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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가출    
글쓴이 : 김화순    13-07-08 21:11    조회 : 7,124
화려한 가출
김 화순
 
“아니, 요것들 봐라! 머리에 쇠똥도 안 떨어진 것들이 도망을 나와. 너희들 집 나온 맛 좀 한번 봐라!”
경찰은 두 눈을 부릅뜨며 한 사람씩 불러내어 신상 조사를 하고 돈의 출처를 추궁했다.“너는 무슨 돈 가져왔나!”호되게 다그쳤다.“아~ 아버지가 농암장날 개판 돈 장롱 속에서 훔쳐 왔어요.”금자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다음 넌!” 콧물을 훌쩍거리며 희자는“점촌 장에 엄마가 옹기 판 돈, 단지 속에 있는 것 가져왔어요.” 옥화는 엄마가 담배조리품팔이로 받은 돈 훔쳤다고 진술했고, 한 친구는 아버지가 나무 판 돈(산판 일한 돈)을 홈쳐왔다고 자백했다. 나는 무서운 아버지가 엄마를 못살게 할 것 같아서 못 가져 나왔다고 했다. 그는“돈도 없이 왜 따라 왔노?”뻔뻔스럽게? 나는“쟤들이 혹시 왕따 시킬까봐 따라 왔어요. 사실은 돈도 벌고 싶었어요. 라고 했다.
모두들 눈물 콧물 훑어 내면서 들릴 듯 말듯 작은 소리로 집으로 보내달라며 싹싹 빌었다.
경찰은 “집에 갈 것을 왜 나왔냐? 너들이 잘못 한 일을 알기나 아냐? 여기서 콩밥 먹고 유치장에서 몇 년 좀 푹~ 썩어봐라! 요것들아.” 경찰은 우리들 앞에서 복순이 뺨을 때렸다. “못된 자식! 네가 주모자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냇물을 흐린다고. 순진한 아이들을 꼬드겨?” 복순이는 아무 말 못하고 물에 빠진 생쥐마냥 떨기만 했다. 우리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눈앞이 깜깜한 것이 하늘과 땅이 붙어 버릴 것 같았다.
 
1976년 중 3 여름방학 때였다. 사건의 발단은 복순이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학교를 중퇴하고 식모살이를 간 그녀가 몇 년 만에 고향에 왔다. 어릴 적엔 삐쩍 말라 보잘것없었던 대구생활에 아주 예뻐져서 오동통한 몸집과 뽀얀 얼굴에 화장까지 살짝 하고 나타났다. 깡촌에 사는 우리들은 도시 티가 흐르는 그녀가 그저 부럽기만 했다. 고작 학교 수업을 파하면 책 보따리 집어던지고 죽어라 일하러 논밭으로 달려가는 처지었으니까.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와서 들에도 못가고 다섯 명의 친구들이 복순이네 집으로 놀러갔다. “어서 오이라!” 복순이는 애교 넘치는 대구사투리로 처음 보는 센베이 과자를 내놓으며 도시 자랑을 줄줄 늘어놓았다. “얘들아, 이 골짝에서 고생이 많지! 얼마나 대구가 살기 좋은 곳인지 너희들은 모르지? 내가 객지에 살아보니 공부 고까짓 것‘하나’필요 없더라.” 모두들 공부하기 싫은데 잘됐다 싶었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해서 그 자리에서 대구로 따라가기로 모의작당을 했다.
각자 집의 돈을 훔쳐 다음날 신작로 옆 개천다리 밑에서 10시에 만나서 훔쳐온 돈을 복순이에게 다 주었다. 하루에 버스가 두 대밖에 없는 점촌 행 오후버스를 후미진 십리 길을 걸어가서 간신히 타고 점촌터미널에 내렸다. 오후 7시 점촌에서 김천역, 다시 김천역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도시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부모 몰래 집을 나온 것이 불안했다. 우리들은 꾀죄죄하고 촌티가 흘렀다. “야들아, 괘안캤나?” 주위를 살피며 떨고 있는 우리들은 혹시 동네 사람이라도 만날까봐 똘똘 뭉쳐서 덜덜 떨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주위를 살폈다. “괜찮아, 너무 티내지 말고 있어.” 복순이도 속내는 떨고 있는 듯했다.
 
