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방 사람들
허 향심
행주대교를 지나 동네로 들어서면 능곡 토당동이다. 마을 입구에는 화원이 즐비하고 모텔이 몰려 있어야 손님이 있듯이 점 집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당 정문 앞에도 무당 집이 있는 것을 보면 터가 센 동네이다.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지 11년이 된 4층 건물 작은 목욕탕에 다니게 되면서 정상적인 가정은 20%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금 방에 들어서면 여자들은 시댁 흉으로 시작하여 자식 이야기로 끝나고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한다. 남자가 바람이 나서 이혼한 부부도 많지만 여자가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린 사람도 있다.
건물 1층에는 소화기 대리점, 찜이라는 간판에 구제품을 파는 곳과 어린이 수학 교실이 있으며 복도 입구에는 항상 먼지가 쌓인 자전거가 묶여져 있다. 지나갈 때마다 비좁다는 생각과 옷에 먼지가 묻을 것 같아 벽 쪽으로 붙어 2층을 지나다 보면 유치원 교재와 놀이 기구를 납품하는 사무실에서 전국으로 보내는 택배가 있어 비좁기는 마찬가지다.
3년 전까지 2층이 여탕이었고 3층이 남탕이었으나 동네에 큰 사우나가 생기면서 남탕이 없어지고 3층을 여탕으로 운영하는 작은 목욕탕이며 4층은 주인과 두 세대가 전세를 살고 있다. 주인 남자는 교직 생활 퇴직 후 퇴직금으로 건물을 샀지만 건물을 지을 때 건물 주가 부실 공사를 하여 10년이 되면서 목욕탕 탈의실 천정에서 물이 세어 마루 바닥에는 대야와 걸레를 놓아 왜 고치지 않나 불평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큰 목욕탕들은 썼던 물을 정수해서 약품 처리하여 다시 쓰지만 동네 작은 목욕탕은 기계 시설이 없어 수돗물과 지하수를 쓰고 있으며, 소금을 1000도로 구워 먹는 약 소금을 만들고 남은 찌거기를 몸에 바르면 피부가 좋아지고 지방이 많은 사람은 피부병처럼 부어 올라 터지면서 기름이 빠지는 신기한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소금으로 이를 닦으면 잇몸의 냄새가 없어져 자주 오지 않는 사람은 주인 몰래 소금을 한줌씩 가져 갈 정도로 효험이 있다.
20년 전 어느 책에서 아픈 관절에 소금을 랩으로 감아 10분을 두면 좋아진다는 것을 읽은 뒤부터 소금을 바르기 시작 했지만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하얀 이 소금을 쓰는 곳은 전국에 세 군데가 있다고 한다.
소금 방에 들어서면 소금으로 만든 벽돌로 되어 있으며 바닥은 소금을 물에 이겨 발라 말리기 때문에 굳어서 녹지 않는다. 낮에 사람들이 앉아있던 자리에 땀으로 조금씩 녹아 내린 곳은 밤에 다시 새로운 소금을 발라 항상 단단한 소금 방이다.
쉬는 공간도 소금 벽돌로 만든 에스키모 집처럼 만들어져 있어 빛 소금 사우나라고 간판이 되어 있지만 지금은 소금 벽돌 집은 없어졌다.
이 소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처음에 오면 기름이 빠지는 손님 몸을 보고 피부병으로 오해를 하여 주인에게 왜 저런 여자를 받느냐며 피부병이 옮긴다고 돈을 받아 가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살다 보니 서민의 삶이 이런가 할 정도로 내 집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월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 그랬다. 아파트에 살면서 융자를 얻은 집도 월세나 같다고. 그 말이 맞는 말이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여자들이 이백 원짜리 화투를 치면서 떠드느라 목욕탕인지 화투 판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손님을 생각하지 않으며 화투를 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면서 왜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10년을 하루 같이 오고 있는지. 내일은 오지 말자 하면서 발길은 소금 때문에 소금 방을 향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다.
매점을 보는 아주머니는 66세로 서른 살 때 남편과 사별하여 동네 슈퍼를 하면서 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노래 방을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고 노래를 잘 하지만 휘파람까지 잘 불어 겉 보기와 다르다는 말들을 한다. 남매는 마흔 줄에 들어섰지만 결혼을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이 편하다고 한단다.
도우미는 전라도 사람과 딸을 낳고 이혼한지 27년이 되었다. 손님이 때를 밀고 외상을 하고는 돈까지 빌리는데 시간이 나면 화투 판에 같이 매달리는 모습은 소금 방에나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화투 판에는 선 이자를 받고 돈을 주는 여자가 있다. 예를 들어 백 만원을 빌려주면 선 이자 사십만 원을 제하고 육십만 원을 주는데 그 많은 이자를 주고 남은 돈으로 노름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행주대교 입구에서부터 비닐 하우스로 된 화원에서 화투가 시작하여 하우스 고스톱 이라고 한단다. 소문이 퍼지고 화투를 하는 사람들이 멀리서 원정을 와 몇 집 건너 화투 방이 생기면서 주택가는 밤이면 날을 새워 화투를 치고 새벽이면 돈을 얼마 잃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이슬을 맞고 집에 가는 여자들을 새벽 운동 나가면 볼 수 있다.
