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실 엄마
金 花 順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누에 키우는 것을 보며 자랐다. 춘추잠,(春秋蠶). 일 년에 두 번씩 엄마는 뽕잎이 돋아날 때면 읍내 조합에서 배추 씨앗처럼 생긴 애벌레 알을 가져와 채반에 담아 가벼운 수건을 덮어 선반위에 올려놓고 애지중지 정성을 드리며 기다리셨다.
며칠 후면 알을 깨고 누에개미(蟻蠶-1령)라는 작은 생명이 태어나 꼬물꼬물 기어 다닌다. 엄마는 신기한 듯 바라보고 흐뭇해하시며 애지중지 보살피셨다, 누에 밥은 뽕잎이 부드러운 잎부터 따서 잘게 채를 썰기 시작하여 하루에 서 너 차례씩이나 주어야 할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이 누에개미가 자라면서 허물벗기를 거듭하여 2령부터 5령까지 성장해 간다.
누에는 성장하며 이름도 다양하여 어린 나이로서는 그 걸 일일이 외우기도 어려웠고. 구별을 짓지도 못했지만 엄마는 그 이름들을 줄줄이 불러대며 정성을 다해 키우셨다 .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름으로 털을 벗지 못한 새끼누에는 의자( 蟻子). 세 번째 잠을 자는 누에는 삼유(三幼),스무이레된 것은 잠노(蠶老) 늙은것을 홍잠(紅簪) 번데기는 용(踊) 성채는 아(蛾). 고치는 견(繭) 누에똥을 잠사(蠶砂)타고 부르는 것 등이 있다. 아리따운 여인의 눈썹을 아이(峨眉) 라고 하는데 그 건 누에에서 따온 것이다 .
네 번의 허물을 벗으면 5령. 즉 홍잠(紅蠶)이 되는데 이때가 되면 그 크기가 누에개미의 서른 배 정도, 무게는 만 배가 되는데 가장 왕성하게 뽕잎을 먹어치운다. 이 5령이 3일째부터 실샘을 만들기 시작하여 일주일쯤 지나면 뽕잎 먹기를 그치고 고개를 흔들면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실을 풀 자리를 찾는다.
이때가 되면 부모님은 누에고치를 만들 섶을 만들기에 바쁘셨다. 새끼줄로 볏짚을 질끈 묶어 작두로 짚을 30cm 길이의 잘라 잠실 안에 마련해주고 그 위에 누에를 살포시 놓아준다. 그러면 누에는 고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비단실을 풀수록 누에의 몸은 줄어들고 누렇게 변하며 고치를 짓기 전에 붉은 똥과 노란 오줌을 싼다. 처음 고치를 만들기 시작한날은 고치의 바깥 형태를 만들고. 이틀째에는 안쪽으로 고치가 두꺼워져 누에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누에는 하루가 다르게 비단실을 뽑아서 고치를 단단하게 만들어 나간다.
누에는 며칠 동안 소낙비 내리는 소리처럼 주룩 주룩 뽀스락 뽀스락 대며 열심히 자기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한다. 누에 한 마리 뽑아내는 실은 길이가 무려 1200m에서 1500m나 된다 고 하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누에가 고치를 짓기 시작하는 이때가 되면 온가족은 총동원되어 비상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때로는 부모님께서 잠실 안에서 주무실 때도 있었는데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그 소낙비 내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았다.
고치를 짓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면 누에는 자기가 만든 뽀얀 옷, 고치 속으로 몸을 숨긴다. 간혹 고치 하나에 두 마리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은 불량제품으로 버려진다. 두 마리가 뒤엉켜서 제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완성된 고치를 15일간 그냥 두면 고치 속에서 나방이 되어 한쪽 부분을 뚫고 나와 암 나방은 알을 약 500개~600개 낳고 죽는다. 언젠가 중국여행 갔을 때 가이드 강권에 밀려 비단 공장에 갔더니 그곳에서도 불량제품의 고치로 이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완성된 고치 중에서 일등급의 뽀얀 고치는 골라 읍내 잠사조합에 넘기고 그 밖의 것은 물래 로 실을 풀기 시작한다.