한참 동안 우리를 눈여겨보던 점잖은 사십 후반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너희들 어디 가니? 대구에 취직하러 가니?”네”“직장은 구해놓고 가는 거니?”“아니요, 그곳에 가서 취직자리를 찾아야지요.”“그래? 잘됐다. 그럼 내가 대구에서 공장을 하는데 우리 공장에 갈래?”“네, 갈게요.”우리는 동시에 오케이를 했다.“와~ 취직하기 디기 쉽네!” 웬 떡이냐며 반가워했고 복순이는 으스대며 “그 봐, 오길 잘했제!” 그 순간 학생이란 신분을 잊고 말았다. 드디어 대구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 어느 아담한 한 옥집으로 들어갔다. 언제 연락을 해놨는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밥상이 들어왔다. 모두들 종일토록 굶었으니 눈치 볼 것 없이 둘러앉아서 깻잎 장아찌, 무말랭이. 콩나물무침. 된장찌개였는데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다음날 아침, 부드러운 아저씨 목소리가 우리의 단잠을 깨웠다.
“얘들아! 어서 일어나 밥 먹고 회사 가야지! 첫 출근 하자.”
“네.” 우리는 서둘러 씩씩하게 따라나섰다.
친구는“야들아, 집 나오길 참 잘했지? 우리가 회사원이 되면 떳떳이 부모님께 연락드리자. 지금부터 돈 벌어야지, 공부는 무슨 공부냐. 안 그렇나?”모두들 맞다 며 키득 거렸다.
신나는 첫 출근!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어~ 어~ 아뿔싸.” 우리를 데리고 간곳은 파출소였다. 아저씨는 대구 대명동 파출소 소장님이었다. “에그그, 어쩜.” 우린 잡혀도 단단히 붙잡혔다. 그때부터는 온화하기는커녕 일제 순사처럼 무서워졌다. 우리들을 두 명씩 오른팔. 왼팔. 수갑을 채워 유치장에 가두어놓았다.
경찰은 방망이를 바닥에 퉁퉁 치며 위협했다.“너희들 모두 엎드려뻗쳐.” 엉덩이를 힘껏 패고는 철창문을 꽈당 탕 탕 하며 들락거렸다. “쥐새끼만한 것들이 철딱서니 없이 부모들 속을 썩여? 너희들, 뭐가 될래? 이다음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그때는 영원이 또 쇠고랑 채워 콩 밥 먹일 거다.” 뱃속은 꼬르륵거리고 몸은 지쳐 늘어져있는데 담당경찰은 또 한 번 엄포를 놨다. “야, 너희들은 어딜 가도 전과자들이다. 이 전과자들아!” 그 말은 태어난뒤처음 듣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경찰은 전화기가 한 대밖에 없는 우리 동네 이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동네 여식아들, 개장수집 딸. 옹기집 딸.등 여섯 명, 지금 대구 파출소에 와 있심니더. 조사 후 곧 보낼깁니더.”안심 시켰다.
우리는 완전 독 안에 든 쥐였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를 보는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서야 수갑을 풀어 주었다.“저 아~들 감방에서 나왔으니 순두부 사 먹여서 보내게”“네, 소장님.”소장님은 풀어주며 뿌듯해 하는 모습이었다.
꼼짝없이 잡힌 몸들이 되어 경찰이 호송하는 대로 기차를 타고 김천, 점촌을 거쳐 다시 문경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축 처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둠살이 낀 조용하던 산골동네가 발칵 뒤집혔다.“실컷 키워 놨더니만 이놈의 지저바아가 개판돈을 훔쳐 도망을 가? 왜 왔노? 왜? 왜?” 뒷집 금자네 아버지 소리가 유난히 컸다. 친구들 빌며 우는 소리, 아버지들 내지르는 소리, 엄마들이 아버지들 말리는 소리, 도망가는 친구들 아우성, 동네는 난리가 났다.
나는 걱정했던 만큼 그다지 크게 혼내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다만 여자는 함부로 몸을 돌리면 안 된다고 몸가짐을 잘하라고 하셨다. 외지로 나갈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내보내줄 것이라고 타이르셨다.
그날 이후로 동네 사람들은 “저기 오입좽이들, 도망좽이들 지나간다 ” 라며 일부러 놀려대곤 했다. 오입이라는 말이 원래는 남편이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말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타지로 쓸데없이 떠돌면 오입이라고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한참 질풍노도의 사춘기였던 것 같다. 하늘이 서너 평 밖에 안 되는 빠끔한 동네에서 큰 도시, 대구에 대한 알 수 없는 설렘은 첫사랑의 시작처럼 열여섯 우리들의 가슴을 얼마나 뛰게 했던가! 그때 누가 우리의‘고향탈출’을 막을 수 있었을까. 무작정 떠날 수 있었던 우리들의 용기는 가상했다. 우리들이 잃은 것은 없었다. 고마운 소장님을 만났고, 어긋난 길을 가지 않고 부모님 곁으로 무사히 돌아왔으니 운도 좋았다. 그 이후로 도시에 대한 환상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당시 우리가 저지른 일들을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호되게 엄포를 놓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늦긴 했지만, 얼마 전 혹시나 싶어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으로 강서경찰서에 문의를 해 보았다. 이름도 모르고 대구 대명동만 가지고는 찾을 확률이 희박하다고 했다.
지금쯤 소장님은 팔순이 훨씬 넘었으리라 생각된다. 대명 파출소 소장님이라는 것 밖에 모르는 우리들은 감사의 기억을 늘 가슴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1976년 8 월

