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신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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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옥선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축복이었을까? 유기견이었던 신지가 우리가족이 된 것은 큰아이가 대학 1학년 때 봄, 우리 딸이 99학번이니까 손가락으로 꼽아 세어보니 햇수로 14년 전 일이다. 인천에 사는 같은 학과 친구가 길에서 떠도는 버려진 유기견이 딱해서 키우려고 집에 데려갔는데, 그 집의 가족들은 모두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강아지를 돌볼 형편이 못되어 다른 집에 보내지게 되었는데, 그 집에서도 키울 형편이 안 되어 또 버려지게 됐다는 말에 큰아이는 오지랖 넓게도 내게는 말도 없이 인천 친구의 집에까지 가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강아지를 내려놓으면 도망 갈까봐 몇 시간을 안고 왔단다.
그 때도 유기견의 문제는 사회의 논란이 되었고 길을 잃거나 버려지는 유기견이 상당수에 이르렀다. 요즈음이야말로 유기견 문제는 사회적으로 심각하다. 버려지는 이유를 보면 병들었거나 늙었다고, 또는 귀찮아서이다. 한 해 버려지는 유기견을 추산해보면 10만 마리에 이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라든가 매해 들어가는 예산은 이미 엄청나다고 한다. 이러한 동물을 사회에서는 ‘언더독’ 이라고 한다.
큰 아이가 데려온 강아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나 놀랍고 황당했다. 전혀 정리되지 않은 긴 털에 긴 발톱은 가까이 하기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더욱이 강아지를 집안에서 한 번도 키워보지 않았기에 몹시 당황하여 얼른 친구에게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큰 아이는 강아지가 갈 데가 없는데 어디로 보내냐며 불쌍하니까 키우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작은아이도 누나를 거들며 강아지 목욕은 자기가 책임지고 맡겠다면서 떼를 썼다. 강아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거두어야 하겠기에 내가 할 일인 것 같아 키우기로 결정하였고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우선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를 전염병에 노출되지 않았는지 확인도 할 겸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미용을 말끔하게 해주고 예방접종과 기생충 약을 먹였다. 수의사 선생님께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봐달라고 했더니 강아지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건강한 편이라며 새끼도 두 번 정도 출산 경험이 있다고 했다. 강아지 나이가 대여섯 살 정도 되었고, 종(種)은 중국에서 귀족견의 대우를 받는다는 ‘시추’ 라고 말해 주셨다.
검진을 마치고 동물병원에서 강아지 밥과 간식을 챙겨 사고 강아지에게 필요한 몇 가지의 물품을 사들고는 집으로 데려와 미용한 강아지를 자세히 보니 지저분한 긴 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눈이 크고 해맑으며, 예쁘고 순하게 생겼다. 저녁에 집에 들어온 남편은 새로운 식구에 놀라고 애들이 원하니 한번 키어보자 하여 강아지 이름을 지었다. ‘복덩이’ ‘순자’ ‘메리’ 등의 이름이 나왔고 큰아이가 ‘신지’ 가 예쁘다며 ‘신지’라 하자고 하여 그 때부터 신지라 불리었다. 신지는 큰 눈을 멀뚱멀뚱 하며 순하기만 하고, 저녁 때 아이들이나 남편이 들어오면 방방 뛰고 반가워하며 좋아하니까 모두가 예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TV가 고장이 나서 저녁때 쯤 기사님이 오셔서 현관문을 조금 열어놨는데, 신지가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집을 나가서 식구들과 온 동네를 찾아다니며 파출소에 신고까지 했다. 아~ 이렇게 해서 강아지는 잃게 되는구나, 걱정과 절망을 하며 기운 없이 들어왔는데 작은아이가 신지를 안고 있었다. 그때의 기쁨과 반가움은 설명이 어렵다. 작은아이도 신지를 찾고 헤매다 돌아와 위층 쪽 계단으로 올라가보고 싶어서 계단을 타고 걸어 올라가보니 맨위 끝 계단에서 신지가 떨고 있더란다. 그 후 개목걸이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새겨 달게 되었다. 지금은 ‘동물보호법’에 의해 ‘반려동물등록제’가 있어서 주소와 이름, 넘버 등 모든 정보를 내장형 전자태그(마이크로칩)를 동물의 몸 어깨뼈사이 피하지방에 삽입해 놓아서 동물을 잃어버리거나 버려져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전자태그를 등록하지 않을 경우 적발 시 동물보호법에 의해 100만 원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쇠줄 목걸이에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힌 것이 전부였다. 신지가 쓰던 목걸이와 옷 몇 가지는 보관중이다. 가끔 작은아이가 또 강아지를 키우자고 한다. 강아지 시집살이 강아지를 키워 본 사람만이 안다. 여행도 맘 놓고 다니지 못하고 목욕시키고 때때로 산책도 해줘야 하는 일들이 만만치 않다. 작은아이에게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나중에 귀촌 생활할 때,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강아지 몇 마리 데려다가 치료해 주며 같이 살아갈 거라고 말한다.
신지는 만10여년을 우리가족과 살면서 우리에게 많은 사랑과 기쁨을 주었다. 때로는 여행도 하고 작은아이가 연평도 해병부대에 있을 때 다 같이 면회를 가게 되었는데, 신지가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갔다. 엄청난 배 멀미를 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그저 좋다던 신지는 5년 전 봄에 심한 감기에 폐렴을 이기고 못하고 죽고 말았다. 기침이 너무나 심해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아 가락동에 한방치료를 한다는 엄마손 동물병원에도 찾아가서 침 치료에 뜸까지 정성을 들였지만, 신지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고 결국 꽃 샘 추위가 심한 3월 토요일 밤12시가 넘은 시각에 가족이 모두 지켜보고 있을 때 가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죽은 신지를 평소에 즐겨 입던 예쁜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의 헌옷으로 한 번 더 싸고 다시 신문지에 싸서는 남편과 함께 묻어주러 곤지암으로 갔다. 동물 사채를 땅에 묻어주는 것은 불법이다. 또 다른 전염병을 옮기거나 토질오염 문제 때문이다. 현행법(폐기물관리법)상에는 가정에서 나온 애완동물 사체는 그냥 종이나 신문지에 싸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면 된다. 그러나 신지를 그렇게는 못 하겠기에 지인의 땅에 허락을 받고 곤지암 야산을 찾아 따뜻한 양지에 묻어주고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지인과 주변 사람에게 그 곳의 주소도 알아놨지만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해 미안하다. 신지를 그렇게 보내고 얼마간은 생각이 날 때마다 울었다. 다른 병원에 한 번 더 데려가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고 3년 정도는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눈물이 났다. 이제는 거의 잊고 살지만 가끔씩 생각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