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반전
송하형
과거의 행복이나 미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나는 초등학교 동창회를 기다리고 있다. 고흥 소재 시골 초등학교 60명의 남녀 동창 중에서 15명 정도가 모이는 재경 동창회다. 고향친구들이 3개월마다 정기 동창회를 하게 된 건 모두 S 덕택이다. 모두가 다 반갑지만 동창모임에서 늘 긍정적인 그를 만날 기대가 크다.
소식이 전혀 없던 그가 졸업 후 30년 만에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동창들을 연락하여 모으더니 재경 동창회를 조직했다. 현재 15명 정도가 꾸준히 잘 나오고 있다. 반에서 일등을 하던 J는 회장을 맡고 아직 사업체를 운영하는 나는 때때로 밥을 사는 고문역이다. 동창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능력이 탁월한 S는 총무로 장기 집권 중이다.
총무란 무엇인가.
회사 조직에서 총무는 살림을 하는 직책이다. 사규를 실행하고 노무, 인사관리 등등 열심히 뛰어야하는 직책이다. 하지만 그 평가를 수치화할 수 없어 일의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아 종종 CEO의 질책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친목 단체에서의 총무역할은 자금을 확보하고 운영하며 회원의 이탈방지 및 친목을 도모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조직의 활성화는 대부분 총무의 손에 달려있다. 누구도 이익도 없는 이 역할을 자신의 시간을 바치면서 계속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동창회 총무 일을 즐겁게 한다. 마치 자기의 임무인 것 같이 잘도 한다.
이제까지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시절에 그는 성적이 항상 끝에서 맴돌아 남의 관심을 받지 못 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상경하여 무수한 난관을 극복하여 서울시 산하 구청 공무원이 되었다. 아마 그는 그때부터 밑에서부터 살아가는 방법을 연마하고 터득한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방법, 사람들을 서로 융화 시켜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방법 등 아무나 할 수 없는 처세술의 고단자가 되었다. 정년퇴직 후에는 아파트 관리원으로 재취업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아 지금은 승진해서 책임자급인 주임이 되었다.
한편 동창회장인 J는 학창시절에 항상 선두를 유지하던 수재였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2년 정도 하더니 서울의 일류대학 이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모일간지 기자가 되어 당시 엘리트 여성과 결혼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녀들도 잘 커서 의사와 교육자가 되었다.
유능한 기자, 지국장, 주일본특파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불행하게도 IMF 파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일찍 명예퇴직의 쓴맛을 보았고 지금껏 실직상태다. 그동안의 집필생활로 몇 권의 책을 출판했다. 그러나 그의 책들은 모두 일본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것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는 우리 국민감정과 시대적인 흐름을 타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글을 쓰는 일도 그것이 생업 이라면 경쟁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객인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본다. 자신만의 관심사나 전문 분야에 너무 치우치면 독자들이 외면하지 않겠는가. 주제를 바꿔보면 좋지 않을까 권유도 해 보았으나 그는 사고의 변화를 하지 못 한 것 같다. 현재 그의 처지가 가족들의 응원을 받기는커녕 원망의 대상이 된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동창회의 분위기 조성은 총무가 주도한다. 음주가무에 음담패설까지 늘어놓으며 즐겁게 이끌어간다. 동창회 운영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즐겁게 사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여자 친구도, 춤 파트너도 많은 듯해 부럽기도 하다. 또 자식들도 많은 교육을 못 시켰음에도 다들 자리를 잡았다. 그는 매월 일정금액의 용돈을 받아 만족스럽다니 이 아니 행복인가.
인생의 행복의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
나는 30년 단위로 분류하고 싶다. 처음 30년은 보고 배우고, 다음은 힘껏 노력해 생활터전을 잡고, 다음 30년은 자기나 남을 탓하지 않고 결과에 순응하며 자족할 줄 아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형편이 어떻든 고생하고 살아온 자신을 탓하고 비하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는 동창모임에서 자기가 현재의 우등생인 듯 활기차게 분위기를 이끌고 특별할 것 없는 지난 날을 만회하려 함인지 약간의 허세도 부리는 것 같다. 마지막 웃는 자가 승자인 것처럼? 그의 인생 반전에 칭찬과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