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째 이사(移徙)
안 승 춘
무심히 계사년 새해 달력을 뒤적이다 2월 13일에 빨갛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걸 보았다. 우리 네 가족의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2월 13일은 결혼 후 17번째 이사하는 날이다. 무엇보다 아내가 그리도 꿈에 그리던 내 집 장만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30여 년 동안 ‘이사’는 마치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그림자처럼 졸졸졸 따라오던 마주치고 싶지 않은 웬수 같은 존재였는데 이번 이사는 몇 년 동안 들어서지 않는 아기를 가진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다가 올 수 가 없다. 사랑스럽지만 잔소리만큼은 곤욕스런 아내의 입에서 ‘집 투정’ 소릴 듣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단 내 자신에게 지난 수년 간 무주택자로 심심히 받아 온 스트레스와 자격지심으로 좁아진 내 두 어깨도 태평양은 아니더라도 동해만큼은 넓어질 듯 하다.
이사와 나는 삶의 궤적을 같이 해왔다. 결혼 3개월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이사를 처음 하기 시작하여 직장의 승진이나 보직의 변경에 따라 지방과 서울을 번갈아 가며 이사를 하였다. 그러다 십여년 전 대표로 재직하던 회사에서 대출 보증을 섰다가 회사가 갑자기 재무문제로 소송이 발생할 지경에 이르게 되어 자칫하면 집이 날아 갈 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재산목록 1호인 집을 간신히 급매한 이후 무주택자로 전락을 하게 되었다. 이후 매 2년마다 전세 집을 전전 하었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총 이사한 회수가 16번에 이르게 되었다.
그 동안 단지 집이 없는 사람의 서러움은 아내와 싸울 때마다 마지막 필살기로 던져지는 면박말고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다. 가끔 내 집처럼 예쁘게 꾸며놓고 잘 살고 있다가 집주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간이 콩알 만해진다. 행여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할까 봐. 이사를 한다는 건 누구에겐 새 시작을 위함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과거를 버리는 것이기도 했다. 잦은 이사 때문에 신혼 때부터 애지중지하게 간수했던 장롱은 이미 망가질 대로 다 망가지고, 이사 때마다 정리를 하는 바람에 과거로의 여행으로 인도해 주던 추억의 물품들이 순간의 편리함을 위해 버려질 때마다 안타깝지만 어찌하랴. 착한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가면 또 이사를 가나보다 하고 새 환경에서 잘 적응해 주었지만 이사하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친구들을 사귀고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에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이런 처지에서 우리의 집이 모처럼 다시 생겼으니 아내에겐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신혼 생활로 돌아간 새색시마냥 아내는 요즘 며칠 동안 상상만 해왔던 내 집 인테리어를 위해 마사 스튜어트로 빙의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지 않아 신문 꽂이에는 듣보잡 가구점들에서 가져온 카탈로그와 브로슈어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눈 뜨고 잠드는 시간까지 “여보, 그 침대 우리 방이랑 구색이 맞을 거 같애?” 등 했던 질문을 또 하질 않나, 여기 저기 아내가 가자는 가구점에 같이 쫓아 다니느라 주말이면 더욱 피곤해졌다.
바닥에 한 두개 떨어진 머리카락까지도 줍던 꼼꼼한 아내의 성격에 한두번 가구를 보고 사는 경우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세번, 네번 여러 곳에서 발품 팔고 가격과 디자인을 평가 해 본 후, 구매 결정을 했으면 그나마 좋으련만 그저 고려만 해 본다. 내가 동행을 하더라도 집 꾸미기에 둔한 나에게 따발총 쏘듯 이것 저것 물어보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럴 땐, 정말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이후 그 분야에만 올곧게 밟아온 나에게 갑자기 미술 실기시험을 보라고 하는 것처럼 백지상태인 난 어떻게 얘기 해 줄지 모르겠다. 그래서 전심을 다해 “아~ 그거 좋네, 참 좋아.” 라고 대답해 주면 무조건 다 좋다고 한다고 푸념한다.
며칠 전, 주말을 맞아 큰 딸과 우리 부부는 한샘 본점을 방문했다. 우리 세 사람은 한 메니저를 통해 안방을 시작으로 어떻게 집을 꾸밀지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구를 비교해 보며 침대, 붙박이장, 서랍장 등 하나씩 하나씩 같이 결정을 내리며 협상에 성공했다. 그러던 중, 같이 살아오면서 아내의 미적 감각은 전적으로 믿어 왔는데 이제껏 상상만 해 오던 인테리어를 직접 고르지는 못 하고 주춤하는 아내를 보니 참으로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내가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못 내리는 순간, 큰 딸과 나는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아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게끔 도와줬다. 돌아오는 길에서 아내는 그거 하나 도와줬다고 아내표 애교를 떨며 침이 마르도록 내 칭찬을 해주었다. 그날따라 볼쏙 튀어나온 아내의 입술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새해를 시작함과 동시에 하루 하루 새로운 둥지로 이사 갈 준비를 하자니 단연 이번 이사는 과거를 버리는 이사가 아니라 드디어 새 시작을 위한 이사일 것이란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사한 바로 다음 날이 발렌타인 데이로 우리 부부는 새 신랑 새 색시처럼 제 2의 신혼을 즐길 것이라 기대 한다. 앞으로 우리 두 딸이 이 새로운 집으로 데리고 올 두 명의 건장하고 듬직한 사위들도 꿈꾸어 본다. 미국에선 17이란 숫자는 행운의 숫자이다. 하늘은 계획적으로 이번 17번째 이사가 마지막 이사가 되도록 내 운명을 그려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며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쳐진 2월 13일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