안옥영   13-07-10 10:38
    
화려한 가출로 회상할 수 있게 해주신 그 소장님께 저도 감사한 마음이 드내요.
김화순 님이 인복이 있으신 듯..^^
아래 보니 글 목록이 화려한데,  매번 말하지만 님의 그 넘치는 에너지 저한테도 좀 나눠주세요...ㅎㅎ
     
김화순   13-07-10 21:02
    
네 감사할 마음 뿐입니다 . 좋은 소제로  잘 재연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될탠데  여기 까지가 한계입니다
안옥영 샘 매번 좋은글  잘읽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
윤효진   13-07-10 15:04
    
김화순선생님 화이팅 !!!!
그럼요^^인복이 있구말구요.
우리 열심히 해요.
     
김화순   13-07-10 21:04
    
윤선생님  고마워요 . 열심히 살아 볼께요 .  우리 열심히 노력 합시다
문경자   13-07-10 15:30
    
다른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 참신한 소제를 가지고 재미있게
풀어 내시는 화순님의 글은 참신하고 독특합니다.
그 때 서장님을 만나지 않고 정말 나쁜 사람을 만났다며
오늘 날 화순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생각하면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추억담도 들려주고 같은 문우로 만났다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 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화순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화순님 화~이팅 ^^
     
김화순   13-07-10 21:05
    
글을 써다보니  어느때인가 속이 다보이더군요.  내속 다보였 답니다 . 감사해요.
박인숙   13-07-11 19:42
    
정말 화려한 가출이었네요.
도시에서 자라 재미있는 추억이 별로 없어요.
좋으신 소장님 덕분에 글을 쓸 수 있는 추억이 되었네요.
추억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지요.
건필하세요.
     
김화순   13-07-11 21:59
    
한 창 질푸 노동 한  그때 그시절 이었습니다 . 정말 화려한 가출이죠 .  감사 합니다 .
문영일   13-07-12 09:28
    
큰 일 날뻔 했습니다.
'무작정 상경'에 '영자의 전성시대'가 있기는 했지만
소설속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요 .
야수들이 으르렁대는 밀림같은 도회지에
순진무구한 어린애들이 처할 운명은
소설보다 더 기막힐 일들이 벌어졌을 텐데
고마우신 파출소 소장님을 만났기 망정.

