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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아 비켜라    
글쓴이 : 홍수야    25-01-07 17:55    조회 : 412
   수필2(운명아 비켜라-자기소개서)완성본.hwp (17.0K) [0] DATE : 2025-01-07 17:55:54

                    운명아 비켜라

 

                                                            홍 수 야

 

 나는 1960년도에 경남 합천에서 25녀 중 넷째로 농사일이 많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우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호롱불이나 촛불을 켜고 생활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지면 자야하는 상황인데도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어쩌다 시간이 나면 학교 숙제를 했지만, 일하느라 숙제를 못해가는 날이 훨씬 많아 선생님께 수시로 벌을 받았다. 정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시험기간에는 책상이 있을 리 만무하여 촛불아래서 일렬로 엎드려 공부를 했다. 농사일 하느라 얼마나 피곤하던지 고개를 끄덕끄덕 몇 번 하다가 바로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죽을 뻔했던 적도 있었으나 형제들이 재빨리 꺼주어 별일 없이 잘 넘어갔다.

 내 어릴 적 학교생활은 남들이 가니까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이고, 본업은 고구마 밭, 땅콩 밭에 나가서 잡초를 뽑는 일이어서 그걸 해내야 하는 나는 힘이 부쳤다. 우리 형제들은 태어나서 걸음을 제대로 걷기 시작하는 날부터 일꾼이 되어 있었다. 대농이었던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낮술을 마신 후 두 팔을 뒷짐 진 채 어슬렁어슬렁하며 자녀들이 게으름을 피우는지 망을 보는 감시자와 다름없었다. 밭을 매다가 뒤처지면 호통을 치는 바람에 농사일이 서툰 나는 멀리 도망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을 때가 많았다. 한여름 땡볕에 고구마 순이 썩지 않게 밭고랑에서 이랑으로 하나하나 올려 주면서 잡초를 뽑아야 하는데 나는 도중에 화가 치밀어 아버지의 시선이 딴 곳을 향할 때면 고구마줄기를 밟아서 뭉개버리기도 했다. 흘러내리는 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내 앞에 놓인 답답한 현실을 흔적까지 없애고 싶었다. 사방의 사물들은 한여름 더위에 졸고 있는데, 내 머리 위에서는 북쪽방향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만 하며 모두를 귀찮게 깨운다. 나는 날아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산골마을을 벗어나 꼭 서울로 가서 고상하게 살아야지하고 다짐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와서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렸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뻤다. 티브이에 나오는 외국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하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도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필수적인 공부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께서 너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 치고는 이해를 잘하는구나.” 라고 간간이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꼴찌로 따라가는 농사일이 아니라 공부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에서 영어와 수학과목을 배우기 시작했고. 다른 친구들은 언니나 오빠한테 배워서 문장으로 된 영어를 해석할 때 난 에이 비 씨를 집에 와서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외워야 했다. 처음에 는 막막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고 나면 그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아 나의 능력을 스스로 믿게 되었다. 심지어 친구들이 나한테 와서 묻는 일도 자주 생겼다.

 하지만 곤란한 일도 자주 있었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언니가 학교에 찾아와 교실 유리창 위로 고개를 귀신처럼 쭉 내밀어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 너희 언니 또 왔다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벼 수확해야 하는데 무슨 공부를 하느냐라며 빨리 일하러 가자고 데리러 오는 것이다. 친구들의 소리에 놀란 나는 책상 밑으로 숨고 언니가 가고 난 후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했다. 그렇게 힘든 순간들을 꿋꿋이 버텨 내어 나는 농사일과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고. 제 위의 오빠와 언니는 농사일을 척척 잘 해내어 초등학교만 마치고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우리 동네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산길을 걸어서 학교를 가야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옆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경운기가 <덜커덩 덜커덩>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상희라는 남학생이 경운기를 몰면서 타라고 하며 세웠다. 장에서 만난 자기 아버지를 대신해서 경운기를 몰고 온다고 하며 인심을 쓰길래 고맙다는 말과 함께 경운기에 올랐다. 아직 집까지 가려면 30분 이상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행운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한해 선배인 인순언니와 영자라는 친구와 셋은 망설이지 않고 탔다. 그런데 우리가 앉기도 전에 경운기는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셋을 자갈길로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어머머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한 명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둘은 머리 뒤통수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어스럼달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놀리는 듯 웃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가까운 영자 친구 집까지 손수건을 머리에 대고 갔다. 소독을 하고 저녁밥까지 먹은 후에 다시 윗동네의 집까지 둘은 걸어서 가야했다. 다음 날 등굣길에서 만난 상희는 우리를 보더니 말도 없이 언제 내렸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둔할 수 있나!!

 그 후 나는 간호대학을 졸업하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으며, 1987년도에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내 남편은 순하고 성실해서 사는 동안 마음고생은 별로 하지 않았다. 21남의 자녀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중에도 가슴 한켠에서는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난 생각 끝에 병원에 다시 출근하여 간호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돌보던 환자들이 잘 회복하여 퇴원해 갈 때의 느끼는 보람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30년간 아픈 사람들과 소리 없이 웃고 우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미뤄 두었던 글쓰기 공부를 해야겠다고 용기 내어 병원에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지금은 가끔 뒷산에 올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을 보면서 후회 없이 살아온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간절히 원했던 수필공부 목동반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나는 엄청난 행운아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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