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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산이 부른다(분당반, 류문수)    
글쓴이 : 김데보라    13-05-18 11:25    조회 : 6,194
퉁점골로 이사 오면서 아침 식사만은 온 가족이 함께 하기로 했다. 매우 어려우리라 생각되었지만 이 약속은 별 성화 없이 몇 달째 그런대로 잘 이행 되고 있다.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식사 시간만은 지켜주었다. 이사 전
분당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같이 식사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아침잠이 많은 지희 막내딸도 식사 시간만은 어김없이 지켜냈다. 잠꾸러기가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빠. 저것 보셔요, 바로 저 산수화 때문이에요."
막내는 옅은 구름이 감도는 울창한 앞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항상 바라보고 사는
형산 이건만 아침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하는 것 보다
도 오늘은 문형산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산의 모습이
더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리 높지 않은 산(497m)이지만 기류의 변화가 매우 심했다.
특히 기상 변화가 심한 여름철이 되면 산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자태를 보여준다.
겨울 기운이 채 가시기 전, 2000년 2월 말 퉁점골로 이사를 했다. 평소 열망하던 대로 산골 찾아 전원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사 후 아이들에게 불편하다는 투정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딸아이의 예기치 못한 말을 듣고 나니, 안도감과 더불어 흐뭇함을 맛보게 했다. '이 곳으로 이사 오기를 잘 하였구나.' 아이들도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여간 기쁘지 않았다.
집터는 문형산 서쪽 산줄기 중산간에 자리 잡았다. 높직하고 양지 바른 곳이다.
택 전면에 식당을 배치하고 큰 창으로 에워싸 주변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했
다. 식사하면서 제일 먼저 화제에 오른 것은 건너편 문형산 풍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늘 아침 아내는 "엊그제 날씨가 쌀쌀하더니 오늘 아침 단풍은 더 짙어 보이 네요" 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참 아름다울 때가 됐지" 이사와 첫 번째 맞는 가을 산을 바라보며 감탄 겸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답했다.
나는 집 앞 동남쪽으로 아담하면서도 믿음직스럽게 우뚝 서있는 문형산을 좋아하고 아낀다. 그리고 사랑한다. 만학천봉(萬壑千峰)은 아니지만 단아한 산세와 아기자기한 산기슭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언제고 바라보면 한없는 평화가 감돌아 일상의 자질구레한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문형산(文衡山)은 광주산맥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면서 광주시를 서남쪽으로 껴안고 있다. 광주산맥은 우리나라 중앙부인 태백산맥의 철령(鐵嶺)부근에서 분기하여 서울 부
근까지 이르는 산맥이다.
산맥 북동부에는 명지산(1157m), 국망봉(1176m), 광석산(1046m), 양평의 용문
(1157m) 등 높은 산이 솟아 웅장하게 그 머리를 이루고 있다. 태백 산하의 영기
(靈氣)가 함빡 서린 곳. 이곳에 모인 영기는 광주산맥을 타고 뻗어 내려와 서울 주변의 활기를 더해 주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서울 부근의 북한산(836m), 도봉산 (710m), 인왕산(338m), 관악산(629m), 청계산(583m) 등이 있어 서울시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부인 서울특별시야 말로 산골 가운데 산골인 셈이다.
그리고 서울 동남쪽으로 검단산(534m), 조선조 굴욕의 한이 맺힌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475m), 성남시 남쪽의 맹산(437m)이 있다. 이 산들과 연결되는 광주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문형산(497m)이 우뚝 서있고 서쪽 끝 부분에 불곡산(312m)이 자리
하고 있다. 특히 문형산은 오포읍민은 물론이고 광주시와 성남시의 분당 주민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특히 최근에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에게 애호되는 명산이 되었다.
내가 문형산을 알게 된 것은 서울에서 1993년 분당으로 이사하여 1년쯤 뒤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주변 지리도 익힐 겸 주말을 이용해 이곳저곳으로 청정식수를 찾아다니다가 퉁점골을 알아내게 되었다. 이 때 퉁점골에서 바라본 5월 초순의 문형산은 생명력이 활활 넘쳐 약동하는 별유풍경(別有風景), 한폭의 화사한
풍경화였다. 넋을 잃은 듯 문형산 정상을 바라보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한번 올라가 봅시다."
