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승희
그림형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근처 도시인 하나우(Hanau)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멀지않은
슈타인나우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그곳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대학도시 마부룩에서 수학 후
카셀(Kassel)에서 평생을 보냈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빨간 두건 아가k씨> 등 수많은 동화를 남긴 형제 작가이며, 막내 동생은 독일에선
유명한 당대의 판화가였다.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슈타인나우를 답사한 후 나는 동화책 한 페이지에 프린트되어 있는
느낌으로 3일을 몽롱하게 보냈다.
그 림형제가 유년기를 보냈다는 집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상당히 넓은 뜰을 가지고 있는데,
새벽기차를 타고 간 내가 너무 일찍 당도한 탓에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마당에라도 들어가보면
좋으련만 목을 쭈욱 빼고 들여다보니 입구에는 작은 개구리상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롱다리 아가씨 동상의 키스를 기다리며 멀뚱히 앉아있다.
“이제 문 열 시간이니까 빗장 열고 들어가서 봐요. 문 그냥 열어 놓고.”
내 등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허걱, 누구야. 돌아보니 건너편 3층 창문에서 독일 할머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박물관 관리인인가 보다. 관리하기 정말 좋은 위치에 사시는 듯.
이렇게 방문객들한테 빗장 열고 닫게 하고 월급 받으시나.
넓은 뜰 한 켠에 있는 사과나무를 바라보면 백설공주를 안 떠올릴 수 없다. 작은 내 손아귀에
다 들어올 정도로 동그랗고 새빨간 사과다. 어쩜 이리도 누렇거나 퍼런 곳이 없이 연극용
소품 사과처럼 인공적으로 빨간지.
사과는 대개 보통의 여자 입으로 한입 베었을 때 영화나 동화책 속처럼 깔끔하게 한 입 자국이
깊숙이 나지 않는데 이 사과는 정말 반절은 다 베어지겠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과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먹고 싶게 탐스러웠지만 혹시라도 상했거나, 아님 독이 들었음 요즈음은
하릴없이 지나가는 왕자도 없기에 맛은 보지 않기로 했다.
이 사과나무는 그림형제가 살 때부터 있었을까. 아니면 박물관 측에서 설정으로 심은 나무일까?
저쪽 멀리 담벼락에 돌덩어리 여러 개가 보인다. 길쭉한 모자를 쓴 듯한 기다란 모양의 돌덩어리다.
본능적으로 숫자를 세었고 내 예상과 맞게 일곱 개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일곱 난장이 형상을 한
돌 조각상이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울상이다. 왼쪽 담에 걸려있는 설명문 왈,
“우리들은 매우 격분해 있고 충격 속에 빠진 상태이다. 난장이에 대한 존경심 없는 태도에
항의하는 바이다. 수년간 그녀에게 경고했건만 멍청한 것 같으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과를 베어먹다니! 물론 운이 좋아 왕자랑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지만, 우린 뭐냐고요?
결혼식에 초대도 안 하고. 이게 바로 현실이라고! 무엇보다 끔찍한 사실: 이제 누가 청소하고
밥하고 바느질하고 빨래할 건데?” 배신당한 남성 공동거주민 일동.
도를레 옵렌더(Dorle Obla)라는 사람이 쓴 글귀였는데 정말 가슴에 와닿는 일곱 난장이들의
재미난 푸념이었다.
도시 전체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고 그림형제의 집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5분 거리만 가면
성채가 남아 있는데 이 안에 들어서면 라푼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설공주가 모두 창문을
열고 내다볼 것만 같다. 연극 세트장처럼 생긴 이 도시는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림형제 동화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 안 읽은 사람 없지 않나?
<독일에 거주하는 박승희 님의 글을 옮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