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과 같아라
김옥선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나는 베이비시터(아기돌봄이) 자격증을 땄다. 내 아이들 키울 때보다 요즈음의 교육환경과 교육철학이 다르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도 막상 아기가 태어나 할머니로서 돌봄이로 나서고 보니 아기 보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애기 보는 일보다 밭에 가서 일하는 것이 훨씬 쉽더라’ 라는 말을 백분 공감하였다.
첫돌이 막 지난 서우는 말은 못하였지만 인지는 할 줄 알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며 말을 배울 시기라서 일방적 메시지를 목이 아프도록 쏟아 부었다. 서우는 그 시기의 아기들이 그렇듯이 사물에 대해 매사 탐색하고 만져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왕성하게 발동할 때라 나는 아기 돌봄이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 했다. 아기는 마구 걷고 뛰기 시작하는 때라, 활동량도 크고 광범위하여 엄청난 체력을 자랑했다. 나로서는 감당하기가 적잖이 힘이 들었다. 이때야말로 아이 보는 보호자는 그야말로 인고의 고통으로 무궁무진한 인내심을 절대적으로 발휘해야한다.
어느 집이나 아기들이 좋아하며 관심이 많은 곳은 신발장과 싱크대이다. 신발장은 아기에게 위생상 좋지 않아 못 열게 해도 엄마 구두를 꺼내서 “ 엄마! 엄마! ? 하며 엄마 거라고 한다. 엄마가 생각나서 그러는가 싶어 안쓰럽게 생각하며 손을 씻어주고 신발장을 정리한다. 싱크대 서랍은 열어서 온갖 것을 꺼내 이리저리 던져 놓고, 참기름 병 식용유병 등 죄다 꺼내 흐트러뜨려 놓는다. 아기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럴 때면 끊임없이 위험하다, 깨진다, 쏟는다 등의 말을 해줘야 한다. 신발장이나 흐트러진 서랍속의 내용물을 정리하다보면 때로는 지쳐서 화가 나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교육하는 사람은 일관되게 밝은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그럴 때 스스로 위로 하듯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를 떠올리며 사악하고 사특한 생각이 없는 진실하고 깨끗한 사상의 정신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좋은 생각이 아기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마음으로 성인들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인내하였다. 세상에 아이를 돌보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러웠고 그 노고를 치하하며 찬탄의 경의를 표하게 됐다.
3월이 되면서 서우는 어미를 따라서 어미와 아비가 다니는 직장 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서우가 어린이 집에 다니게 되어 나의 몸은 한가하고 편하여졌지만 애는 잘 걸리지 않던 감기를 노상 달고 있고, 어린이집이 낯설었는지 잘 울지도 않던 애가 많이 운다고 해서 안타깝고 속상했다. 게다가 순해서 어떤 아이에게 물려서 멍들어오거나 할퀴어 와 흉 지게 생겼다. 다행히 요즈음은 재생크림이나 피부세포 재생테이프가 있어서 얼른 붙여주었더니 흉은 생기지 않았다. 아이들이야 싸우며 자란다고 하지만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당하고 들어오는 서우가 안쓰러워서
“서우야, 친구들이 꼬집거나 물면 너도 때려 줘, 알았지?”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나 자신에게 너무도 놀랐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러한 상황이었을 때 그렇게 말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맞고 울면서 들어왔을 때 속으로는 몹시 속이 상하였으면서도 아이들에게 나는 분명히 말했었다. 괜찮다고 하며 때린 친구가 나쁘다고 말해 주었었다.
내가 서우에게 그러한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서우어미는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얼른 받아 큰 소리로 말한다.
“서우야, 괜찮아, 친구들 때리면 안 되지.”
그 때 사위도 옆에 있고 해서 난 살짝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했다. 교육에 있어서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냉정하고 분별력 있게 했건만, 왜 손주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나의 교육에서 평정심을 잃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서우할머니 입장에서 나오는 태도는 내 아이와 달리 손주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서우에게 그러한 말을 했을 때 아직은 아기임에도 다행히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 또 아기가 어미의 냉정하면서 분명한 말은 엄숙하고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우도 말의 느낌과 분위기로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는 듯 할머니의 말을 농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이제 27개월 된 서우에게 잘못된 교육일 거라는 기우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다.
얼마 전 송파 쪽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할 원장들의 심각한 범죄와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식비를 줄이고 편취하기 위해 아기들에게 주워온 배춧잎으로 국을 끓여 먹이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한다. 아기들에게 정해진 메뉴로 음식이나 간식을 만들어 먹여야 하는데 메뉴와 전혀 다른 음식을 먹이곤 했다한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아직 말을 못해 부모에게 전해질 우려가 없는 아기들에게 마구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아기들을 보호해야하는데 보육교사로서 원장들의 행태는 인성과 자질이 의심스럽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상대로 먹는 것에 장난을 하고 폭력을 가하며 부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까? 누굴 믿고 아기들의 안전을 맡기겠는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