김화순님!
너무 성급히 생각 마십시오.
그냥 글 쓰시며 즐기시기 바랍니다.
처음 문학반에 발을 들어 놓으실 때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발전을 했습니까?
꾸준히 한 발 한 발..
그냥 즐기시면 될것같습니다.
남보다 많은  체험, 글로 남기고 싶은 욕망.
무엇이던지 하면 된다는 확신과 실천.
그게 김화순닙의 큰 자산이니까요.
콩나물 자라듯 글 쓰는 실력도 늘어갈테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많이 읽어 봅시다.
저도 글 쓸때마다 좌절감을 느끼는 데
그것은  제가 독서량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고전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베스터 셀러의 신간 서적도 많이 읽지 못합니다.
어느 때는 이것 저것 다 집어치우고
문 걸어 잠그고 우선 천 권의 책을 읽을 까  할 때가 있어요.

가곡반에 나가는 데
남 앞에서 한 곡을 연주 하려면
그 노래를 최소 300번은 정성드려 불러야 한다는 군요.

화순님 지금까지 잘 해 오셨습니다.
등단같은 것은 우선 생각 말고
그냥 글의 주제가 떠 오르면 즐기며 쓰십시오.
남에게 이야기 하듯,
들려주고 싶은 말의 '초점'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말 하듯 말입니다.

'소싸음'의 광경은 많은 사람들이 보아서 아는데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소들의 생각은 어떨까?
돈 몇 푼에 악 쓰며 싸우고싶지 않은 소들을 내모는 수주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런 느낌들을 생각 해 보고 써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공감이 간다면 읽은 분들께 즐거움을 주게되겠지요.
자꾸 써 보세요.
그동안의 글들 모두 재미있었고
화순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것으로 충분히 잘 쓴 것입니다.
문학의 형식이야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춘기   13-07-12 10:20
    
문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역시 예리하고 진정어린 합평
참 자세히도 해 주셨습니다.
금년 발표회는 결정 되셨습니까?
          
문영일   13-07-13 20:49
    
백 형 ! 제가 2년 여 하던 홍일점을 백선생님이 하고 계시는군요.
과찬을 해 주셔서 또 부끄럽군요.

백선생님이야 말로
글도 잘 쓰시고 노래도 잘 부르시니 참 좋으십니다. 아직 현직으로 돈도 벌면서 말입니다.
요즘은 10월말 공연하는 연극연습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닙니다.
음악에, 주역에 ,문학에 ,연극까지 하려니 이만 저만 정신이 없는 게 아니군요.
음악 발표는 내년 초 쯤 신년음악회 때 동호인들끼리 하려고 하는데 아직 곡도 못 정했어요.

연극은 10월 26-8일 강동 아트센테에서 공연 예정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눈물 나는 극이라 단원들은 연습하면서도 가끔 눈물을 흘립니다.
60이 넘은 사람들만의 연극이라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나아가 젤 많은데 전 21세의 3수생 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가 동안이라고 하여 그 역을 자청타청 맡았는데
우선 등장 회수와 대사가 적어 좋은데 역시 어렵네요.'
연습이 잘 되어 보실 만 하면 제가 초대장 보내겠습니다.
글 많이 써 올리세요. 잘 쓰시지 않습니까?
건투를 빌며...
참 지넌번 펑크 낸것 다시 주선을 좀 하여 보시지요.
     
김화순   13-07-13 02:15
    
안녕 하세요 .문선생님 우리교실이 텅 빈것 같아요 .다음학기에 나오시죠?
그리고 감사해요  문선 생님 덕담에  제가  쑥쑥 분발합니다 . 정확한 심사 감사해요 그런데 마음은 급해요  때가 다가 오니까요 ?ㅎㅎ 다음달에 뵙시다
왕연균   13-07-14 17:04
    
안녕하세요. 분당반입니다.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글입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운이 대단히 좋았군요.  저도 시골에서 자라서 동네 모습이 선하네요.  우리는 오늘 하는 일이 내일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지 모르는 경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 항상 기도하라' '항상 깨어 있으라'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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