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서서히 지표를 부드럽게 감싼다. 문 밖을 나서면 한층 따뜻하고 다정해진 공기의 질감! 하지만 집 안에만 들어서면 근육은 긴장되기 일쑤다. 겨울보다 더하다는 꽃 추위에 근육은 아직 최소한의 움직임만 고집한다. 봄 서리에 풀어진 흙 속에서 땅 위의 생을 예비하는 풀씨들의 숨소리가 들릴 듯 한데 나의 혈관 속의 피는 아직 상쾌하지 못하다. 아마도 지난 겨울의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평소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생활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가을이 저물 때쯤이면 몸이 먼저 계절을 읽는다. 창문을 드나드는 스산한 바람을 피해 이불속으로 자꾸 움츠러든다. 그러면 이미 나는 시간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든 개의치 않는다. 내 안으로 침잠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들고 병적으로 환상에 몰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차고 순수한 겨울 아침의 평온을 잊고 침대 속에 갇혀 지낸 것이 벌써 몇 년 째 일까?
그래도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감각기관이 민감해지는 잔설이 남은 깊은 골짜기까지 햇빛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을 즈음 나는 ‘리노’를 만났다. 나무의 풍경이 하나 둘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이른 산책 길,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평소 같으면 돌아서 갈 길을 그 날은 왠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게 된 것이다. 연갈색 벽돌이 널브러지고 회백색 페인트 통이 어지럽게 버려진 바닥에 서있던 작은 입간판 '리노'
'리노'는 드립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며칠 후 무작정 다시 찾아간 그곳을 견고한 연갈색 벽돌이 신성하게 메우고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그림 같은 매장이 쓸쓸한 골목을 풍요롭게 바꾸어 놓았다. 주인이 직접 로스팅을 하는 뒷골목엔 커피향이 종일 풍부하다. 문을 연 첫날, 내부에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아 즐겨 마시던 커피 한 잔을 시켜 밖으로 나왔다. 어지럽게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시동을 켜고 첫 한 모금을 맛보았던 그날 오전! 햇볕이 좁은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와 겨우내 움츠렸던 내 어깨에 그리고 내 이마에 빛을 쏟아 놓았다. 혈관 속의 맑은 피가 상쾌하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나를 깨우는 새로운 열정, 겨우내 고독에 전 내 가슴이 적도의 열매, 그 열매의 과육에서 흘러나온 한 모금의 진액에 녹는 순간이었다.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맛! 그렇게 나는 '리노'의 단골이 되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하기 전 서둘러 간다면 주인이 직접 내린 ‘고노 드립커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드립커피’ 란 손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말한다. 사람들이 보통 즐겨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원액을 기계로 내려 물을 희석하기 때문에 빠르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드립커피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그 중에서도 '고노 드립'은 가장 많은 공을 드려야 한다. 제대로 된 드립 커피 한잔을 만들려면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니 커피를 '슬로우 푸드'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추출하는 방법은 우선 적당하게 로스팅한 원두를 드립 커피 굵기로 갈아 약 12g정도 준비한다. 페이퍼필터는 양쪽을 접어 드리퍼에 잘 밀착되도록 올려놓고 서버는 미리 데워 놓아야 한다. 준비가 되면 갈아놓은 원두를 필터에 담고 수평을 맞춘다. 수평을 맞출 때 너무 강하게 흔들면 커피 사이의 공간이 유지되지 않아 밀도가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밀도가 높으면 물이 통과할 때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88도로 데워진 물을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뜨린다. 흔들리지 않도록 포트를 단단히 잡고 중심에 동전 크기의 거품이 생길 때까지의 기다림, 바로 커피의 '뜸들이기' 과정이다. 나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좋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듯 완전한 세계이다. 부풀어 오른 커피와 떨어지는 물줄기에 집중하는 5분의 시간, 그 거대한 침묵과 마주한 작은 몸이 순수한 물줄기가 검은 세계를 통과하면서 쏟아놓은 원초적인 맛의 전율을 눈으로 먼저 느낀다. 거친 원두에 스며든 물 분자 하나 하나가 필터를 통과해 검은 마법을 펼쳐 놓으면 침묵과 명상만이 시간을 지배한다. 미리 데워진 찻잔에 옮겨 담는 동안 주변은 더욱 정적에 쌓인다. 찻잔에 담긴 이 세계는 자연으로부터 와서 인간의 손을 거쳐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과 마음을 경유한 것일까?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다`는 바흐의 세속 칸타타(BWV211)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그렇게 내려진 커피의 처음 한모금은 너무도 강렬하다.
커피는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쓴맛과 깊은 맛이다. 커피의 고수에 이르는 길이 쓴맛을 잡는 것이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 맛을 잡고 나면 깊은 맛이야 당연히 따라올 테니 더욱 그렇다. 쓴맛을 다스리는 일, 인생에서도 쓴맛을 다스릴 줄 알아야 삶이 한결 깊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난 매일 아침 그곳에 간다. 커피를 마시고 난 후에 치워야할 번잡스러움이 명상을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찍 일어나기 힘든 아침에 행복한 핑계거리를 갖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은 리노의 문이 조금 일찍 열린다면 나의 아침도 일찍 시작될 텐데 하고 아쉬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꼭 그리되길 원치는 않는다. 주인의 섬세한 손놀림이 지난 밤 설친 잠으로 감이 떨어지는 건 더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우리 자신의 육체와 외부세계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우리를 위협한다고 말한 바 있다.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일체의 활동을 접고 고립된 시간을 보낸 지난겨울의 빈곤이 내게 고통이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으리라.
어떤 사람에게 봄은 단순한 시간과 계절의 경과로 온다. 또 어떤 이에게는 참을 수 없이 부드러운 공기의 질감으로 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꽃들의 향기로 올 것이고 그 꽃의 화려함으로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에 대한 열정, 건강을 위한 새로운 시도 그리고 타인들과의 미묘한 관계에서 새로운 계절을 느낀다.
아침 일찍 걷는 골목의 상쾌한 보폭, 그리고 '리노'의 신선한 커피, 그곳에서 만나는 그들이 비로소 내게 봄을 선물한 셈이다.
싱그러워지는 계절이다. 이 봄, 따뜻한 초록의 정령과 조우할 운명의 봄이길 나는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