000년대의 초반, 그때도 마산의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서 북적거렸고, 목소리도 크고 거센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시끌시끌했다. 그런데 2024년인 지금, 내 고향 마산은 죽은 도시처럼 고요하다.

서울 집중지방 소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교통의 발달, 특히 고속열차의 발달이 큰 몫을 했을 거다. 나처럼 인근의 도시로 쇼핑가던 사람들이 KTX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가보니 살고 싶어지고...이렇게 모두 서울과 수도권으로 모여드니까 집값은 고공행진을 하고, 청년들은 주거의 불안으로 결혼을 꺼린다. 설령 결혼까지는 어찌 용기 내었다 해도 자녀를 키우는 비용은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한다. 지방 소멸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지는 길이 아닐까?

텅 빈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고향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지방 소멸에서 저출산까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려가서 살자니까...”

노년에도 서울에 거주하겠다는 나에게 남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개인의 선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지만,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대, 소멸하지 말고 살아남아 주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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