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연가(板橋戀歌)
김 관 준
판교신도시는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동판교는 삼평동과 백현동이, 서판교는 판교동과 운중동으로 나뉜다. 패배를 모르던 서울 ‘강남권(母도시)’의 아파트값 광풍을 다잡으려고 2003년 말부터 일명 ‘남단녹지(子도시)’에서 도시건설이 시작됐다. 판교라는 이름은 운중천 위에 널(판자)로 만든 다리가 놓여 ‘널다리’를 한자로 판교(板橋)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판교의 압권은 당연 서울 강남역과 분당 정자역을 16분대에 도달하는 신분당선이 운행되는 판교역이다. 지하철은 운전사없이 무인으로 원격조정이 되며, 양쪽 마지막 칸의 스크린전망을 통해 오방색 조명이 설치된 터널 안을 볼 수 있는 국내 일품 전동차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판교 역세권은 판교 테크노밸리와 연계하여 고용 인프라도 구축한다. 현재 안철수연구소, 삼성테크윈(주), 엔씨소프트(주) 등 글로벌 기업 및 IT업체들이 입주해 있으며 2015년까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거점으로 합성되어 간다. 도심 한복판 ‘성공신화 벤처타워’들은 볼수록 장관壯觀이다.
앞으로 현대백화점, 호텔, 복합문화시설 등이 들어설 판교역 중심상업지역 지하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보다 4배나 큰 ‘알파돔시티’ 도 들어설 예정으로 위대한 탄생이 기대된다. 이쯤 되면 또 아파트값이 궁금할테지만 우리 나이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한다.
대신에 실화 하나를 소개한다. 2000년도에 뇌출혈로 돌아간 나의 매제 애연哀然한 얘기다. 공인회계사로 도쿄에서도 600대 밖에 없는 BMW를 탔던 일본내 부동산 디벨로퍼였죠.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버블’이 시작되면서 은행 권유로 대출을 받아 사두었던 땅값이 10분의 1토막이 났다. 당시 월 20만엔 정도 연금을 탈 수도 있었는데, 있었던 사람이 없어지면 얼마 못 살더군요.
내가 사는 서판교의 산운山雲마을은 옛날 구름마을로 귀신이 나온다며 택시도 안 들어 온다고 했다. 아파트단지는 바로 뒤 청계산자락의 낮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가끔 숲길을 걷는다. U-시티 기반으로 비상벨과 CCTV가 설치 돼 있고 보행자 등燈이 있지만, 낮에도 인적이 드물어 혼자 가기는 조금 무서워서 등산용 스틱 하나는 반드시 짚고 갔다.
뒷동산에 오르면 먼저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가까이에 보이고, 맑은 공기와 한켠 밤나무를 만나게 된다. 계속 왼쪽으로 전진하면 청계산 국사봉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돌면 판교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둘레길이 열린다.
지난 여름엔 천정부지로 자란 풀잎을 헤집고, 땅바닥에 퍼져 나온 넝쿨을 뒤적이며 첫 번째 중턱에서 맨손체조로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나선 아래를 내려 다 보았다. 멀리 발화산부터 운중천까지, 그리고 (임대 문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린 신작로 고층 빌딩군群 등등 서판교 일대가 훤히 눈 안에 들어왔다.
이번 겨울에 모자, 목도리, 장갑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손안에 잡고 나름 완벽하게 눈길로 출발했다. 딱 한 시간을 맘에 두었고, 가수 이효리가 살고 있다는 타운하우스 뒷 편으로 판교도서관까지 쭉 걸었다. 월정영寺, 폭포마당, 실개울마당, 국사봉 마당바위 네 갈래 이정표를 지나, 밑 둥에 톱밥이 쌓이는 시들음병에다 비닐끈으로 묶어놓은 참나무를 보고, 두 번의 장마철을 거친 후 보강공사를 끝마친 배수로의 손길들을 생각하며 문득 정감情感마저 맴돌았다. 도중에 원단元旦 ‘계사년 해맞이 언덕’이 나오는데 ‘숲길도 걷고 풍경도 보는’ 일석이조였다.
아, 판교공원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팔방四方八方은 산이 바다다.
섬島은 밖에서 보면 갇혀있지만 안에서 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판교도서관은 1,310석 규모 큰 디지털도서관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원룸과 다양한 음식점, 카페 등이 자리 잡아 스스로를 서판교 원元마을 ‘먹자촌’이라 부르며 자연체험마당, 수영장이 있는 청소년수련관과 함께 판교공원의 초입을 이룬다.
돌아오는 길에 본 유명 고급 커피전문점이 옹기종기 운중천변邊. 아직 장사들이 시원찮아 문 닫은 상점도 뛰엄 뛰엄 있지만, 예쁘게 단장한 패밀리 레스토랑들도 많아 각양각색으로 뽐낸 단독주택들과 함께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한편 판교 토박이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원)에서는 한국문화 투어 프로그램 ‘구름마을 산책’을 마련하고 봄, 가을 두 차례 아름다운 정원으로의 초대도 한다.
2013. 1 ES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