전혀 예상치 않은 말이 아내에게서 나온 것이다. 아내는 20여 년 전부터 심한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문형산 인력권(引力圈)에서 헤어나지 못한 우리 부부. 장시간 보행이 불편했으나 이리 저리 산길을 찾아가며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냘픈 연두색 온갖 풀들과 작은 야생화 그리고 나무 잎 새순의 향기가 코끝을 상큼하게 자극해 왔다. 갈참나무, 자작나무, 칭칭나무, 단풍나무 등 숲 사이로 이름 크고 작은 생명의 잔치가 소박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도 앙상하고 스산했던 산등성이와, 영영 엄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골짜기에 솟구치는 생명의 힘! 연초록 새싹이 줄기를 힘겹게 세우고 꽃대를 삐죽이 솟아내는 신비 앞에 그저 경이의 탄식이 있을 뿐이다. 1시간 만에 정상에 다다랐다. 해냈다는 정복감과 성취감으로 맑고도 조촐한 행복을 서로 나누었다. 얼굴과 목 언저리에 마주치는 향긋한 바람이 폐부까지 쾌감을 만끽시키며 살랑댔다.
정상에는 7,8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표석(標石)이 보였다. 표석에는 광주 문화원이
문형산 소갯 글을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었다.
"고려조 어느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이 내려와 이곳에 머무르면서 마을
주위의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산을 문형산(文衡山)이라 하였다. 문형(文衡)이란
뜻은 대제학의 별칭이다."
참으로 정상에서 내려다 주변 경관은 산과 내, 들과 촌락이 한데 어우러져 어디
를 보아도 거침이 없었다. 마치 고공 비행기에서 무심코 내려다 본 아득한 피안의 세계, 무아경(無我境)에서 잡힐듯하다가 사라지는 환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몸을 한 바퀴 돌려 북동쪽을 향하면서 눈에 가시가 걸렸다. 짜증스럽게 눈을 자극하는 아파트 군(群). 저곳에 왜 엄청난 고층 아파트가 자리 잡아야 했는지... 청아한 물가에서 티끌을 본 듯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이곳을 즐겨 찾았던 고려조 대제학이 오늘의 이 모습을 보고도 이 산을 문형산이라 칭했을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문형산에 매료된 우리 부부는 계절 불문하고 이 곳 퉁점골을 찾았다. 어떤 마력에 취해있는 것은 아닌지. 이곳은 언제나 우리의 오감(五感)을 새롭게 자극
하여 흠뻑 빠져 버리게 했다. 이곳에서 말없이 오가며 일하는 사람들도 그저 정겹기
만하다. 그들과 짧은 대화에서도 십년지기를 만난 양 꾸밈없이 통하여 편안했다. 자연과 더불어 함께하는 퉁점골 가족들. 문형산과 함께 살아가는 소박한 이들에겐 산은 친구요, 좋은 이웃이다.
산 정상을 소머리로 하여 비스듬히 남쪽을 바라보고 누어있는 듯한 남향 와우형(臥牛形)의 지세는 평화와 태평, 그리고 풍요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 산을 안방에서 건넌방 가듯, 자연스럽게 만나며 모든 삶의 애환을 산속에 묻어 풀어버리고 살아간다.
재작년에 칠순을 맞은 김교제씨는 문형산을 자기 생명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문형산이 스러져가는 자기 생명을 일으켜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씨는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내고 서울에서 30여년 간 건축업에 종사해 왔다. 그러는 동안 병을 얻어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병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마지막으로 이곳 고향을 찾아 문형산에 자기 건강을 맡긴 것이다.
