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내 자리
김 화 순
몇 년 전 남편은 동료들과 뉴질랜드로 7일 동안 여행을 떠났다. 처음으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이 설레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뭔가 할 일도 많을 것 같아 좋기만 했었다. 첫날, 잔소리도 안 듣고 해방된 기분에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그 기분도 그날 잠시 뿐이었다.
이튿날, 부담 없이 대충 한 끼 해결하고 얼마나 편한지 하루 종일 뒹굴었다. 하지만 셋째 날부터 슬슬 짜증이 나더니, 마누라 집에 혼자 두고 나가서 잘 다니고 있는지 심술이 나기 시작 했다 .그러다가 넷째 날부터는 그가 슬슬 보고 싶어지기 시작하고 너무 허전해지면서 차를 몰고 다녀도 텅 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마치 한쪽 날개가 떨어져 나간 그런 기분이었다. 그날 은 그렇게 멍하니 내달리기만 했다. 차에 기름이 없는지 도 모른 채.
다섯째 날 ,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통을 붙들고 “뭐야. 당신만 여행가니까 좋아? “하고 소릴 지르며 엉엉 울어버렸다. 남편은 미안해하면서 다시는 나만 떠나지 않겠다며 본인도 마음이 안 편하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엿새째 되던 날, 전화를 받아서 일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아마도 내일이면 남편이 돌아온다는 기대감이 나의 우울함을 누그러뜨린 듯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곱째 날, 그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 가족들은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서로 어떻게 지냈냐는 둥, 우리 안 보고 싶었냐는 둥.. 남편은 여행도 좋았지만 떨어진 동안 가족 생각이 간절하고 그리워서 오히려 돌아오고 싶어 혼났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2주 동안 독일 문학기행을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불안한지 걱정을 하며 어떻게 긴 여행을 가려 하느냐 재차 물어댔다. 애들 생각에도 불안했었나 보다. “걱정 마, 우리가족 엄마 없이도 잘 사는지 한번 보려구 간다. 언젠가는 우리 딸도 시집가고 아들도 장가 갈 텐데, 엄마랑 떨어져도 살아봐야지?” 이 얘기를 들은 딸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근데 아빠와 함께 다녀오시지..” 말끝을 흐렸다.
결혼 30주기가 되도록 혼자서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사실 나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가족을 떼어놓고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맘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여행 하루 전날 밑반찬과 간식거리들을 준비해놓고 부족한 것이 없는지 하루 종일 부엌을 맴돌았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자식 가진 부모들은 다 같은 마음이리라.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연신 “여보. 끼니 거르지 말고 냉장고 안에 반찬 많으니까 꼭 챙겨 드세요. 너희들도 아빠 잘 챙겨드리고, 밥 꼭 먹고 다녀야 해. 하며 부탁 겸 잔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우리 걱정일랑 말고 당신이나 잘 다녀와. 일행들 잘 쫓아다니고 타국에서 이상한 사람들 만나지 않게 조심해”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남편과 아이들을 포옹하고 서로 잘 지내고 있으라며 인사를 하고 나는 인천공항 향했다. 13시간의 긴 비행을 끝내고 머나먼 땅 독일에 도착했다. 일행들을 정신없이 졸졸 따라 다니다 보니 삼 일이 훌쩍 흐르면서 슬슬 집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먼 타국에서 걱정이란 걱정은 다하고 애만 태우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때로는 혼자서 오만 생각과 걱정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아니 내가 이리 걱정해도 아마 우리 가족들은 나 없이 잘 먹고 지낼 거야. 애들 다 컸는데 뭐. 나 없어도 아무 탈 없이 잘 살거야. 암, 그래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어찌나 섭섭하던지. 만약 이 12일간의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식구들이 태연한 척하며 엄마 없이 잘 지냈어~ 라고 하면 그것도 참 섭섭할 노릇이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며 약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과연 우리 가족들은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물론 밝은 표정이면 좋겠지만 ‘엄마가 없는 동안 우리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라는 말을 내심 듣길 바랬다. 그래야 내 자리가 얼마나 큰 자리였는지 실감할 수 있을 테니까.
길고도 짧았던 독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생각한 대로 우리 가족은 나를 보자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이라도 한 듯이 부둥켜안고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며 무뚝뚝한 남편은 “당신 없는 동안 얼마나 지루하고 하루하루가 길었는지 몰랐다.”며 나를 환영해 주었고, 딸은 “엄마, 담부터는 꼭 아빠랑 같이 가요~ 엄마 없으니깐 아빠 너무 초라해 보여. 빈자리가 너무 커요.”라고 하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아들 역시 “엄마 없는 동안 영양실조 걸리는 줄 알았어. 엄마 밥 먹고 싶어 혼났네요.”하며 거드름을 피워댔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역시 ‘우리 집은 나 없으면 안 돼!’하는 생각으로 으쓱해 하며 따뜻하고 그리웠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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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하면서 내 가족 내 남편의 사랑, 그리고 나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체크해본다.
이것이 이 세상의 어머니요, 한 가정 안에서 아내가 꾸려나가는 몫인가 보다
2011.7.독일여행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