밤을 새워 화투를 치다 돈을 잃은 사람이 신고를 하여 잡혀가 벌금을 내어도 자려고 누우면 천정이 화투로 보여 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아침 운동을 갔을 때 한 여자가 한숨을 쉬더니 화투를 하여 공무원 남편이 벌어온 돈과 집을 날려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런데, 화투를 피하여 온 곳이 더 화투 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에 있으면 멈추지 못하고 가고 싶은 마음에 운동을 나왔다는데 마른 체구에 기운이 없는 얼굴이 안되어 보였다.
남편 친구 부인도 꽃집을 하면서 화투를 만져 집을 날리고 야쿠르트 배달을 하는 것을 보았다. 화투를 하는 사람들은 손을 잘라도 한다는 말이 있고 얼마나 끊기가 힘이 들면 남편 잠든 사이에 화투를 치고 새벽에 들어가는 여자들을 보면 우선 즐기고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죽은 동네가 되었지만 일산 신도시가 개발 되기 전에는 행주 나이트가 유명하여 서울 사람들이 춤과 놀이를 할때는 능곡으로 모였다고 한다. 춤이란 이 동네 사람에게 활기를 준다고 말 할 정도로 춤을 출 것 같지 않은 여자도 화장을 짙게하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면 콜라텍을 간다고 한다.
한 번은 모텔을 하는 여자가 나를 언니라 부르면서 좋은데 구경 시켜 준다고 차를 가져와 집에서 입었던 그대로 보기만 하여도 신이 난다는 곳에 갔을 때 3천원을 내고 들어 간 곳은 콜라텍이었다. 가방을 나에게 쥐어주며 구경을 하라면서 나비같이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데 단화에 편한 면바지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일하는 여자가 젊어서 춤을 배워야지 나이 먹어 배우면 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혀 밖으로 나와 밤 하늘의 별을 쳐다 보면서 내가 지금 귀신에게 홀렸나 할 정도로 잠깐 동안 콜라텍을 들어가 본적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자고 여동생이 집을 계약해 살던 집을 급매로 팔고 이사를 와 목욕탕이 어디 있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볼 때 간판이 미장원. 점집. 부속집. 웅어회집. 삼겹살 1인분에 3천원 하는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음식점 이름들이 낯설기만 하였다.
이사를 하면 목욕탕이 어디 있나 먼저 확인 하는 것은 몸에 수분을 스스로 배출을 못해 사우나를 다니는 게 좋다는 한의사의 충고대로 사우나를 다닌 지 20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금이 좋다고 먹을 것을 싸가지고 먼 망원동에서 다섯 여자들이 오면 작은 탈의실은 화투 하는 사람들과 부딪쳐 시끄럽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소금 방에 들어온 여자들에게 담배 냄새가 난다며 왜 담배를 피는지 알 수가 없다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들이 소곤거리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맛이 있어 심심하지 않고 남보다 한가지를 더 해서 입이 바쁘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는데 전에 살던 동네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인데 열명 중 일곱 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자들은 담배가 나쁘다고 끊는 추세인데 얼마 전에 이화여자대학 앞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차 한잔 할까 해서 찻집엘 들어갔다가 몇 집을 다시 나왔는지 모른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가득하여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전화에 심한 욕설을 하며 목욕탕에 들어서는 꽁지 하는 여자. 탈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쳐다 보아도 신경을 쓰지 않는 여자는 화투치는 사람들에게 돈을 대주는 여자로 욕으로 시작하여 욕으로 끝난다.
날마다 욕을 듣다 보니 언제인가 모임에 가 식사 중 말끝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쌍말이 나와 누가 듣지나 안 했는지 당황스런 날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설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은 모임에 가면 말 실수를 할까 보아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긴장된 만남을 가져 어떤 날은 지금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안타까워 다른 목욕탕으로 옮겼지만 소금 때문에 마음은 항상 소금 방에 있다.
김밥 언니라 부르는 여자는 강남에 있는 모 고등학교 한문 교사였는데 이 동네로 시집을 와 화투에 손을 대면서 신세를 망쳐 김밥 장사를 하였지만 현재 오십 중반이 되어 무릎 관절 수술까지 하였어도 여전히 밤을 새워가며 화투를 친다고 한다. 많은 사연 속에 끝이 없는 소금 방 오는 사람들 살고 있는 모습을 이곳에서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이런 삶을 누가 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