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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딩 아들에게 (용산반 이재숙님 자기소개서)    
글쓴이 : 정민디    13-06-25 00:42    조회 : 5,328

중딩 아들에게(자기 소개서)

                    이재숙


 사랑하는 아들! 요즘 너는 북한군도 무서워 못 쳐들어 온다는 중딩 사춘기를 한창 겪고 있는 것 같구나. 엄마가 물어도 대답도 잘 안하고 가끔 한다는 대답이 “내가 알아서 해요” “들어가세요” “나가세요“가 고작이니 참 섭섭하게 느껴지네.

 엄마가 너를 낳던 날이 생각나는구나! 척추 마취 후 수술실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는데 의료진들의 시끌 시끌한 이야기 소리와 함께 배를 가르고 벌리고  뚝딱 뚝딱하더니 너가 나온 것이 느껴졌어. 처음 너의 힘찬 울움 소리와 함께 너의 분투한 얼굴을 보았을 때 “이제 나의 새로운 인생이 아들과 함께 시작되었구나” 라는 환희와 함께 잠으로 떨어졌다. 만 41세가 다 되어 엄마는 비로소 엄마가 되는 소원을 이루었단다. 

 엄마가 40세 여름에 직장에서 간부MT 같은 걸 갔었는데 각자가 소원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 그때 내가 발표했던 내용들이 새삼 생각나네. 그때 나는 결혼 안하고 혼자 오래 지낸 상태로 늘 집 없는 아이 같은 심정으로 외롭고 불안했었다.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용기를 내어 나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발표했었다. 첫째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는 것이고, 그 다음 직업적으로는 호스피스 센터를 만들고 싶고, 영적으로는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 모임에 있던 높은 사람이 나의 결혼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즐거워하더구나. 

 이런 나의 선포와 그들의 바램 때문인지 그 해 말에 엄마는 아빠를 만나 극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지. 그리고 1년 쯤 지나 널 낳았고, 매일 너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지 큰 기쁨이 되었다. 너의 발달과 변화가 늘 나를 감동시켰지! 그래서 젊지 않은 엄마 몸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 아기 때나 유치원, 초등학교 때 너는 엄마를 참 좋아하고 모든 일에 다 물어 보곤 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 이제 너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거 같지도  않고 무시하기까지 하는 거 같아 섭섭하기 까지 하구나. 

 이제 엄마는 한국나이로 56세 작년 2월말에 평생 다니던 병원을 33년 만에 그만 두고 나니 아직 직장 안 다니는 나의 일상이 조금 낯설고 가끔은 한심하게 느껴진다.  먼저 퇴직한 선배들 말로는 적응하는데 족히 2년은 걸린다는구나. 작년12월 말부터는 심하게 우울증을 앓아 맨날 누워있어서 너가 많이 걱정했지? 방 문을 열고 누워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너의 안타까운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스트레스는 엄마의 멘붕이었어” 라고 너가 누나한테 말하더구나. 너한테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엄마도 생의 전환기 중이라 좀 힘들었어. 괴롭긴 했지만 덕분에 엄마는 엄마 자신에 대해 약간 더 이해하게 된 시간들이었어. 이해해주렴.

 엄마의 최근 생활은 교회 모임, 취미생활, 운동, 뭐 배우기 등으로 꽉 짜여져 있어서 바빠.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네! 전에 직장다니느라 못해 봤던 것을 자유롭게 하니 참 행복하다는 느낌도 들다가, 가끔은 직장을 안 다니는 것이 공허하기도 해. 병원 다닐 때는 하루만 휴가 받아도 사람들이 어디 갔다 왔냐고 원망할 정도로 날 많이 필요로 했는데 이젠  그런 사람도 없고 좀 허전하구나,  작년에는 대학원 다니면서 강의 다니느라 바쁘게 지내서 허전한 느낌은 덜했는데, 강의도 역시 스트레스가 많이 되어 올해는 순수하게 쉬어 보는 거야. 그런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 두 가지가 나를 비겁하다고 괴롭게 할 때가 많지만  그냥 이대로 좀 더 쉬어야 할 거 같아. 두 가지 과제가 뭐냐고? 하나는 직장을 다시 잡아야 할 거 같은 부담, 하나는 수료만 하고 남겨둔 박사 논문을 시도해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이미 덮어둔 미련이 자꾸 일어나 괴롭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자신이 없고 갈 길을 잘 몰라 어쩔 줄 모르고 있단다. 엄마로서 참 부끄럽지만 나도 인간이란다. 내가 진심으로 내적으로 가장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극도로 누리는 거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한 것이 항상 문제이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니 언젠가는 되길 바란다.

   2주전부터 누구의 소개를 받고 새로운 과제로 디이어트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돈을 제법 많이 내서 본전을 뽑으려고 열심히 하는 중인데 배가 고파 좀 힘들긴 하지만 몸은 많이 가볍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다이어트를 해야 될 부분은 나의 살뿐만이 아니야. 너저분한 우리 집 살림 살이도 정리해서 좀 쾌적하게 해야 하고, 나의 복잡한 머리 속 생각도 간단히 하고 싶고 너의 어릴 적 앨범도 다시 잘 정리해서 너에게 물려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단다.  엄마가 정리도 잘못하고 세월 보낸 것이 네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전에 앨범정리 라고 메모해 두었는데 잘 될까? 아뭏튼 살부터 잘 빼야 되겠지?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기운이 없어 일은 좀 뒤로 미루련다. 

 사랑하는 아들! 한 두달 지나면 훨씬 가볍고 건강해진 엄마 모습을 상상해보렴. 그리고 우리 전처럼 자유롭게 얘기도 하구 살자!  아! 참 요번 달부터 청소년문화센터에서 비폭력대화에 대한 교육도 받는데 아들과 대화하는 요령도 공부하는 중이야.  우리 같이 노력해보자!  사이좋은  친구가 되고 싶단다

2013. 06. 16         

너를 낳은 엄마가


임정희   13-06-25 13:03
    
아들에게 엄마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 한 장, 신선한 느낌이예요.
'엄마의멘붕'이 자신의 최고 스트레스라는 아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거라는 믿음을 줘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열정에 박수 짝짝짝 !!

저도 시도해보려하니 가족에게 편지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욱~, 울컥울컥,  서먹서먹,  찌릿찌릿, .... . 별별 감정이 쓰나미처럼 확 밀려와 힘들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이재숙 샘에게 박수 짝짝짝!!
홍성희   14-01-08 16:24
    
님의 입장과 같이 저도 얼마전 퇴직하고 맘껏 놀며 쉬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쓴 편지로 나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힘을 얻으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딸에게 편지 한 번 써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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