실을 다 풀고 나면 속에서 번데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용(踊)이라 불렀고. 이 번데기를 푹 삶아서 우리는 간식으로 즐겨 먹었다. 훗날 서울 구경 일행을 뒤 쫒아 다니며 “뻔히요 뻐” 하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어릴 적 하도 질렸기 때문에 쳐다보기도 싫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엄마는 물레로 뽑은 명주실을 베틀에 올려놓고 명주 옷감을 짜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베야 비야 어서 짜서/ 시어머니께 인정받고/
한폭두폭 많이 짜서 우리 자식 살찌우자/
이 베 짜서 돈 벌어서 억만장자 부럽지 않게/
어서 빨리 자식 키워 서울구경 하러 가자//
엄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흘이면 뚝딱 뚝딱 명주 한 필씩을 짜내셨다, 동네 아낙네들은 우리 집을 명주 공장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자그마한 몸으로 베틀에 앉으면 사람은 안보이고 베틀만 보인다며 엄마 손 놀림이 빠르다고 칭찬이 자자했었다.
명주를 곱게 접어 손질하여 5일마다 읍내 장에 팔러 다니셨고, 쑥을 삶아 그 물로 옥색 명주 물을 들여 장롱 속에 오랫동안 보관해놓으셨다.
당신의 회갑 날이 지나자 마지막 가실 때 입을 수의를 만들어놓으셨다. 그 후로 이십여 년 동안 매년 봄이 되면 옥색 수의를 꺼내 햇볕에 널어놓으시며 입버릇처럼 이다음에 새가 되어 이 옷을 입고 훨훨 원 없이 날아다닐 거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키워 내 손으로 명주 짜서 내가 입고 갈 옷이라고 애지중지 하시던 엄마는 칠십 팔세에 마지막 명주옷을 입고, 모든 근심 걱정 다 버리고 편안하고 예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며 먼 곳으로 떠나셨다.
엄마를 보내드리던 날 저녁, 모두들 마당 평상마루에 모여앉아 있는데, 웬 옥색 나비 한 마리가 오빠 등 위에 앉았다.
나비는 잠시 후 한 바퀴 훨훨 날아 엄마의 빈소에 들어가 형광등 전깃줄에 앉아서 엄마의 빈소만 바라보며 삼우제 날까지 꼼짝 않고 붙어있었다 .
엄마는 몸은 저 먼 곳에 갔지만 영혼은 정들었던 집과 뿌려놓은 자식들을 두고 쉽사리 떠나질 못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식구들은 엄마가 옥색 나비로 환생 했다며 사진을 찍으며 반가워했었다.
다음날 동네 분들도 신기하다며 놀라는 표정들을 지으며 베 짜는 것을 좋아 하더니 명주옷 입고 왔다고 나비와 대화를 하듯 말을 건넸다.
삼우제 드리던 날,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산소를 갈 수가 없어서 빈소에서 삼우제를 지내고 먼 발취에서만 엄마산소를 바라보며 인사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빈 소방 전깃줄에 앉은 나비는 날아갈 생각을 않았다.
나는 혼자말로 ‘나비야! 이제 날아가려무나. 모두 이곳을 떠나야 한단다. 어서 훨훨 날아다니면서 좋은 구경 많이 하고 건강하게 날아다니려무나. 라며 전깃줄을 흔들었더니, 나비는 훨훨 날아 엄마의 빈소를 몇 바퀴 돌더니 힘차게 날아가 처마 끝 전선에 앉았다. 식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엄마! 좋은 곳으로 잘 가서 사세요. 애처로이 나비를 바라보며 제각기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고하며 돌아섰다. 201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