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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는 거리    
글쓴이 : 이영자    13-02-07 21:50    조회 : 5,611
                                            흔들리는 거리
                                                                                                                                          이영자
 10월 하순 어느 날, 가로등 불빛이 거리에 내려앉는 어스름 저녁, 가을은 무르익어 가로수는 각자의 단풍 옷을 입고, 성질 급한 놈은 벌써 떨켜 층을 만들어 모체인 나무와 이별을 하며 거리에 수북이 쌓여 바람에 나뒹굴며 쓰레기 더미처럼 인간의 발아래 짓밟히고 있다.
 
 그날, 6시 30분에 약속이 있었는데 꾸물거리다가 시간이 임박해서야 급하게 야탑 광장을 향해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걸어갔다. 주차한 곳에서 광장 쪽을 향해 가자면 골목을 거쳐 가야 하는데 내게 익숙한 길이라 가까운 골목을 선택했다. 중앙통로에는 수령이 얼마 안 된 느티나무 가로수가 있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는 야외용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으며 누구나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기에 앉아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 봐야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도 남자들이 테이블에 4~5명씩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회색빛 골목 안 기운이 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얼굴과 복장은 초췌해 보였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무표정하고 심각해 보였다.
 나는 그들 앞을 지나 광장 쪽을 향해가다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눈길이 쏠렸다.
 ‘피다!’ 갑자기 온몸이 섬뜩해지며 심장박동 수가 빨라짐을 느꼈다. 땅바닥에는 여기저기 피가 떨어져 있었고 초저녁 가로등 불빛에 선홍색을 띤 핏빛은 불빛이 파고들어 더욱 붉게 보였다. 나의 시선은 뚝 뚝 땅에 도장을 찍은 핏방울만을 주시하며 발걸음을 떼어 놓고 있었다. 붉은 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몸은 긴장되었고 호흡이 나도 모르게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몇 발자국을 전진하였고 내 시선은 땅바닥과 주변 환경을 빠르게 움직이며 하나하나 사진을 찍는 한편 머릿속 영상필름도 돌아가고 있었다. 발 바로 앞에 내 머리통만큼 쏟아져 있는 피가 짙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다. 선홍색의 피에 가로등 불빛이 내려와 반짝이게 코팅을 하고 있었다. ‘저것이 피가 아니라면’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 착각을 할 정도로 불빛에 비친 피는 내 눈에 유리 공예처럼 보였다. 나의 시선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P 나이트클럽과 경륜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서 소주를 마시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 모두 옆에서 일어난 사건은 관심도 없었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을 마시며 자기들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내게는 익숙한 이 길이 오늘은 낯선 도시처럼 느껴지고 어리둥절해하는 나만 혼자 이방인이 되어 있는 듯했다. 그들의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쓰러져 있었고 땅바닥에는 깨어진 병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앞을 보니 경찰관 세 명이 한 남자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서 있었다. 앉아 있는 남자의 손바닥에는 손 전화만한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고 한 경찰관이 그 남자의 손에 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사고를 낸 것인지 당한 것인지는 모르나 골목 안 피의 주인임이 틀림없었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술기운 때문인지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은 보이질 않았다. 과연 ‘저 남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피가 철철 나오고 유리조각이 손에 박힌 고통은 고통도 아닌듯한 표정으로 땅바닥에 앉아 유리조각이 박힌 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푸른 테이블을 운데 두고 앉은 사람들 그들은 경륜장을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 삶의 한 시점에서 만난 사람들! 고통을 나누지도 나눌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 그들은 본인의 삶이 더 급급하여 남의 아픔을 아파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들이였지만 한 명도 다친 남자를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모른 척 술만 마시고 있었다.
 나 또한 이런 끔찍한 사고현장을 뒤로 한 채 친구와의 약속 시각 때문에 머릿속에 잔상만을 입력하고는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골목을 빠져나갔다. 모른 척하고 그곳을 지나쳐온 내 마음의 양심은 이미 도망가고 없는 듯하였다. 짧은 거리였지만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그런 느낌 이였다.
 
 야탑 광장에서 친구를 만나 방금 지나온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조금 전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다친 남자와 경찰관이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땅바닥에 피만이 찐득거리는 조청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여전히 푸른 테이블에 둘러앉은 마네킹 같은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산 듯한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친구와 지나가며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겹겹이 쌓인 주름과 검은 피부색에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초저녁 어둠은 깊어 가고 주름의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가로등과 주변의 식당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그들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들은 각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들이었다.
 
 친구와 그들 앞에 있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이 거리를 다니며 음식점에도 들어갔으나 그날은 왠지 마음이 씁쓸하고 우울한 그런 기분으로 들어갔다. 횟집 안은 방금 지나온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푸짐한 안주들은 테이블이 모자랄 정도로 꽉 채워졌다. 이렇듯 횟집 안 사람들은 안주를 놓을 자리가 없어 접시를 치워가며 먹어야 할 정도였고 피부 또한 하얗고 고왔다. 주름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밝은 표정과 생기 있고 활기차 보였으며 그들의 언쟁 또한 토론처럼 보였다. 식당 안 사람들은 각자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횟집 안은 시끌벅적였다.
그러나 나는 앞에 앉은 친구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내 머릿속은 골목 안 거리로 달려 나갔고 어느새 그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두 시간여 친구와 함께했던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어둠의 색이 짙어 졌으며 가로등 불빛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푸른색 야외용 둥근 테이블 위에는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빈 소주병만 버려진 채로 있었다.
휘청거리는 바람은 느티나무잎을 날리고 있었고 어느 골목에서 날아온 것인지 은행잎과 중국 단풍잎도 뒤섞여 이 골목을 배회하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신은순   13-02-08 20:20
    
