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류문수의 자기소개서(분당반)    
글쓴이 : 김데보라    13-03-30 17:31    조회 : 6,522
동트기, 퉁점 그리고 동막
                                                     류 문 수
 
내 삶의 둥지요, 꿈의 안식처!
오포 문형산 중산간 해발 250미터의 퉁점골. 그리고 이곳을 밑돌아 받쳐주는 아랫마을 동막골. 문형산 품안의 퉁점은 동막의 지붕이요, 동 막은 퉁점의 기둥이다.
 
퉁점과 동막은 마주보고 오가며, 오르락내리락 형제처럼 정겹다. 아랫마을 동막이 있기에 나의 안식처 퉁점의 순수는 아직도 감동이 머문다. 온갖 세상 잡사를 소화하고 막아주는 동막은 퉁점의 관문이다. 문형산 밑 외딴 퉁점은 한적한 은둔지이나, 동막의 나날은 분주 다망한 생활 전선이다. 밀려오는 세태와 타협하고 도심(都心)을 지향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일몰이 무시되는 동막. 동막이 있기에 퉁점의 고요는 살아있고, 산촌 그대로의 신선한 정취도 인정도 한가로이 평화롭다.
 
퉁점이 전통적 보수적 정감이 감도는 산촌이라면, 동막은 현실적 진취적 기운이 살아 움직이는 신흥도시이다. 퉁점은 점잖은 형이요, 동막은 활달한 아우에 비견된다. 문형산을 동쪽으로 형제의 뿌리는 같으나 의식은 판이하다. 자연, 삶의 모습과 정서도 다르다. 두 곳에서 바라보는 새벽 풍광과 하루의 시작인 동트기 또한 서로 다르다.
 
퉁점의 동트기는 한 폭의 명화(名畵)요, 동막은 기상나팔이다. 그러나 이 서로 다름이 서로를 지향하고 존중하며 상생(相生)의 조화를 이뤄낸다. 요즈막 몹시 안타까운 것은 빠른 시대의 흐름을 타고 동막의 거센 바람이 퉁점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곳 퉁점골을 나는 좋아한다. 아니 10여년 살다 보니 이젠 '사랑한다' 말하고 싶다. 이곳의 수수한 자연과 소박한 인정에 푹 빠져버린 듯 행복하다. 물론 더 아름답고 멋진 삶터가 많겠으나 내게는 내 것이 있다. 특히 신비스런 동트기와 고아(高雅)한 아침을 사랑한다. 삼림 사이로 펼쳐지는 아침 햇살은 배추씨만한 추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딘들 아침 정경이 언짢겠는가? 그렇지만 사람마다 독특한 정서가 애착의 정도를 가늠하기 마련이다. 퍼뜩 생각한다. 태고의 비경을 퉁점골 새벽 동트기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장쾌하고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부지런을 떨어 산야보다 훨씬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새벽잠이 부실한 내게는 제격이다. 언제나 뒤척이며 새벽 어둠을 가르는 이 시간이 지리하다. 온갖 상념으로 이른 봄 3월의 밤이 길게 느껴짐은 나이 탓이리라. 여명(黎明)이 확연히 두리번거리면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다. 거뭇한 숲 속에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가 기지개를 한껏 켜고 기상나팔을 불어댄다. 피아니시모로 시작된 동트기는 크레셴도로 어둠을 서서히 벗겨 낸다.
 
마침내 힘차고 빛나는 장대한 일출!
마법사 태양은 환상교향악에 맞춰 태고의 신비를 연출한다. 창백하게 별들이 사라지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먼동이 코발트색 감격을 안고 솟아오른다.
 
산마루로부터 피어 내리는 오색영롱한 빛의 향연. 어둠의 잔해가 서서히 걷히면서 솟아오르는 은빛 줄기의 금빛 너울거림. 크고 작은 등성이로부터 골짝이 숲 속을 헤치며 실개천 따라 마을 까지... 온 산야를 소생 시킨다. 잠자는 음지를 깨우며 번져나가는 햇살이 눈부시다. 종횡무진 춤추는 빛의 오케스트라! 백남준 아트의 연출장인가, 곡신(谷神)들의 놀이터인가? 산촌의 아침 향연은 해님 손으로 채색되어 절정을 이룬다.
 
퉁점골 동트기 축제!
혼자만의 축제이나 감동은 온 누리를 감싸 안는다. 누구나 함께하면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퉁점의 새벽은 매일 매일이 새로운 작품으로 밝아 온다. 오늘의 동트기는 내일 볼 수 없고 내일은 내일 만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진다. 여기에 계절의 별미가 조화(造化)를 이루니 작은 산촌만의 축제로는 너무나 아깝다.
 
 천지신명이 철따라 재창조할 때 특별히 퉁점의 동트기를 신명나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더욱이 백설이 마을과 산야를 뒤덮을 땐 나의 실존을 의심한다. 별유천지! 이곳에 어떻게 내가... '무아경(無我境)'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철따라 독특한 향기 가득한 산촌은 최고의 걸작을 선사한다.
 
