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
김 화 순
“으랏! 차차차!” 승부와 패자를 판가름 하며 하루 종일 목이 터지라 소리치는 해설사의 구령소리는 온 동네를 메아리치고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의 소싸움은 매년 청도, 의령, 진주 등 각지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청도에 사는 사돈은 소싸움이 시작되면 “사돈, 놀러 오이소. 우리 동네 소싸움 시작했습니다. 볼 만 합니더” 하며 초대를 했지만, 한 번도 응하지는 못했다. 2013년 5월 31일은 제26회 의령 소싸움 대회 날이었다. 아직 한 번도 소싸움을 보지 못했던 터라 잘됐다 싶어 부지런히 대회장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호화찬란한 현수막과 천막이 보였다. 많은 먹을거리가 5일장처럼 섰으며 구수하고 낯익은 트로트가 구경꾼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싸움소 이백여 마리는 4일간 시합을 하며, 우승한 소는 상금이 구천만원이다. 싸움소는 황소 한 마리당 일억에 상당한다고 한다. 해설자 말로는 경기 한 달 전부터 인삼과 보약을 섞은 고급요리를 먹이는데 경기가 가까워지면 콩을 몇 말씩 먹이고, 경기 삼사일 전에는 최상의 기분을 위해 푹 쉬게 해준단다.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선수는 마치 제 힘이 최고인 양 무게를 한껏 잡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앞발로 모래 한줌을 폭 파서 휙 던지며 한 번씩 큰 덩치가 훌러덩 뒹굴기도 하고 주위에 관중이 얼마나 있는지 살피기도 했다. 다시 폼을 잡더니 주인과 소는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신호를 한다.
선수들의 등에는 굵은 매직으로 제각기 이름이 크게 씌어있고, 주인은 붉은 조끼에다 파란 큰 글씨로 등 뒤에 ‘소 주 인’ 이라 붙어있다. 진행자가 호각을 힘차게 불면 소주인은 목이 터져라 좌우를 살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겨라. 더, 더, 더.” 소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구경꾼들도 각자 편을 향해 소리를 질러댄다.
대회장 한쪽 구석으로 몰려 앉아있는 사람들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도박꾼들이 서로 소싸움에서 우승할 소에 판돈을 걸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응원을 하다가 손에 든 돈뭉치를 흔들고 각자 편이 왜 유리한지 열변을 토한다.
이기고 있는 편들은 신이 나서 ‘아~싸’를 연발하지만, 지고 있는 편은 씩씩대다가 애매한 담배만 물고 한숨만 쉬고 기가 쭉 빠진 모습이다.
800kg에 육박하는 둔한 대왕이와 깐돌이가 갑자기 공격자세로 돌변한다. 뿔을 걸기도 하고 옆으로 목을 치기도 하고 들치기도 한다. 고개를 좌우로 팍팍 돌리며 큰 눈에 힘을 주며 시퍼렇게 독기를 품고 상대방 선수를 째려보기 시작한다.
기에서 밀린 깐돌이는 어 ‘어 이건 내 상대가 아니잖아? 미리 겁을 먹고 네 다리를 덜덜 떨며 겁에 질려 똥오줌을 질질 싸며 꽁지를 빼고 도망을 친다.
대왕이는 이겼다는 눈길로 신호를 주고 당당히 꼬리를 휘두르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으스렁 거린다.
그 모양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쭐대는 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패자인 주인은. “ 에이 제기랄! 왜 미리 겁을 먹고 난리야?” 엉덩이를 탕탕 때려가며 씁쓸하게 퇴장을 한다. 선수가 퇴장하면 그 뒤에 남은 관중들은 소란을 피우며 판돈들을 주고받는다.
두 번째로 지켜 본 왕범이와 대범이는 20분 동안 이마를 맞대고 승부를 겨루었다. 순간 왕범이 가 뿔로 휙 휙 후려치니 대범 이는 뒷발로 물러나고 말았다.
대범이는 억울함을 참지 못해 “이건 아니야! 다시 붙어야 한다며” 왕범이에게 뿔로 마구 쳤다. 패자의 소뿔에 엉덩이를 찔리고 순간 피는 콸콸 흐르고, 화가 난 주인은 “빨리 몰고 가 이게 뭐하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해설자는 빨리 앰뷸런스 부르라고 방송을 하고 경기장이 한때 술렁거렸다. 이런 크고 작은 일이 오죽 많겠냐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이없이 질 때는 분풀이를 한단다.
경기장 밖에는 미스 코리아 선발 하듯이 한 이백여 마리가 나란히 순서를 기다렸다. 경기가 끝난 소들은 모두 모여 여물을 먹는데 서로 노려보며 아직 싸움할 때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경쟁을 했다.
해설자는 ‘의령 소’하면 ‘범이’라는 소가 유명하다고 했다. 그 선수는 19번 연속 우승을 한 스타였고 매스컴에서 떠들썩하게 다뤘으며 스물다섯에 숨을 거뒀을 땐 사흘간 성대히 범이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뭐, 소 한 마리 죽는데 저렇게 난리들이냐” 라고 비웃기도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느꼈다. 비록 소지만 그 소 한 마리가 주인에게는 자식이었고 의령에서는 고향을 빛낸 싸움소의 전설로 남았다니 인간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에서 본 싸움소들은 신기하게도 해설자와 주인의 말귀를 알아듣고 경기규칙을 알고 있는 듯이 행동했으며 서로가 영혼이 통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관중 속에 선 스타로서 위엄까지 갖추고 사람들의 응원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인간과 소가 교감하는 순간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인간만이 고귀하다는 지나친 자만심은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두꺼운 돈뭉치를 흔드는 도박꾼들을 뒤로 하고 경기장을 빠져 나오며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서울에서 천리를 달려와 본 소싸움.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의 힘을 받는 것 같다. 그 무엇을 살리거나 죽이고, 사기를 높여주거나 더 떨어뜨리기도 하며, 심지어 품격을 올리거나 내려치는 것이 기(氣)라는 것이 아닐까. 싸움소들이 내뿜는 그 기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온몸으로 전율처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