어두운 주제를 이렇게 맛깔나고 시를 읽는듯한 서정이 담기게 쓸 수도 있군요.
느낌이 살아있고 살아 있다는 감사가 생을 마감하는 은행잎과 단풍잎으로 부터
다가오네요.  멋진글 입니다.  감사!!!! 자주 써 주세요^^
     
이영자   13-02-09 01:36
    
선생님의 항상 부드러운 미소는 상대를 무쟈게 편하게 해주는 매력을 가지셨어요.  따뜻하고 편안한 그런 ~  사랑합니다. ~^^  부족한 글이라 부끄럽습니다만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
문영일   13-02-08 21:02
    
취객의 손 바닥에 박힌 유리조각 때문에 제 손이 베어지는 섬뜩함을 느겼습니다.
님의 문장력 때문이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라고 자문 해 보신것.
누구에게나 어려운 명제 하나를 가지고 고민 해 보셨던
그 거리.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겠지요.
건필 하세요.
     
이영자   13-02-09 01:51
    
선생님의 직접 인사드린 적은 없으나 송년회 행사 때와 데보라샘 출판기념일에 멀리서는 뵈었습니다.  이렇게 사이버공간에서나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
문학은 좋아 했지만 글쓰기는 두려워서 꺼려하던 부분 이였는데 한국산문에 들어와서 글쓰기를 하네요. ㅋ. 
글을 썼던 경험이 많지 않아 많이 버벅거리네요. ㅋ. 앞으로 저도 선생님 처럼 잘 쓰리라 믿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박재연   13-02-09 00:50
    
도시한복판에서  그런일도  일어나는군요  하긴  뉴스에서  매일  극단적인  소식들을  듣다보니  저부터도  무감각해지는것 같아요    관심과  애정의 시선  저도  배워야겠어요    계속  좋은글  기대할께요  많이  보여주세요~~
     
이영자   13-02-09 02:09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 보면 이런 저런 사소한 일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날의 느낌이 생소하고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글을 써보았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게 현실이지요.. 그쵸?  재연씨의  이런 저런 도전의 열정 또한 정말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우중   13-02-09 20:10
    
현대  수필이 나아갈 미래 한장르를 여기서 보는것 같습니다.
소외되고 힘든 변방의 삶을 수필로써 그려본 작품이군요
영화의 한장면같이 계속 잔상이 남아있는 훌륭한 글입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이영자   13-02-11 14:27
    
이우중 선생님 감사합니다.. ^^~
이렇게 두번째 글 하나 더 썼습니다.
앞으로  샘 처럼 잘 쓰리라 믿고 잘 쓸 그날 까지...ㅎ
김데보라   13-02-09 21:27
    
멋진 글로 자기를 알리신 영자님 반갑습니다. 현대적인 수필의 마래를 보여 주신 글
잘 일고 갑니다. 문재가 날로 승하여 한국산문의 귀한 인재가 되시기를...
     
이영자   13-02-11 14:32
    
데보라 샘~ ^^~
출판 기념회도 하시고 대단 하십니다.
알프스의 눈동자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ㅠ ㅠ .
갈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경희   13-02-11 16:51
    
참 예쁜 마음을 읽었어요.
 흔들리는 거리의 주인들, 한 가정의 아버지들이고 그들의 삶은 거칠고 질박합니다.
고통조차 인내하는 모습과 무관심한 모습을
샘은 안타까워하고 계십니다.
어떤 쪽에도 개입하지않고 서늘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운치있네요
샘, 계속 좋은 글 많이 보여주세요. 화이팅!
     
이영자   13-02-11 20:57
    
감사해요.. 경희 샘~^^
경희 샘의 글은 서정적이면서 늘 잔잔하지요.
샘이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 감동에 또 감동입니다.  ~~^^~
박인숙   13-02-11 17:07
    
과자 한 봉지에 소주. 그들의 힘든 삶의 모습이지요.
그곳에 상반된 횟 집의 풍경들.
색은 어두운데 바라보는 시선은 애정이 가득.
좋은글 읽고 갑니다.  새내기라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영자   13-02-11 21:03
    
네~힘든 사람들....
박인숙 선생님 저도 글쓴 경험은 없어서리~~ㅋ
이번글이 두번째 낸 글이예요..
많이 부족합니다만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꾸벅 ~
공해진   13-02-12 13:24
    
자연에 대한 뛰어난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력이 좋아 보입니다.
승승장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영자   13-02-12 19:31
    
저는 오히려 바다 박사님이신 공선생님이 위대해 보이십니다. 
개인적으로 자연이 주는 정서을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ㅋ
감사합니다. ~~^^~
김영환   13-02-16 10:15
    
생의 한 순간에 포착된 별난 사건을 파노라마처럼
찍은 영상을 보는 듯 했습니다.
글이 생생합니다.
분당 글반에 함께 시간을 가질수 있어 반갑습니다.
     
이영자   13-02-21 20:04
    
감사 합니다. ~~^^~
분당반에 와서 저도 선생님과 글을 쓰게 되서 행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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