드디어 동막까지 환히 밝았다. 짙은 안개 속 동막은 퉁점을 닮으려나 속살을 감추고 올망졸망 지붕라인이 파도를 이룬다. 아랫마을 동막골이 안개로 가득할 때 퉁점골은 항상 해맑은 아침이다. 고루한 일상이 거미줄처럼 치열한 차안(此岸)의 동막. 무욕의 텅빈 가슴으로 맞는 피안(彼岸)의 세계 퉁점. 속세와 천상이 합일하려나... 솜털 안개가 몰려오고 있다. 아랫마을 동막 입구에 서리던 안개는 매년 조금씩 동진하여 퉁점골 입구까지 점령하고 말았다.
 
 병든 파도와 같이 조금씩 몰려오는 안개를 보면서 해맑은 퉁점의 아침도 그 수명을 다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떻든 지금의 퉁점과 동막의 아름다운 이 아침을 사랑한다. 자연이 주는 귀한 선물. 환상의 새벽과 찬란한 아침은 이 곳의 귀품(貴品)이다.
 
자연이 주는 힘!
생기 가득한 하루의 시작이 터질 듯 힘차다. 방금 끝낸 동트기 여운을 음미하며 동막을 바라보고 오늘 할 일을 추스른다.
                                                                    2013. 3.

김데보라   13-03-30 17:34
    
쌤 너무 잘 쓰셔서 제가 느낌표가지고 어쩌구 저쩌구 했습니다.
한국산문에 잘 오셨습니다. 계속 스피드하게 좋은 글 마구마구 생산하실 것 같은 느낌!!!!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정년퇴임하셨으니, 이제 문학소년의 접었던 꿈을 마음껏 펼치시고 날아보시기를 빕니다. 화이팅!!!
     
류문수   13-04-14 07:24
    
과찬과 격력 고맙습니다. 평소 신경 써 주심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조정숙   13-03-31 17:07
    
또 한분의 준비된 주자가 분당반에 오셨네요
문형산자락 퉁점골!
그 옆동네서 맨날 놀고있는 저에게는 더욱
친근한 지명입니다.
도심에세 멀지않은곳에서 온전히
전원을 느낄수있는곳,
그곳의 동트기가 부럽습니다.
건필하세요
     
류문수   13-04-14 07:29
    
조선생 고마워요 이웃에 사신다니 더욱 친근감이 들구요. 평소 거침없이 살펴주세요.
박재연   13-04-01 10:08
    
극찬받으신 첫글 축하드립니다.  함께 나아가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멋진 글 많이 많이 보여주세요 기대합니다
     
류문수   13-04-14 07:38
    
박선생 고맙습니다. 평소 친절하게 보살펴 주셔서 더욱 감사드리구요. 
감이  왔다 갔다하는데  많이 도와주세요.
공해진   13-04-01 16:57
    
류문수 선생님!
고백합니다.
건성으로 일독한 탓에
솔직히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합평 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관심이야말로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퉁점골!
사랑받으시기 바랍니다.
     
류문수   13-04-14 07:43
    
공선생님 감사합니다. 다시 읽게 해 드려서 미안하구요.
서툰 솜씨 많이 깨우쳐 주세요. 작은 문제라도...
이경희   13-04-02 00:39
    
동막과 퉁점이란 지명 자체가 리듬있고 독특한 향토성이 묻어오네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서 그 곳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동틀 무렵에요.
동막과 퉁점의 다름을 생각하며 감상하고 싶습니다.
"삼림 사이로 펼쳐지는 아침 햇살은 배추씨만한 추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딘들 아침 정경이 언짢겠는가?"
너무나 좋은 표현들 많았지만
위의 표현에서 왜 하필 '배추씨'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언짢겠는가'를 선택하셔서 누구에게나 확실한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학자의 품격이 느껴지는 글, 여러번 읽을 수록 더욱 멋지네요.
류문수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류문수   13-04-14 08:00
    
이선생님의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자세한 고견도 고맙구요  제가 퉁점골에서 농사를 짓거든요
여러 씨앗중에 배추씨가 제일 작더라구요 별 의미없습니다. 계속 지적해 주시면 좀 더 나은 글 쓰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박인숙   13-04-03 00:01
    
환상의 새벽과 찬란한 아침은 우리 곁에 늘 찾아오지만
 선생님의 글안에서 아름다운 아침을 맞습니다.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계속 기대됩니다.
류문수   13-04-14 08:05
    
박선생님 말씀 고맙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이 하루를 좌우하는것 같습니다.
좋은 글 쓰도록  믾이 도와주세요.
 
   

김데보라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4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4608
4 이젠 웃어라 '톤즈'(분당반, 류문수) (10) 김데보라 05-18 6336
3 문형산이 부른다(분당반, 류문수) (3) 김데보라 05-18 6194
2 한라산은 아름다운가(류문수) (14) 김데보라 04-12 5439
1 류문수의 자기소개서(분당반) (12) 김데보라 03-30 6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