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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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화 순
그 날도 오늘처럼 몹시 비가 내렸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금방 눈앞이 흐려진다.
잊어버려야지 하면 할수록 오히려 어제 일처럼 또렷이 떠오른다. 복잡해진 나의 머릿속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힘없이 뒤뚱거린다.
반찬거리를 사 들고 시장에서 막 나왔을 때였다.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자 사람들에 밀려 나도 바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탈 버스가 오나 싶어 두리번거리며 우산을 접으려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찻길을 보며 무어라 두런거렸다. 나 역시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걸 어쩌나. 어떻게 해 ?”
비둘기 한 마리가 비틀 거리며 힘없이 찻길을 돌아다녔다. 날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했다. 어디를 다쳤거나, 아프거나, 아니면 눈이 안 보여 방향감각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여전히 차들은 빗물을 튀기며 쉴 새 없이 달리는데, 과연 누가 비둘기를 향해 뛰어가서
구출해줄 수 있을까. 보는 사람마다 안타까워하며 발만 구를 뿐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둘기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면서도 1차선을 지나 2차선까지 넘어갔다.
“속도를 줄이시오. 저 비둘기를 살려 주시오. 너무 불쌍해요.”
지나가던 노인이 비둘기를 보자마자 급히 찻길로 내려서더니 두 손을 들어 마구 흔들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사람들의 걱정 섞인 소리와 어르신의 간절한 목소리, 빵빵거리며 질주하는 찻소리가 뒤범벅이 되었다. 나 역시 비둘기를 보고는 조바심이 생겨 그 쪽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비둘기가 병균이 제일 많다면서 손을 대면 안 된다고 수군수군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마음만 조일 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나 역시 애를 태우면서도 뛰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안 돼, 어, 어...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건만, 큰 버스가 지나갔고 더 이상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면서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여보시오. 그대들, 한 생명이 갔네요. 사람이나 새나 목숨은 같은데 어찌 그리 쉽게 가노, 살려고 얼마나 애썼을꼬.”
당신의 거동이 불편하신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처럼 소리 내 울면서 넋을 놓고 계셨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비둘기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슬퍼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더 가슴 아파했다. 혀를 차면서 눈물을 문지를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나 둘 사람들이 그 곳을 떠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찻길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차들이 달렸다.
할아버지는 그 일로 몹시 시름이 컸을 것이다. 며칠 동안은 편히 잠도 이루지 못하고 아마 약주로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그 때처럼 훌쩍였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생각에 단순히 비둘기의 죽음이라고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지금까지 후회만 가득하다. 크든 작든 한 생명의 위험 앞에서 왜 선뜻 뛰어 갈 용기가 없었을까.
병균이 어쩌고 하는 말에 계산을 하며 멈칫했던 내 자신이 지금도 부끄럽다.
그토록 노인이 애달파 하고 여러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비둘기는 기억하겠지. 사람이든 새 든 이 세상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간절히 사랑한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믿고 싶다. 비둘기는 꼭 부활해서 마음껏 날개 짓 하며 다시 우리가 사는 동네를 찾아올 것이다.
맑게 개 인 어느 날, 귀여운 비둘기는 예쁘게 살이 올라 노인의 집 마당에서 자유롭게 종종거리겠지.
그때 할아버지께서는 반가운 듯이 맞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