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질병과 오랜 내전의 참화 속, 모든 빛이 꺼져버린 절망의 땅 남부 수단. 극심한 부정부패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해 버린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황무지. 이 땅에 희망의 작은 씨앗을 한톨 두톨 심어 사랑의 꽃을 피운 이태석 쫄리 신부님!
그가 신부가 된 후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겠다고 가족에게 자신의 뜻을 말하자 그의 누나가 그에게 물었다.
"한국에도 어려운 벽지가 많은데 왜 꼭 아프리카로 가야만 하니?"
"그곳에는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기에 나라도 가야 합니다." 라는 대답은 가장 보잘 것 없는 곳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내가 힘든 일을 남에게 시킬 수 없다는 자기헌신의 강한 의지가 보인다. 즉 하느님의 사랑은 장님이다. 사람이 보내지 않는 곳에도 간다는 것이다.
어둠을 헤치고 예수님 사랑의 빛을 따라 손수 벽돌을 찍어 병원과 학교를 짓고, 무수한 환자를 치료하며 청소년을 가르쳤던 신부님.
포기한 삶을 바로잡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쳐 밤낮이 따로 없었다.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가난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가난의 본질인 영적인 결핍을 메워주는 것이었다. 신부님에겐 이들 상처투성이 영혼을 달래는 것이 급선무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서 빈틈없이 톤즈 사람이 되기 위해 숙식을 같이하며 고락을 함께 했다. 사랑은 장애에 부딪칠수록 점점 더 잘 자란다 했던가. 여러 악조건은 사랑을 심을 광활한 평야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심부님에게는. 미래의 꿈인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브라스 밴드를 창단하여 음악적 감성을 일깨우고 상처로 얼룩진 톤즈마을의 영혼들을 위로했다. 그리하여 찢긴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는 생의 기쁨을 찾아 주고자 동분서주했다.
신부님의 사랑의 힘은 입을 통한 강론 말씀에 있지 않았다. 그분은 온 몸을 바쳐 일상 삶 안에서 강론했다. 톤즈의 온 마을과 흙바닥은 그의 강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 갈릴리 호숫가, 여러 고을의 마당과 길가, 겟세마니 동산이 강단이었던 것처럼... 신부님도 그들 모든 삶의 현장에서 사랑의 몸짓으로 강론했다. 한센인들 몸에서 손수 고름을 짜내고 치료하며 웃음으로 위로하는 모습! 그들의 일그러진 발을 그려가며 꼭 맞는 신발을 맞춰 신게 한 신부님이야 말로 톤즈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으로 보였을 것이다.
신부님이 떠나신지 1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며 안타까움이 넘나들고 있다. 특히 톤즈 마을 이들이 신부님을 지극히 아쉬워하며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사이면서 사제요, 교사이면서 음악가였던 다재다능한 사람의 도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그 도구로 바친 삶이었기에, 그 위대한 삶 앞에 감격의 눈물 글썽이며 신부님을 칭송하고 짧은 생애를 한탄(恨歎)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는 곳 마다 사랑의 꽃이 되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 삶.
시들지 않는 영원히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그는 삶을 마감하셨다. 그가 존경해 맞지 않던 하와이 몰로카 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한센병으로 돌아가신 다미안 신부처럼 그는 죽었으나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울지마 톤즈' 이 영화를 통해 사람도 한 송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이 아름다운 꽃만 보지 말고 꽃을 피우기 위한 땀과 고통과 인내를 묵상하고 일상을 바로잡자고 가족들에게 당부했다. 무언의 공감 속에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신부님 앞에 나는 참으로 무엇이었나.
철들어 이제껏 내가 쌓아온 세월이 너무나 죄스럽고 부끄러워 나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 왔는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기도 민망하다. 진정 소중한 것을 멀리했던 아픔이 터져버려 깊은 참회(懺悔) 속으로 빠져든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보여준 각박한 이 시대의 성자 고 이태석 신부님. 가녀린 이 영혼도 살펴 주소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땅. 피어라 하느님 사랑의 꽃으로. 위대한 꽃향기, 온 누리 두루 퍼질 때 하느님 나라는 가까워지리라.
톤즈 너는 버림받지 않았다. 너는 주님의 손길이 머물던 곳. 슬픔을 거두고 웃어라 톤즈! 더욱 풍성한 하느님의 뜻이 너희 마을에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