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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혹    
글쓴이 : 김미경    25-07-06 15:12    조회 : 11
   엄마의 혹.docx (16.9K) [0] DATE : 2025-07-06 15:12:25

엄마의 혹
                                                                    

                                                                      김미경

 

검사 결과, 암일 가능성이 높아요. 확인을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엄마의 힘 빠진 한숨이 진료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엄마는 수술이 확정되기 1년 전부터 신장암이 의심되어 추적 검사를 해 왔다. 결국 최종 검사 결과, 수술을 하기로 했다.

병원 일정이 있는 날에는 이매역 6번 출구가 엄마와 나의 만남의 장소였다. 역 근처에 주차를 하고 출구 쪽에서 엄마를 기다리면, 아담하고 단정한 엄마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에는 언제나 보냉 가방이 들려있다. 엄마의 반찬들이다. 가방은 변함없지만 그 속의 반찬들은 계절과 아빠의 입맛에 따라 다채롭게 바뀌었다. 제발 대중교통으로 올 때에는 빈손으로 오시라고 해도, 엄마는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입원 날짜는 큰아이 생일로 정해졌다.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기라 입원부터 퇴원까지 상주 보호자 한 명만 환자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엄마는 간병인을 쓰겠다고 하셨지만, 이번만은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내가 엄마 옆에 있고 싶었다. 엄마는 사위와 생일을 맞은 손주에게 딸을 데려가는 민폐를 끼치게 되었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입원하는 날, 엄마의 짐은 단출했다. 배낭을 멘 어깨 아래, 그녀의 손에 시선이 멈췄다. 익숙한 보냉 가방이 또 들려 있었다.
 “
입원하면 금식하고 수술하고 나면 병원식만 드셔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병원까지 반찬을 챙겨 왔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딜 가든 보냉 가방과 함께 하는 엄마가 귀엽게 느껴졌다.
 “
너 병원밥 싫어하잖아. 그냥 갈비찜이랑 네가 좋아하는 파래무침, 볶음김치, 과일, 간식거리 조금, 영양제도 좀 챙겨왔지. 흐흐.”
 “
무슨 환자가 보호자 반찬을 챙겨오고 그래. 못 말려 정말!”

엄마의 수술은 다음날 아침 첫번째 순서로 잡혔다. 내내 담담하고 씩씩하던 엄마였지만, 수술을 앞둔 밤에는 엄마도 나도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이른 새벽부터 수술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입원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엄마였으니

나는 수술 당일이라 입맛이 없어 아침을 거르려 했지만, 엄마는 기어이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어 상을 차렸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한 술 뜨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수술 침대를 가져왔다. 수술실로 가야 할 시간이다. 평소에 시간 약속에 철저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엄마가 뜻밖의 행동을 했다. 병원 직원에게 준비가 덜 되었다며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리고 서둘러 아침상을 정리하는 내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
화장실에서 천천히 나올 테니까 어서 더 먹어.”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먹히지도 않는 밥을 한술 더 뜨는 시늉을 했다.

수술실 앞에서 엄마와 인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나를 읽어낸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잘하고 올게. 오래 걸리니까 올라가서 천천히 밥 마저 더 먹어.”
 
엄마는 용감한 환자였고, 나는 나약한 보호자였다. 나는 끝내 목이 메여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가운 수술실로 엄마를 들여보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반찬을 받아먹고 있다. 수술을 앞둔 엄마가 내 아침밥을 챙겨주었다. 엄마에게 받은 묵직한 반찬 가방은 언제나 빈 반찬통들로 채워져 다시 엄마 손에 들려진다. 도대체 이 가방은 누구의 것일까? 엄마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심장을 조이는 잔인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수술은 잘 끝났고, 주변의 근종들도 모두 제거했어요. 암이 맞았습니다.”

 수술을 마친 의사 선생님의 말에 온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감사의 인사가 목까지 차올랐지만, 눈물부터 터져 나와 끝내 한마디도 잇지 못했다.

회복실에서 나온 엄마는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통증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지금 몇 시니? 너 여태 밥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겐 영원히 떼어낼 수 없는 혹이 남아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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