매일같이 문형산에 올라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옮겨 다니며 병에 좋다는 각종 약초와 먹거리를 생식하고 산에서 거의 생활했다. 골짜기마다 샘물을 파놓고 이를
마셨다. 김씨는 두세 달 지나면서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 열심히
산행을 했다. 1년여 접어들면서 건강은 기적같이 회복되어 정상을 찾았다. 건강을 되찾은 그는 생계를 위해 다시 서울 일터로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오염된 서울 환경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1년도 못되어 건강이 다시 악화되고 말았다. 몸은 활력을 잃고 당뇨병도 깊어만 갔다. 김씨는 또 이곳 문형산을 찾았다. 10여 개월 산사람으로 다시 생활하더니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 되었다. 그는 이제 문형산에서 여생을 마칠 것을 결심하고 문형산지기가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김씨를 보고 문형산 박사라고
부른다. 문형산의 지형과 동식물에 대해 물으면 무엇이든지 거침없이 대답한다. 각종
나무와 풀, 이름 모를 야생화,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들, 그리고 초목의 생태까지도
는 소상히 알고 있었다. 어느 골짜기에 가면 도토리와 밤이 많고 다래와 으름이 있는지. 산나물과 두릅, 고사리는 어디쯤 많은지. 옹달샘은 어느 골짜기가 좋은지 등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덕분에 나는 문형산을 속속들이 알고 친숙해 지면서 산 본래의 정체적 기품을 맛보게 되었다. 등산로도 자세히 알게 되어 적절히 코스별 산행을 주 4회이상하여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지켜낸다. 특히 중산간 방화선 도로 6킬로미터는 나에게 최적의 조깅 장소이다.
문형산 등산은 퉁점골을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필수 코스다. 이들은 하산 후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산을 찬양하기에 침이 마른다. 산이 보기보다 그윽하고 요모조모 등산의 재미를 준다며 자주 이용해도 좋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사해야겠다고 말은 많았으나 이사 온 친구는 아직 한사람도 없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산에는 산격(山格)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문형산은 다른 어느 산에서도 감지될 수 없는 특수한 분위기 이상의 정감이 나의 마음에 자리한다. 어느 산에 갔을 때 그 산의 분위기를 누구나 쉽게 말할 수는 있다. 산세를 휘둘러보고 그 산의 느낌을 간단히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산만이 지닌 고유한 품격 같은 것은 쉽게 감지 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동안 그 산과의 체험적 교류 속에서만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문형산의 격조를 말하라면 아담함 즉 조촐함이라 말하겠다. 단아한 맵시로 깨끗하게 다가오는 문형산. 언제라도 쉽게 친숙할 수 있는 높이와 거칠지 않은 산세. 그렇다고 쉽게 얕잡아 보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기품을 간직한 산. 한번 보면 누구나 안겨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노년을 함께하기에 지극히 적합한 산으로 나의 마음속 깊이 자리 매김한 문형산! 언제나 흔쾌히 맞아주는 문형산이 있기에 나의 인생 종착지 퉁점골은 더욱 소중하고 기쁨으로 다가온다.

김데보라   13-05-18 11:27
    
류샘, 화이팅입니다.
참 좋은 산을 집 근처에 가지고 있으시군요.
전원주택에 집 뒤의 멋진 산이라니...
은퇴 후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귀한 곳입니다.
또 고향에 둥지를 틀 수 있으니 참 귀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류문수   13-05-19 11:56
    
감사합니다.
이호상   13-06-01 00:06
    
류샘의 글을 보니 문득 문형산이 궁금해졌습니다.
늘 가던 영장산을 문형산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동막골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다가 샛길이  있어 올랐는데, 인적이 거의 없고 표지판도 없어서 길이 갈라질때마다 애를 먹었답니다. 다행히 등고선 표시가 된 지도를 가져간 것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었지요
정상에서 퉁점골로 내려와서 전원주택단지에 서니 과연 경치가 절경이였습니다.
지형상으로도 남향지세에 북쪽으로는 문형산에서 영장산 능선 줄기가 북풍을 막아주고, 좌우로는 양날이 감싸면서 마을을 지켜주는 모습이라 기운이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아보였습니다.
류샘 덕분에 좋은 산행을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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