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선배와 대학동기의 안내를 받아 밤기차를 타고 도착했던 도시 마부룩.
독일에선 그림형제가 공부한 곳으로 유명한 대학도시이다. 그 둘은 원래 법학을 전공했으나 아힘 폰 아르님,
브렌타노, 자비니 교수 등과의 교류를 통해 독일어에 대한 연구와 민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열한 외국생활이 시작된 곳이고 우정, 사랑이 돈이나 가족보다 소중했고 희망과 꿈이
가난과 현실을 다 이길 거라고 장담하던 내 마지막 순수의 시대를 보냈던 곳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철저히 믿었던 건방짐이 용기로 승화되었던 때라 당시
그림형제가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은 내게 중요치 않았다. 지인들이 수년 전까지만 해도 거주했던
탓에 이 도시를 떠난 이후에도 여러 번 방문을 했다. 그러나 순수하게 답사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그때는 이 도시가 이렇게 멋진 줄 몰랐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가 한창 공사중이었고, 첫 어학수업을 시작했던 곳은 폐허가 되었다는 걸 빼면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았다. 하나 둘씩 당시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돌이켜보면 이 도시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기뻐했고 상처받고 헤어지고 떠나보냈다. 좁은 기숙사
방에 매일 밤 둘러앉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한번도 성에 올라가 볼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성은 항상 거기 있을 거니까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아무도 성에 가보자고 한 이도 없었다.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은 얻으려 몸부림치면서도 내 바로 옆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구 시가지 오버슈타트(Oberstadt)로 한 발자국씩 걸어올라가며 이 돌길을 내가 지금 다시 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것은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해야 한다라고 느꼈다. 시간이라는 게 참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구나
싶다. 유난히도 아름다운 돌계단이 많은 이 구 시가지에 그림형제가 살았던 집이 있는데 이 많은 계단에
당시 그림형제는 꽤나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림형제가 자주 방문했던 마부룩 법대 교수였던 자비니
교수의 집으로 가는 돌계단은 정말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 자비니 교수는 괴테와의 편지 교환으로
유명한 독일의 여류 시인 베티나 폰 아르님의 형부였는데, 자비니 교수의 절친이었던 작가 브렌타노의
누나가 자비니 교수와, 여동생 베티나는 작가인 폰 아르님과 결혼했다. 그림형제는 당연히 형부의 집에
머물렀던 아르님과의 친분도 쌓았을 것이다. 브렌타노, 폰 아르님, 자비니가 그림형제에게 문학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들이 법학에서 독일 문학과 어학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만남과 문학적
교류가 없었다면 그림형제 동화집은 존재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베티나 폰 아르님의 어머니는 괴테와 서신을 주고 받을 정도의 친한 친구 사이였으나, 결혼 후 남편의
질투로 교류가 끊긴 뒤 그 딸인 아르님이 어머니의 바통을 이어받아 50대 중반을 넘어선 괴테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 둘 사이는 아르님이 괴테의 아내와 몹시 다툰 후 깨어져버리고, 괴테도 둘 사이를
부정했으나 이 둘의 편지교류는 그림형제의 지인에 의해 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로 괴테와 베티나 폰 아르님은 35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데 그 차이를 넘어 편지교환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와 그 딸하고도 연인 사이를 만들어간 괴테는 과연 연애의 대가인 것 같다. 조신한 아니이며 어머니
였으나 사형제도 폐지 등 개혁을 주장한 사회운동가로도 알려진 베티나 폰 아르님은 괴테를 무척이나
흠모했었다고 한다. 그녀가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나 확실한 증거자료 부족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어쨌든 괴테의 매력에 못지않은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었나본데, 내 상상이지만 청년
시절 그림형제도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을까? 그림형제 중 형인 야콥 그림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림형제가 살았던 하숙집 아래층은 현재 과일가게로 변했지만 옛 모습의 돌계단 골목길에선 지금이라도
그림형제가 나와 그 돌계단을 불평을 늘어놓으며 올라가는 것 같다. 구불구불 돌계단을 다 올라가니
드디어 아름다운 성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 성에 오르는데 거의 20년이 걸린 셈이다.
성아! 고맙다. 나를 기다려주어서...... .
<독일에 거주하는 박승희 님의 글을 옮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